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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죽음의 낭떠러지 끝에서 살아 돌아왔어요"…흑열병-HIV 동시감염 환자의 이야기

2018.09.21

인도 비하르 주 파트나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병동에서 흑열병-HIV 동시감염 치료를 받은 조야 ⓒMSF/Vaishnavi Singh

흑열병이나 HIV는 사람들에게 낯선 병이고 사회적 낙인도 심하다. 그러나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환자들은 다른 감염에도 취약하고 사망 위험도 훨씬 높다. 조야(Zoya, 39)는 인도 비하르 파트나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흑열병-HIV 동시감염에서 벗어났다. 아래는 조야가 들려준 이야기다.

처음엔 열이 났어요.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그때뿐, 금세 몸에서 다시 열이 났어요. 점점 기운이 떨어져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입맛도 다 잃어 버렸어요. 쌀도 빵도 다 맛이 없더라고요. 설거지 같은 단순한 집안일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시완 지역병원에서 흑열병 진단을 받게 되었죠.

시완 지역병원의 소개로 고리아코티(비하르 주의 선거구)에 있는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HIV 양성 결과가 나왔어요. 남편도 같은 결과가 나왔죠. 그 얘길 다 들으니까 그때까지 제가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깨닫게 됐어요. 5만 루피(한화 약 80만 원) 정도를 썼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나시크 시에 10년을 살았는데, 금전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비하르로 돌아왔어요. 재단사였던 남편은 황달로 앓고 난 뒤에는 전과 같지 않았어요. 그렇게 부부가 일자리를 잃고 나니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비하르로 돌아온 뒤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제 병에 대해 알게 된 거죠.

고리아코티 병원에서 만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은 파트나로 가면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특수병동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게 옷만 몇 벌 챙겨서 바로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파트나에 있는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이번에는 결핵에도 양성 반응이 나온 거예요. 저는 서 있을 힘조차 없었어요. 그런 위험한 병들을 어떻게 하나도 아닌 3개나 걸렸을까 싶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은 친절하게 저를 치료해 줬어요. 한 의사 선생님은 제 손을 잡고, “조야, 잘 먹지 못하면 몸이 나아질 수가 없어요.”라고 말해 주기도 했어요. 차츰 입맛이 돌아오더니, 쓰러지지 않고도 조금씩 걸어 다니게 됐어요. 지난 몇 달 사이에 몸무게도 다 돌아왔어요.

전에 여러 병원을 다닐 때는 사람들이 제게 말도 제대로 걸지 않았어요. 구석에 가 있으라며 제게 소릴 질렀죠. 하지만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는 모두가 저와 제 남편에게 잘 대해 줬어요.

거기 있는 동안, 제가 걸린 3가지 질병이 어떻게 퍼지는지도 알게 됐고, 저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알게 됐어요. 저는 흑열병과 결핵 치료를 받고, HIV 치료를 위해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도 복용했어요. 퇴원해서 집에 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다 제 병을 알고 있더라고요. 고리아코티까지 저와 동행했던 보건부 직원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제가 AIDS 때문에 죽을 거라고 말한 거죠. 파트나에 있을 때 왜 친척들이 병문안을 오지 않았는지 그제야 깨달았어요. 우리 가족, 이웃, 동네 사람들 모두가 제 병을 알았던 거예요.

우리는 2층 집에서 대가족을 이뤄 살고 있어요. 병원에서 돌아왔더니 가족들이 청소를 다 해놓고 제가 있던 곳에 물을 뿌렸어요. 아무도 저와 같은 화장실을 쓰지 않았고 저를 외면했어요. 처음에는 마을에서 열리는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화가 풀리지 않더라고요. 병에 걸린 게 저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픈 건데, 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건가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아이들 미래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샜어요. ‘누가 내 딸이랑 결혼을 해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제가 조심하면서 계속 약을 잘 챙겨 먹으면 아무 이상 없이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네요. 기침을 할 때마다, 몸에 상처가 날 때마다, 옷에 생리자국이 묻을 때마다 순간순간 걱정에 휩싸여요. 문득 잠에서 깼을 때 딸아이가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혹시나 아이에게 병이 옮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요. 부모는 평생 자식 걱정이잖아요.

그동안 남편은 늘 제 곁을 지켜 줬어요. 남편과 아이들은 제 전부예요. 저는 죽음의 낭떠러지 끝에서 살아 돌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용기를 내서 살아갈 거예요.

국경없는의사회는 비하르에서 1만2000여 명의 흑열병 환자를 치료하고, 인도 전역에서 치료 프로토콜에 관한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 이후 2015년 들어 국경없는의사회는 흑열병-HIV 동시감염 환자들을 치료하는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700여 명을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