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유엔 회원국들이 한자리에 모여 ‘난민·이주민의 거대한 이동을 다루는 데 보다 협력적이고 인간적인 접근’을 도출하고 뉴욕 선언(New York Declaration)에 합의하기 위해 역사적인 첫 회의를 연다. 지난 12개월 사이에만 전 세계 국경에서 5749명이 숨졌고,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날로 제약을 더해 가는 망명·이주 정책의 여파로 고통받는 수십만 명의 남성, 여성, 아동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이번 회의는 매우 시기적절하다.
그러나 뉴욕 선언(New York Declaration) 초안은 그 의도는 바람직하나 그 내용은 지나치게 모호하고 이주민·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시급성이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2018년까지 확실한 결과 도출’을 목표로 하는 이 선언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전 세계 피난 위기를 해결하려는 진정한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멕시코에서부터 카메룬,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이 목격한 현실에 따르면, 이번 선언에 서명할 것으로 보이는 유엔 회원국 중 다수는 이미 이와 반대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들의 해로운 이주·망명 정책들로 수백만 명의 이주민·난민의 고통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 회의를 앞두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래는 국경없는의사회가 난민·이주민을 대상으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동시에 오늘날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 세계 8개 지역에 관한 내용이다.
현실 체크 1: 베름(BERM)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
저녁 식사에 쓸 가지를 다듬는 할머니 옆에 앉아 있는 시리아 난민 아동.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시리아 국경에서 가까운 요르단 마프라크 외곽에 위치한 임시 텐트촌 밖이다. ⓒHH
6월 21일, 요르단은 국가 안보 유지라는 명목으로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쪽 국경을 폐쇄했다. ‘베름(Berm)’이라고 불리는 요르단 군사기지가 차량 폭탄의 표적이 된 후 벌어진 일이었다. 이로써 7만5000명이 아무런 지원 없이 사막에 발이 묶였다. 5명 중 4명은 여성과 아동들이다. 물도 충분히 구하기 어렵고 식량은 거의 구할 수 없다. 베름 지역은 공식적인 난민캠프가 아니라 전쟁을 피해 떠나 온 사람들이 모여 이룬 정착지다. 현재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인도주의 단체는 없으며, 이에 따라 베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인도적 서비스가 부족하다.
5월 16일부터 6월 21일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베름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갈 수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만성질환 환자들, 그리고 당뇨·심장질환·암·선천적 기형 등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만났다. 이 기간 동안 실시한 총3501회의 진료 중에는 200여 명의 영양실조 아동과 450명의 임산부를 위한 진료도 있었고, 한 아기의 출산을 도운 적도 있다.
사람들은 지금 거주하기에 극도로 나쁜 곳에 갇혀 적절한 인도적 지원도 없이 여전히 시리아 폭력에 취약한 채로 머물러 있다.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적절한 보호와 더불어 난민들에게 필요한 인도적·법적 지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베름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시급히 재개되어야 하며, 이 곳에 갇혀 있는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은 요르단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사막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 체크2: 다다브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들
다다브 난민캠프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영양실조에 걸린 아동들을 안고 난민캠프 외곽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새 치료식 센터로 가고 있다. ⓒBrendan Bannon
케냐에 위치한 다다브 캠프는 세계 최대의 난민캠프로서, 약 35만 명의 소말리아 난민들의 터전이다. 20여 년 전에 임시 캠프로 시작한 이곳은 날로 규모가 확대되는 동안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려 왔다. 치안 불안과 폭력 또한 캠프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왔다.
2013년 11월, 소말리아 치안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하자 케냐·소말리아 정부와 유엔난민기구(UNHCR)은 캠프 주민들의 자발적 송환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은 3자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러나 결국 치안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 당시 설정한 3년 기한이 다다르자, 케냐 정부는 ‘치안 및 경제적·환경적 이유’를 들어 다다브에 있는 사람들을 소말리아로 돌려보내는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캠프 주민들에게 물·식량·거처가 충분치 않다는 보고가 잇따라 나왔지만, 국경없는의사회가 2016년 8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다브에 남아 있기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나마 다다브에서는 보다 안전하다고 느끼고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다브에 있는 수십만 명의 난민들을 교착 상태에 빠뜨린 가운데, 이들을 소말리아로 강제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장소로 강제로 되돌려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을 위반하는 비인간적인 처사다.
