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 작디작은, 연약한 생명을 안고 앰뷸런스 뒷자리에 탔어요. 그 아기에게는 앞으로 정말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죠. 국경에 당도해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의료진이 왔을 때 저는 철조망 사이로 그 작은 꾸러미를 넘겨줘야 했어요.”
시리아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쌍둥이를 임신한 6개월차의 산모가 도착한 날, 병원에는 조산사 아만다 고드발레(Amanda Godballe)밖에 없었다. 아직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분만을 미룰 수 없을 만큼 이미 진통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는 소아과 의사도 인큐베이터도 없고 미숙아를 돌볼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조산사는 저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야 했죠. 특히 아기들이 태어나면 일단 소생술로 안정을 시켜야만 국경 너머에 제대로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아직 분만 지원 경험이 없는 벨기에인 간호사, 통역을 하는 시리아인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고드발레 조산사가 받은 쌍둥이는 약 1.2Kg 밖에 나가지 않는 작은 여자 아기들이었다. 안타깝게도 둘째는 세상에 나온 지 30분만에 숨을 거뒀지만, 세드라(Sedra)*라고 이름 붙여진 첫째는 비교적 안정되어, 엄마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앰뷸런스를 타고 국경 너머의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제 세드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비는 것밖에 없었다.
이후 현장 활동을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온 조산사 고드발레는 세드라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24일을 인큐베이터에서 보내는 등 힘겨운 시간을 무사히 보냈고, 세드라의 엄마가 출생증명서를 받기 위해 그 병원을 다시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으니 감동적이었어요. 이런 경험은 저에게 목적 의식을 줍니다.”
고드발레 조산사의 말처럼 우리는 “제한된 주어진 여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우리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환자의 이름은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