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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워킹맘에서 구호활동가가 되기 까지... - 이선영 활동가 (산부인과의)

2018.06.07

단시간이었지만 친구 같이, 때로는 자매 같이

그리고 딸이나 엄마처럼 나를 받아들여 주던 생면부지의 환자들과

현지 여성들의 미소와 사랑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저의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선영 활동가(산부인과의)의 모습 - 나이지리아, 남수단, 라오스, 파키스탄, 레바논 현장에 파견되었음

요즘 국경없는의사회의 구호 활동가로 지난 5년간 여러 오지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저는 집안일, 직장 일에 얽매인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보람 있으며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노후가 보장되며 약간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저는 반강제적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오지를 다니느라 오랜 기간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고 이후 한국에서의 저의 고용 상황과 노후는 불안정해졌습니다. 사실, 오지 구호 활동이 힘든 것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저처럼 사는 것이 정상적인가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해야 하는 순간이 더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계속해서 구호 활동을 떠날까요?

이선영 활동가(산부인과의)의 현장 활동 모습

처음, 아프리카 땅에서 마주친 어리고 병약한 임신부들의 신음을 듣고 정신을 놓던 일에서부터, 깊은 산속에서 현대 의학이 뭔지 모르고 아이를 낳다가 죽어가는 아시아 여인들도 생각납니다. 구호 지역의 막막한 상황에 무기력을 느끼며 냉소적으로 변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보았습니다. 전쟁으로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난민 여성들이 겪는 위험한 분만 과정도 지켜보았습니다. 성폭력을 당하면 오히려 감추고 쉬쉬하는 등 여성의 인권이 제로인 지역에서도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이선영 활동가(산부인과의)의 현장 활동 모습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단시간이었지만 친구 같이, 때로는 자매 같이 그리고 딸이나 엄마처럼 나를 받아들여 주던 생면부지의 환자들과 현지 여성들의 미소와 사랑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저의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내 자매와 딸들 같았던 그녀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건강하고 잘 살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기에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고, 또 이것저것 따지고 고민할 시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살다가 구호 활동지가 결정되면 짐을 싸는 수 밖에요. 그리고 그곳에 가면 저마다 자기의 한계 또는 국경을 넘어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아, 나는 혼자가 아니야.” 하고 안심하게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