오랫동안 이어진 난민 상황을 다루는 데 난민캠프가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그들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다다브를 폐쇄하겠다는 케냐 정부의 의사에 강력히 반대하다. 다른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는 지금, 다다브 캠프를 폐쇄한다는 것은 난민들을 강제로 소말리아에 돌려보내 수십만 명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도록 만들게 될 것이다.
현실 체크 3: 리비아에 있는 난민들과 이주민들
난민들과 이주민들이 리비아 트리폴리의 구금 센터에 갇혀 있다. ⓒRicardo Garcia Vilanova
지난해 지중해 중부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물에 빠져 숨질 뻔한 3만4000여 명을 구했고, 그 밖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그들이 떠나온 나라가 어디인지,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여기서 구조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리비아를 통과했다.
많은 사람들은 리비아에서 폭력을 겪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구조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난민·이주민·망명 신청자들이 당하는 극악한 폭력을 목격했다고 보고한다. 구타를 가하거나 호스로 채찍질을 하거나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일어난다고 한다. 지중해에서 구조 활동을 실시하는 구조선 3척에 승선해 지금도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들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날로 늘어나는 미동반 아동(어린 경우 최소 10세)들이 겪는 신체적·심리적 폭력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은 리비아를 통과하는 이주 루트에서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학대와 잔인한 예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긴 칼에 팔뚝을 맞고 1주일간 상처가 감염된 채 지낸 남성도 있었고, 반복적인 머리 가격에 고막이 찢어진 젊은 여성도 있었다. 구타를 당해 사타구니가 심각하게 부풀어 오른 남성도 있었고, 구금 중 채찍에 맞아 쇄골이 부러지고 등에 상처가 난 남성도 있었다. 칼라슈니코프 소총에 수차례 맞아 손가락 뼈들이 다 부서진 남성도 있었다. 여성들은 강간, 강제 매춘, 노역 등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경험한 여성들도 있었고, 치아가 다 망가지거나 불 때문에 손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현실 체크 4: 지중해 횡단
2016년 6월 8일, 선박 3척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지중해에서 부르봉 아르고스 호에 구조돼 이탈리아 시실리로 이송되었다. 당시 각 선박에는 약 150명이 타고 있었다. ⓒSara Creta
올해 들어 지금까지 총 3198명이 유럽으로 들어가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지중해 중부 횡단은 작년보다 거의 두 배나 위험해졌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바다 횡단에 대해 안전하고 법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유럽연합과 유럽 국가들이 내놓는 정책들은 가장 안전한 출구를 계속 차단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유럽으로 향하는 비좁은 보트에 몸을 맡기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뉴욕 선언(New York Declaration)은 해상과 육지에서 이루어지는 수색·구조 메커니즘을 강화할 것을 약속하고 있지만, 현재 유럽의 수색·구조 활동은 국경 통제의 긍정적인 부작용이지 우선순위가 아니다. 물론 유럽 국가들이 제공하는 군사 작전 및 반-밀수 활동도 곤경에 처한 이주민·난민 선박들을 구조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실시하는 기본적인 활동일 뿐, 처음부터 구조 활동을 위해 설계된 활동은 아니다. 안전하고 법적인 루트를 설정하는 것만이 해상에서의 죽음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중해 중부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실시하는 노력을 보충할 만한 적극적인 수색·구조 전담 체계를 수립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우리 경험에 따르면, 생명을 살리려면 전담 구조 활동을 실시해야 하며, 애초에 사람들이 해상으로 나오는 지점에서 최대한 가까운 지점까지 적극적으로 순찰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은 비정부기구들만이 이 격차를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현실 체크 5: 이탈리아·그리스·발칸 지역에 있는 수용 센터와 경유지
그리스 아테네. 前 엘리니코 공항 자리였던 이 곳은 난민캠프로 탈바꿈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주 4회 이 곳을 찾아가 사람들에게 생식 건강 지원, 심리적 지원을 한다. ⓒPierre-Yves Bernard
소위 유럽 난민 위기가 2년째 접어드는 가운데, 유럽 내 여러 지역의 상황은 계속 혼란스럽고 비인간적이다. EU-터키 협약이 효력을 발휘한 이후 6개월, EU 내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는 지금 심각하게 제한돼 있다. (EU-터키 협약에 서명한 EU 회원국 28국 대표가 이번 뉴욕 회담에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수천 명이 국경 이곳저곳에 발이 묶인 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거의 없이 열악한 여건 속에 살아가고 있다.
