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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오늘 저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 매리 빈센트의 이야기

2018.06.21

MSF

매리 빈센트가 이티포에 위치한 집 앞에서 남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주콩고 에쾨테르 주에 위치한 이티포는 최근 에볼라 발병의 진원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 우린 에볼라 따윈 믿지도 않았어요.”

매리 빈센트의 말이다. 매리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비코로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최근 퇴원을 했다. 온 가족이 병에 걸렸고, 매리는 이제 막 완치하고 센터를 나왔다.

매리는 정확히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른다. 예순쯤 돼 보이는 그녀는 살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매리 가족의 에볼라 이야기는 아들 찰스로부터 시작됐다.

매리의 자녀 11명 중 찰스는 이티포의 외딴 보건소를 운영하는 간호사였다. 이티포는 민주콩고 에콰테르 주의 수도 음반다카에서 지저분한 도로와 부러진 다리를 지나 장장 170km를 가야 나오는 소도시다. 최근 에볼라 발병의 진원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찰스는 수년간 말라리아 · 설사 · 영양실조 환자들을 돌보고, 임산부들의 산전진료와 고위험 분만도 도왔다. 그러던 그가 5월 9일 숨을 거뒀고 사인은 에볼라로 추정됐다. 에볼라 발병이 공식 선포된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찰스의 시신은 끝내 검사를 거치지 않았고, 전통 매장 방식에 따라 예를 갖춰 깨끗하게 염을 한 뒤 고향 마을에 묻혔다.

이후 며칠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맹위를 떨치며 찰스의 가족 · 동료 등 생전에 그를 돌봐준 주변 사람들을 강타했다. 매리는 이렇게 말했다.

“찰스에게서 떨어져 있으라는 다른 간호사들 말을 들으니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계속 아들을 챙겼어요. 아픈 아들을 둔 엄마로서 당연한 일이죠.”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은 전염성이 매우 높다. 찰스가 묻히고 며칠 만에 매리를 포함해 식구 몇몇이 앓아 눕기 시작했다.

“아들을 땅에 묻고 난 우리는 곧 아프기 시작했어요. 몸이 펄펄 끓고 구토가 나고 설사도 했어요. 그제야 이게 무슨 저주가 아니라 병이라는 걸 믿기 시작했죠. 이미 에볼라에 대해서도 들었고 곳곳에서 기이한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도 들었지만 그때는 뭘 잘 몰랐어요.”

머지않아 매리는 증상이 심해져 검사를 받게 되었다. 매리의 장남 부부, 메리의 또 다른 아들, 그 외 친척 1명(남자)도 줄줄이 앓아 누웠다. 급기야 임신한 찰스의 아내마저 열이 났고, 찰스의 두 아들과 예비 며느리 1명도 고열에 시달렸다. 결국 매리 가족 모두는 이티포의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 경유센터로 가게 되었고,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자 비코로의 에볼라 치료센터로 이송됐다.

이후 매리 가족들은 몇 주간 치료센터에 머물며 갖가지 증상과 공포에 맞서 싸웠다.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직원 분들은 너무도 친절했고, 우리 목숨을 살리려고 모든 것을 해줬어요. 수시로 우리를 격려해 줬고,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꼭 회복할 거라고 확신을 줬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매리의 손자 2명(찰스의 아들들)과 찰스의 예비 며느리는 결국 에볼라로 숨을 거뒀다. 찰스의 아내는 회복했지만 태아(남자)는 살아남지 못했다. 임산부가 에볼라에 걸리면 바이러스가 태반을 지나게 되는데, 산모의 면역 체계가 여기에 미치지 못해 태아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목숨은 건졌지만 집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가진 건 전부 태웠거든요. 비록 이렇게 나이는 먹었지만 밑바닥부터 삶을 다시 시작해야만 해요. 오늘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MSF

매리 빈샌트의 남편이 완치해 돌아온 매리를 기도와 함께 맞이하고 있다. 아들과 손자를 에볼라로 잃었지만 부인은 생존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