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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인도: 질병이 '사회적 낙인'이면 안됩니다

2023.02.23

이름: 유한나

포지션: 보건 증진 및 환자 교육상담 담당 코치

파견 국가: 인도

활동 지역: 뭄바이

활동 기간: 2022년 8월 ~ 12월


1.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활동지역의 가장 심각한 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8월 말 인도 뭄바이로 출국하여 12월 말에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매니저와 환자 교육상담 매니저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인도는 2021년 기준 세계 결핵 발생 건수 1위를 할 정도로 결핵이 심각한 보건 문제인 곳입니다. 결핵은 높은 인구 밀도나 저조한 영양상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슬럼가가 많고 인구 밀도가 높은 뭄바이 같은 경우는 결핵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활동한 프로젝트는 인도 공공보건체계가 미처 닿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반 결핵은 지역정부에서, 더 길고 어려운 치료를 요하는 다제내성 결핵을 가진 환자들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또, 결핵 환자들의 가족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감염의 징후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감염의 확산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도 뭄바이의 보건소에서 결핵 환자의 가족 대상 보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유한나/MSF

2. 결핵 퇴치에 ‘보건 증진’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인도 정부는 2025년까지 결핵을 근절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낙관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결핵을 둘러싼 ‘사회적 낙인’ 입니다. 저희가 관찰한 바로는, 심한 경우 의료진까지 암암리에 결핵 환자를 멀리하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증상이 있어도 의료시설을 찾아 검사를 받지 않고 결핵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다시 질병의 확산으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저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세 달 동안 어떠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고 어떻게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이를 완화시키는 보건 증진 전략을 현지 직원들과 계획하였습니다.  

결핵의 위험성을 과하게 강조하면 두려움이 사회적 낙인을 강화시킬 수 있고, 결핵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고립이나 심리적 문제 등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여서 가치 중립적인 언어로 보건증진활동을 계획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새롭게 결핵 진단을 받은 환자와 그 가족에게 ‘숨을 쉬는 모든 사람은 결핵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을 꼭 합니다. 이는 가족들이 결핵 환자를 이해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혹시 모를 ‘누가 나에게 결핵을 옮겼지?’라는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환자교육상담팀과 함께 ©유한나/MSF

3. 활동 기간 중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사회적 낙인을 조사하기 위한 활동으로 50명의 지역 주민을 만났습니다. 환자와 환자의 가족, 청소년과 성인 그룹을 따로 만났는데요, 제가 만난 주민들의 경우 여성들에게 사회적 낙인의 양상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남편이 결핵 환자인 부인을 떠나버리는 사례도 있었고, 미혼 여성의 경우는 파혼을 당할까봐 매우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성인남성의 경우 결핵에 걸려 가족 내 권위가 떨어지거나 부양능력을 상실할까봐 우려했지만 여성에 비해선 걱정의 정도나 직접적 비난 및 낙인의 정도가 덜했습니다. 청소년 그룹의 경우 결핵에 걸렸단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승화시켜 농담거리로 삼는 아이들도 있던 반면, 친구들의 놀림에 상처를 받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현지 주민 개개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고, 인도는 다양성이 뛰어난 사회임을 느꼈습니다. 짧은 활동이지만 배운 게 많았습니다. 

4.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활동지역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이곳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 안에서 결핵 병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정부 병원 측에서 결핵 환자들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병원 마당에 5개 컨테이너를 두고 외래 병동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지 구호단체가 워낙 많아 국경없는의사회의 인지도가 크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핵을 가진 환자들은 국경없는의사회 병동을 ‘우리를 차별하지 않는 곳’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본인을 차별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해주는 언어를 쓰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인도나 뭄바이의 거대한 의료적 필요에 비해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인도 활동 규모는 작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부나 다른 단체에 환자의 고충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로, 또 이들의 고충을 완화하고자 하는 촉매로서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2월 뭄바이의 한 진료소에서 약제내성 결핵 환자에게 약물 투여를 준비하는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들 ©Prem Hessenkamp

5.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재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2023년 4월쯤 다음 활동을 나가고 싶습니다. 아마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가게 될 것 같아 쉬는 동안에는 프랑스어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6. 후원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활동에서 결핵이 완치되었지만 이미 폐가 망가져 결국엔 죽음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사례를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 현장팀은 ‘이 환자에게 얼만큼의 자원과 시간을 쏟을 것인가’란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환자를 한 명 더 치료하는 것과 죽어가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것, 교육에 투자해 예방에 집중하는 것 사이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자원이 풍부하다면 다 실시할 수 있는 조치이지만 예산은 항상 한정적이기 때문에, 현장 인력들은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힘든 결핵 치료 과정을 길게는 2년 동안 버틴 이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크나큰 심적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많습니다. 

지원이 확대되면 현장 활동가들의 운신의 폭 또한 넓어져 우리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덜 할 수 있고, 결국 현장 인력에게도 희망이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보건증진팀, 환자교육상담팀과 함께한 유한나 활동가 ©유한나/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