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중아공) 밤바리에서 겪은 일을 얘기할 때, 타티아나(가명)의 목소리는 거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
“남편은 무기를 든 남자들 손에 죽었고, 저는 수용소로 붙잡혀 가서 그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했어요. 며칠 있다가 거기서 제 아이까지 목숨을 잃었어요. 남아 있던 다른 아이에게는 뭘 사오라고 해서 수용소 밖으로 간신히 내보냈고, 저도 나중에 겨우겨우 도망쳤어요.”
타티아나의 이야기가 유독 특이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폭우가 사정없이 지붕을 두드리던 날, 국경없는의사회 성폭력 진료소 한 방에서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귀담아 들었다.
수도 방기의 지역 병원(Hopital Communautaire)에 마련된 이 진료소에서는 2017년 12월부터 지금까지 근 800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다. 진료소를 찾아오는 환자 대다수는 여성이며 그중 4분의 1은 18세 미만이다. 중아공 전역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는 2018년 상반기 동안에만 총 1914명의 성폭력 생존자들을 치료했다. 이들 중 절대 다수는 방기에 위치한 진료소 ·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생존자들을 통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지원이 필요한지 알 수 있고, 현재 의료 · 사법 체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성폭력은 공개적인 상황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는 주제다. 그러나 성폭력으로 인한 잠재적인 환자가 많다는 것이 수시 비센테(Susi Vicente)의 증언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숫자는 빙산에 일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현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사람들은 치료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상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려고 하거든요.” _ 수시 비센테(Susi Vicente)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중아공에서 성폭력이 전쟁 무기로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은 문서로 잘 기록돼 있다. 2017년,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2013년 초반부터 2017년 중반까지 5년여 동안 무장 단체들이 강간, 성노예를 일상적인 전쟁 전술로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다시 중아공에서 폭력이 심각해지는 지금, 이 같은 최근 역사는 민간인들을 두려움에 몰아넣는다. 2018년 상반기에도 중아공 곳곳에서 폭력이 일어났다. ‘무기 없는 도시’로 이름나 있던 밤바리마저 올해 4월, 분쟁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타티아나가 겪은 일들과 유사한 경우들을 만들어 냈다.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위험에 처하는 것은 분쟁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어디서든 전투가 벌어지면 훨씬 더 위험이 높아지는데, 이때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단이나 메커니즘이 없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실제 공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의 심판을 물을 수 없는 여성들과 아동들은 불안한 환경에 처한다.
“누군가 찾아와서 의붓아버지나 사촌한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도 피해자를 안전하게 지켜줄 시스템이 없습니다. 피해자 가족마저 이를 모른척하는 경우도 있죠. 우리가 만나는 환자 중에는 가족이나 마을 사람에게 폭력을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_ 수시 비센테(Susi Vicente)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진료실에 조산사, 의사, 심리학자가 있으면 환자들이 신체적 · 정신적 건강 상태를 점검받을 수 있다. 환자가 공격 직후 72시간 안에 찾아오면 의사들은 ‘노출 후 예방’(post-exposure prophylaxis) 약물을 처방해 환자의 HIV 감염을 예방한다. 한편,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들은 보다 장기간 환자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성폭력 이후에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돕는다.
타티아나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현재 타티아나는 오빠 가족과 함께 살면서 시어머니 일을 돕고 있다. 그렇지만 한번 받은 충격이 그렇게 쉽게 아무는 것은 아니다. 괴로운 기억들은 지금도 저 밑에서 들끓고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여기서 치료를 시작하고 오랜 기간 상담을 받았더니 처음보다는 좋아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