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드 압델모네임(Javid Abdelmoneim)은 영국 출신 응급실 의사이다. 그는 최근 가자지구에 방문해 의료 팀장으로 활동했다. 아래는 그가 가자지구에서 머문 2개월 중 일주일을 기록한 일지이다.
최근 가자지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팀장으로 활동한 자비드 압델모네임. 2022년 3월. ©Nora Guicheney/MSF
6월 6일 목요일
가자지구에서의 첫날 밤이다.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국경과 맞닿은 가자지구 해안가에 도착했다. 바다에선 군함이 해안선을 향해 발포하고, 하늘에선 드론과 헬리콥터, 전투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밤이 되면 폭발로 인한 충격으로 집 창문이 수도 없이 덜컹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룸메이트들을 살피는데, 정작 그들은 별 반응 없이 조용히 누워 잠만 잔다.
이렇듯 가자지구를 덮친 가혹한 현실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북부, 중부, 남부 등 가자지구 전역 주민들에게 닥친 현실이다.
6월 7일 금요일
오늘은 최근 화상 및 외상 정형외과 병동 운영이 재개된 칸 유니스(Khan Younis)의 나세르 병원(Nasser Hospital)과 1차 보건의료 진료소 중 한 곳을 방문했다. 5월 초 라파(Rafah)에서 발생한 공격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라파 인도네시아 야전병원(Rafah Indonesian Field hospital)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했다. 우리는 이전에 이스라엘군에 포위된 적 있는 나세르 병원으로 다시 이동했다.
운영이 재개된 가자지구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의 야전 치료실 내부. 2024년 6월. ©Javid Abdelmoneim/MSF
해안 도로를 따라 가자지구 중부의 데이르 알 발라(Deir al Balah)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끝없이 이어진 임시 텐트를 지나쳤다. 해안선에서 내륙까지 쭉 뻗어 있는 텐트들은 한 치의 여유 공간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인도적 지대(humanitarian zone)”로 지정된 그곳에는 약 백만 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으로 내몰렸다. 1차 보건의료 센터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내리는 진단은 식수위생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설사, 피부 및 눈 감염 예방에 필요한 깨끗한 물과 화장실, 비누, 소독제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라파 국경은 공격 시작과 동시에 폐쇄되었고, 그 이후로 가자지구 외부에서 들어오는 의료물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소염진통제로 처방되는 이부프로펜(ibuprofen)도 다 떨어졌다. 수술 가운도 모자라 빌려 입어야 했다. 재고를 아끼려고 화상 환자의 드레싱 교체 횟수도 줄여야 했다. 나세르 병원의 화상 및 정형외과 외상 병동에는 병상용 매트리스조차 충분하지 않다.
발전기가 수술실 에어컨을 가동할 만큼 강력하지 않아서 수술복을 여러 겹 껴입은 외과의와 간호사들이 도저히 더위를 견딜 수 없어 오늘 6건의 수술을 취소해야 했다. 연료가 부족해 더 큰 발전기를 가동할 수가 없다. 인력도 부족하다. 여기 직원들은 너무 지친 상태이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차례 이동해야 하는 상황과 공격을 견디며 텐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도 병동 운영이 재개된 지 일주일 만에 이미 병상 가동률이 100%에 이르렀다. 의료 수요가 어마어마하다.
6월 8일 토요일
이스라엘의 인질 구출 작전이 전개되면서 가자지구 중부에 있는 누세이라트(Nuseirat) 캠프에서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캠프에서 가장 가까운 의료시설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알 아크사(Al Aqsa) 병원인데, 거기서 활동하는 의료팀은 이미 수많은 부상자로 과부하에 걸렸다.
알 아크사 의료팀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약 60명의 환자가 나세르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중 19명은 수술이 필요한 화상 및 정형외과적 외상을 입은 상태로 우리 병동에 들어왔다.
6월 9일 일요일
우린 아직도 어제 일로 휘청이고 있는데 더 많은 환자가 유입되면서 부담은 가중되기만 하고 있다. 구조된 사람보다 단지 부차적으로 희생된 사람의 비중이 더 높다는 사실은 인류의 수치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이는 이런 규모의 사상자 발생이 가자지구에서 언제 어디서든, 우리 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 아크사는 여전히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며칠 내로 환자 5명을 더 받기로 했다.
