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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난민의 날] 그리스: 모리아 캠프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의 증언

2018.06.20

[세계 난민의 날] 그리스: 모리아 캠프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의 증언

지난 5월, 우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 로빈 함몬드와 레스보스에서 인물 사진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속 '모리아 섬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Robin Hammond/Witness Change

아비르(23/가명)는 이라크에서 왔다. 아비르는 아버지가 자신과 언니를 죽이러 온다는 얘기를 듣고 고국을 떠났다. 아비르의 언니가 성폭행을 당했는데, 아버지는 ‘가족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딸을 죽이려 나선 것이다. 아비르의 아버지는 미혼인 아비르도 성폭행에 연루됐다고 보고 두 딸을 다 죽이려 했다.

이라크를 떠나 터키로 들어간 두 자매는 배를 타고 레스보스에 도착해 14일째 머물고 있다. 아비르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현재 머물고 있는 모리아 캠프의 난민들 사이에서는 점점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희망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좌절과 스트레스와 폭력이에요. 더 이상 인류애는 찾아볼 수 없게 됐어요.”

 

ⓒRobin Hammond/Witness Change

리함 사드(12세)는 시리아인이다. 리함의 아버지는 수단 출신이지만 리함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나고 자랐다. 리함의 말에 따르면 시리아에 더 머물다간 살해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가족 모두가 시리아를 떠났다고 한다. 리함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살던 집이 무너졌어요.”

리함은 시리아를 떠난 건 아버지가 자녀들의 공부를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시리아 학교는 다 파괴되었기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리아 캠프 생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캠프에서 사는 건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경찰은 가스를 터뜨리거든요. 우리한테 좋지 않아요. 캠프 환경이 더 상황을 나빠지게 하고 있어요. 캠프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아프니까요. 먹을 것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것도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여요. 특히나 식량 배급 때문에 사람들이 싸워요. 줄을 놓치면 먹을 것도 물도 다 못 구하게 돼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 라힘은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늘 화가 나요. 아이들이 전부 아프고 토하고 온종일 기침을 하니까요. 우리 남매들도 병에 걸리고 힘들어하고 있어요. 누굴 비난하는 건 아닌데 그냥 화가 나요.”

이어 라힘은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털어 놓았다.

“전쟁이 일어나는 악몽을 꿔요. 이렇게 좁은 데서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 보니까 전쟁 기억이 나나 봐요. 또 주변이 어두워서 전쟁 생각이 나기도 해요. 모리아에서는 전기가 안 들어올 때도 있는데 밤엔 특히 더해요.”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는지 묻자 라힘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무너질 때면 바다로 나가거나 미틸레네로 가거나 어린 아기를 보러 친척한테 가요. 아기랑 놀면서 마음을 바꾸려고요. 슬프고 지칠 때면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 집이 어땠는지 떠올려 봐요. 여기 캠프는 우리 집 같지가 않거든요. 전쟁 전에 살던 우리 집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아져요.”

장래희망을 묻자 라힘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이 캠프를 떠나는 거예요.”

 

 

 

ⓒRobin Hammond/Witness Change

마르완 지하드(36세)와 그의 딸 사마(11세). 이라크 바그다드에 살던 이 가족은 폭력과 붕괴된 사회를 피해 고국을 떠났다. 민간 무장 단체의 위협을 받았던 마르완은 이라크에 더 있다간 목숨이 위험할 거라고 느꼈다.

마르완은 또한 아들의 지적 장애에 대해서도 밝혔다.

“제 아들에게 병이 있는데다 민병대의 위협도 받다 보니 이렇게 레스보스까지 오게 됐습니다.”


시리아 · 아프가니스탄 · 이라크 · 수단 · 콩고 등 여러 나라에서 탈출한 난민 수천 명은 안전한 곳을 찾아 지금도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터키와 에게 해를 거쳐 가려던 사람들은 EU-터키 협정과 이에 따른 억제 · 봉쇄 정책 때문에 그리스 군도에 무한정 발이 묶여 버렸다. 현재 레스보스에서는 최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에 무려 75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캠프에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자, 난민들은 캠프를 넓혀 만든 ‘올리브 그로브’라는 비공식 거처 안에 머물고 있다.

모리아 캠프(올리브 그로브)의 열악한 환경과 변덕스런 행정 조치로 난민들은 건강에 큰 피해를 입었고 특히 정신건강상의 피해가 크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모리아 캠프에서 의료와 정신건강 지원을 하고 있으며, 중증 정신건강 환자들을 위해 레스보스 섬의 수도 미틸레네에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Robin Hammond/Witness Change (2018년 5월 1일, 그리스 레스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