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이후, 로힝야 난민 62만여 명이 미얀마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들어왔다. 이 전에도 이미 수십만 명의 로힝야족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에 들어와 어려운 여건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늘어나는 난민들을 지원하고자 의료 및 식수위생 활동을 대폭 확대했다.
임시 정착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고 생활 여건도 여전히 열악하다. 인구 밀도를 낮추려면 상당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동안 캠프에 머물러 온 사람들, 그리고 이제 막 캠프에 도착한 사람들 모두 식량을 배급 받고 식수위생 및 의료 시설을 이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캠프에 있는 이들이 최대한 공평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주의 구호 단체들은 하나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야스민과 딸 파티마 ⓒIkram N'gadi
야스민(19세)이 두 살 난 딸 파티마와 함께 있다. 중증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파티마는 콕스 바자르의 쿠투팔롱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국경에서 이틀간 있었어요. 돈 때문에 미얀마에서 못 넘어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어떤 사람들은 보석, 휴대폰을 팔아서 오는데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못 넘어와요.
승려들은 집을 태우고 사람들을 고문해요.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고문해요. 우리 식량도 다 빼앗아 가고 집도 다 태워 버려요.
그래서 여기 이렇게 왔어요. 밤에 도착했고요. 아이들과 친척들도 함께 왔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집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수 없었어요. 우리 대부분이 돈을 다 잃어 버렸어요. 저도 입던 옷 말고는 가진 게 전혀 없었어요.남자,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바다에 빠져 있는 걸 봤어요. 심지어 잘려나간 시신까지요. 산 사람은 못 봤어요. 그들이 총을 쏘려고 했지만 우리가 도망치는 바람에 우릴 맞힐 수는 없었어요. 그들은 우리를 끝까지 쫓아오려고 했어요. 바다와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이 다 막혀서 우리는 정말 힘들었어요. 먹을 것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제 아이는 전에는 잘 걷고 잘 먹고 하면서 건강하게 지냈었어요. 그러다가 그곳을 떠나올 때 몸이 아팠는데, 그래도 지금만큼은 아니었어요. 조금 더 지나니까 아이가 먹지를 않고 예전과 달라졌어요. 의사 선생님과 전통 치료사에게도 진찰을 받아 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쿠투팔롱에 진료소가 있으니 거기 가 보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판 바자르에서 티켓을 구했어요. 진료소에 왔더니 의사 선생님이 진료소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으면 나을 거라고 했어요.”
파티아 ⓒIkram N'gadi
파티아(18세)는 전날 가족들과 함께 미얀마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들어가려고 지금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사이 ‘베름’(좁다란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1일 걸렸어요. 우리는 언덕을 넘고 농작지도 지나 왔어요. 오는 길 중간에 잠시 쉬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먹을 게 좀 있었는데 어떤 날은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렇게 국경까지 와서 3일을 기다렸어요. 국경을 건너려면 3일이 필요하고, 그 후에 이쪽으로 와서 또 이틀을 머물렀어요. 어제 저녁에 강을 건넜고, 오늘 아침에 여기 도착한 거예요.
우리가 국경을 넘어온 건 저쪽에 너무 고문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승려들은 우리를 때리고, 집을 불태우고, 소를 빼앗아 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전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있네요. 밤이 되면 승려들이 찾아와 다 털어 가요. 먹을 것도, 약도 아무것도 없었고 더 이상 고문도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오게 된 거예요. 밤이면 그들이 와서 있는 것을 빼앗아 가고 사람들을 데려갈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이렇게 여기 오게 됐어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여기 왔기 때문에 전보다는 기분이 더 나아요. 하지만 먹을 게 너무 없어서 힘들어요. 쌀도 못 구해서 지금 우리는 너무 배고파요. 여기서는 날마다 죽는 사람들이 나와요. 보통 하루 두세 명씩 목숨을 잃고 있어요. 지금 여기서 쌀을 구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뭔가 그래도 구한 게 있어서 기분이 낫네요. 쌀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앞으로 어떨지 모르겠어요.
과연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움직일 생각이에요. 다시 돌아가자는 결정이 내려지면 돌아갈 거예요. 우리를 쿠투팔롱으로 데려가 준다고 하면 거기 있을 거고, 여기 그냥 있으라고 하면 여기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저 있으라는 곳에 있을 거예요. 하라는 대로 하려고요. 그렇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해서 살아남아야죠.”
국경 근처 나프 강 선원 무지 ⓒIkram N'gadi
“저는 ‘무지’(선원)이에요. 저는 아침 8시경 여기 와요. 그런 다음 ‘샨 푸넴 딥’으로 가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로힝야족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이쪽으로 데려와 여기 내려 주죠. 제 일은 그뿐이에요. 로힝야족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보통 저는 하루에 500명가량 태우는데요. 매일 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이리로 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