6월 12일 수요일
오늘은 인도주의 구호를 위한 호송 차량을 타고 북쪽을 향해 가자시(Gaza City)로 이동한다.
전쟁 이전에 국경없는의사회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폭격이 시작되고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자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해당 지역을 떠났다. 이스라엘군은 군사 완충지대를 설치해 북부와 남부를 단절시켰다. 고립된 영토 속 또 다른 고립 영토가 생긴 꼴이다.
그 이후로 북부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인도적 지원으로부터 거의 단절되어 왔다. 놀랍게도 일부 국경없는의사회 동료들은 그곳에 남기로 했다.
이스라엘의 보안 절차로 인해 검문소와 완충지대를 통과하는 데 무려 4시간 30분이 걸렸다. 가자시에 진입하니 황량한 풍경만이 우리를 맞이했다. 도로에는 아스팔트도 없었다. 창문엔 유리가 없었고, 나무, 풀, 사람도 없었다. 그저 먼지와 잔해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들. 휴대폰에 이스라엘 네트워크가 잡히자 “이스라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4시간 동안 추가 비용 없이 일일 데이터와 통화량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루 5파운드가 부과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자비드가 현장 방문 당시 촬영한 가자시 도로. 2024년 6월. ©Javid Abdelmoneim/MSF
우리 진료소 근처 마을에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남부의 과밀한 “인도적 지대”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몇몇 굶주린 사람들이 우리 호송 차량으로 다가와 음식을 구걸했다. 전투기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으나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진료소에 있던 동료들은 4월 이후 다른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 이후 북부로 향하는 인도주의 구호를 위한 호송 차량 유입이 여섯 번이나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나를 만나자 반가워했다. 나는 의료 물자를 가져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호송 차량을 타고 남부로 향하기 전 그들과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말로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진료소를 계속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료소에는 간호사 3명과 물리치료사 2명이 주 6일 근무하며 일주일에 평균 3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로.
가자지구 북부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자비드와 동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년 6월. ©Javid Abdelmoneim/MSF
6월 13일 목요일
어제 목격한 일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해변에서 어부 2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호송 차량이 완충지대에 들어가기 전 대기 지점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떤 남자들이 얕은 바닷물에서 어망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들은 뛰기 시작했다. 무전기에서 군용 지프차 4대와 탱크가 접근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총알이 발사되면서 물과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고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남자 2명이 모래밭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당국에 연락해 해당 남성들에게 응급 처치를 하거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릴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다른 어부들도 돌아왔다. 한 어부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용기를 내어 직접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개들이 시신을 먹은 뒤였다고 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끝내 거절했던 우리 요청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어부들은 시신을 직접 수습하기로 했다. 그쯤에는 이미 두 번째 남성도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해변으로 가면 위험하다고 재차 설명했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시신이 호송 차량으로 옮겨졌을 때, 우리는 사망자를 확인하고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 남성은 목에 한 발, 다른 남성은 등 뒤에 한 발을 맞아 심장을 관통했다. 그중 한 명은 여전히 어망을 잡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완충지대 가장자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굶주린 어부들을 죽여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6월 14일 금요일
어제 북부에 거주하는 동료 간호사의 자택이 폭파되었다. 마치 그녀가 살아선 안 되는 곳에 살았던 것만 같다. 동료의 어린 딸은 다리가 부러졌고, 동료는 손목을 다치고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녀의 자택은 파괴되었지만, 적어도 죽음은 면했으니 다행이다.
6월 15일 토요일
내일은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 이슬람 최대 명절 중 하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동료 모두가 휴일에도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의료지원을 제공하고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게 분명하다. 결국 그들은 인도주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인정한 집단학살일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에 잠식되고 싶지 않아 차라리 일에 몰두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동료는 내게 “이번 이드에 희생되는 건 양이 아니라 우리일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글을 쓴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보낸 첫 주가 마무리되었고, 사람들에게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여기서 목격한 것을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