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트로헤스 지역의 이민국 앞에는 궂은 날씨에도 하루에 수백 명씩 줄을 선다. ©MSF/Laura Aceituno
니카라과 국경과 맞닿아 있는 온두라스의 트로헤스(Trojes) 지역은 지난 몇 년간 이민자들이 주로 거쳐 가는 경유지 역할을 해왔다. 온두라스 이민국에 따르면 2021년부터 트로헤스를 거쳐간 미국행 이민자는 100,000명이 넘는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민국 앞에 줄을 서는 사람만 하루 수백 명에 달한다. 합법적으로 국경을 건너는 데 필요한 특별 이동 허가서를 받기 위해서다. 특별 허가서는 비정규 이주자에게 발급되는 것으로 5일간 유효하다. 트로헤스에 도착하는 이민자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과 특별 허가서를 받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인도주의적 위기 경보를 울렸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매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Tegucigalpa)에서 트로헤스까지 이동진료소를 운영하며 의료서비스 및 심리 치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 험준한 다리엔(Darien) 정글을 거쳐 트로헤스까지 먼 길을 걸어 온 이민자들은 60여 개국 출신으로, 날로 악화되는 여건 속에서 필요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취약한 환경에 처해있다 탈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증언을 소개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피란한 오마르
최근 트로헤스에 위치한 온두라스 이민국을 찾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주민이 급증했다. 대부분은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벌어진 전쟁으로 피란 행렬에 올랐다. 한 해 전 브라질로 피란했다가 가족과 다시 상봉하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 중인 아프간 출신 오마르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오마르와 친구가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진료받고 있다. ©MSF/Laura Aceituno
아프가니스탄은 더 이상 살기 안전하지 않습니다. 저는 토목 기술자로 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제가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모든 걸 포기해야 했죠. 브라질로 떠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와 대학이 운영을 중단해서 제 딸들은 공부를 이어갈 수 없었어요. 하지만 언론 검열때문에 이런 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제 가족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처한 상황은 정말 심각합니다.”_오마르(Omar) / 아프간 출신 이민자
정글을 건너다 딸을 잃을 뻔한 앙헬리카
앙헬리카의 딸들이 이주 경로가 표시된 지도를 보고 있다. ©MSF/Laura Aceituno
정글에서 겪었던 일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요. 현실이 어떤지 미리 알았다면 제 소중한 두 딸을 그리로 데려가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베네수엘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는데 월급이 제때 나오질 않아서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친척이 있는데 살기 훨씬 나을 거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리엔 정글에 도착했을 때는 이곳을 지나가는 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어요. 저는 남편과 8살, 6살 두 딸과 함께 이동했는데 따로 강을 건너야 하는 구간이 있었어요. 물살이 그리 세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저와 딸이 휩쓸렸습니다. 짐을 다 버리고서라도 딸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에 식은 땀이 흘러요.
니카라과에 도착했을 때 이제 강을 건너는 악몽 같은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강이 나타났죠. 겁에 질린 딸을 달래서 겨우겨우 건넜습니다. 아이가 감기게 걸렸는데, 다행히 이곳에서 감기약을 받아 먹일 수 있었어요. 이제 남은 여정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길 간절하게 바랍니다.”_앙헬리카(Angélica) /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
브리토 가족을 절망에 빠트린 이주 여정
브리토 가족의 장녀가 진료를 기다리며 아들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다. ©MSF/Laura Aceituno
정글에서의 기억은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끔찍했어요. 위험하기로 악명높은 라스 반데라스(Las Banderas) 산에서 지낼 때도 저희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산을 떠난 순간부터 문명과 동떨어지죠. 저와 제 뒤에 오고 있는 이들만 있을 뿐입니다.
3일하고도 반나절을 음식 없이 버텨야 했습니다. 물과 즙 같은 걸 마시며 힘들게 연명했어요.
떠난 이유를 잊을 정도로 정글에서의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매일 울면서 기도했고, 답답함을 해소하려 혼자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절망만이 남았던 끔찍한 경험이었어요.”_브리토(Brito) / 이주민
피지 못하고 꺾여버린 꿈
보건인식제고 담당자가 이주 경로가 표시된 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MSF/Laura Aceituno
제가 베네수엘라에 살면서 이 사태를 조사하려고 할 땐 상황이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몇 년 전이긴 하죠. 저는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면서 공부를 병행했어요. 그때 지금 제 남편을 만났는데, 당시에 남편은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어요. 저는 저널리즘 학위를 따고 관련 직무로 바로 대학에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바뀐 후 모든 것이 달라졌고 설상가상으로 남편과도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을 위해 길을 떠난 첫날 몇몇 사람들이 저와 아이들을 쫓아왔습니다. 다행히도 한 신사분께서 차를 멈추신 덕분에 그 사람들이 달아났어요. 아마 경찰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운전자가 저희를 차에 태워줬고 이어서 한 엄마와 17세 아들의 시신을 태웠어요. 정말 가슴이 아프고 처참했습니다. 온두라스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제 파트너가 신장이 안 좋아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경로를 다른 사람에겐 절대 추천하지 않을 거예요.”_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