회원국들의 승인 아래, 그리고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을 위반한 가운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포함해 남성, 여성, 아동들이 보호가 필요한 그들이 상태를 채 살펴보지도 않은 채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국경에서 거절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터키, 세르비아, 그리스 등지의 불충분한 보호 시설로 다시 되돌아가 그곳에서 비인간적인 여건을 참으며 지낼 수밖에 없다.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를 통과하는 발칸 루트가 차례로 폐쇄되면서 유럽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밀수업자를 거치는 일이 돼버렸다. 국경없는의사회 데이터에 따르면, 발칸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의 지원을 받는 환자 중 1/3은 학대와 폭력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여성과 아동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폭력의 책임은 대개 밀수업자들에게 있지만, 최소 절반가량의 사건은 정부 당국 관계자들이 저지른다는 것이 환자들의 말이다.
뉴욕 선언(New York Declaration)에서는 ‘도착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세심하고 인간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성별을 고려하는 사람 중심의 수용 체계를 보장’할 것을 약속하지만, 현재 모든 국가의 수용 체계는 고국을 피해 떠나 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적절한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EU-터키 협상에 따라, 1만3000만여 명이 그리스 군도에 발이 묶여 있다. 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7450명만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의료 지원과 물 등 기본 서비스도 심각하게 부족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부족해 긴장 수준이 매우 높다. 본토라고 해서 사정이 훨씬 나은 것도 아니다. 여러 캠프의 여건은 기본 수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몇몇 곳은 석면 등 해로운 물질로 지은 곳들이다.
뉴욕 선언(New York Declaration)에서는 ‘취약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의 특수한 필요사항들을 모두 인정할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그리스·이탈리아에서 취약 계층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유럽에 도착하는 미성년자의 90% 이상은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 홀로 이동 중인데, 그 중에는 10세밖에 되지 않은 아동들도 있다.
뉴욕 선언(New York Declaration)의 약속, 그리고 EU가 투자한 수백만 유로의 자금에도 불구하고,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유럽 국가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지 못하고 구금, 폭력, 열악한 생활 여건, 기본 서비스 부족 등 더 큰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유럽 국가들은 보호를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현실 체크 6: 차드 호의 폭력을 피해 떠난 사람들
나이지리아 담보아에서 전에 병원이었지만 이제는 피난민 캠프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에 국내 실향민들이 거처를 배정 받았다. 이 곳의 생활 여건은 열악하고, 주어진 공간에 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은 매우 많으며, 식량과 위생 여건도 부적절하다. ⓒIkram N'gadi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차드 호 지역에 위치한 쿨키메(차드)에는 약 1800명의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보코 하람’이라고도 알려진 이슬람국가 서아프리카 지부(ISWAP), 그리고 차드 정부가 벌이는 군사 작전을 피해 떠나 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쿨키메에서 보건소를 지원하는 차드 보건부의 일을 돕고 있다. ⓒSylvain Cherkaoui
보코 하람의 공격과 그들에 맞서 군이 일으킨 전투를 피해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260만 명에 이른다. 극심한 폭력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민간인들은 살아나갈 대처 수단도, 다시금 삶을 일으킬 희망도 모두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난민캠프에서 지원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들을 받아들인 지역사회에서 열악한 여건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곳들은 이미 자원이 부족한 상태다. 어떤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한 장소에 발이 묶인 채 외부 지원에 의존해 살아간다. 이곳 지역들은 치안이 매우 불안해 구호 지원 자체가 어렵다. 이에 사람들은 매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의료 지원을 비롯해 기본적인 필요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차드, 니제르 내 수많은 장소에서 피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수인성 질환, 영양실조 등 열악한 생활 여건에서 비롯된 유행병과 질환들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많이 나타난다.
폭력과 피난은 빈곤, 극심한 취약성, 식량 부족, 유행병 재발,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보건 체계 등으로 이미 절박했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계속된 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식량, 식수, 거처, 의료 지원, 보호, 교육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야말로 위기 속의 위기다.
지금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확신도 없이, 그렇다고 안전하고 품위 있게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 환경에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능력도 없이,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현실 체크 7: 중미에서 멕시코·미국으로 넘어 온 폭력의 피해자들과 난민지위 신청자들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수치아테 강. 중미 이주민들은 작은 배를 타고 이 강을 건넌다. 멕시코로 들어가는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다. ⓒAnna Surinyach
매년 약 30만 명이 폭력과 빈곤을 피해 엘살바도르·온두라스·과테말라(중미 북방3개국)를 떠나, 미국에 들어갈 희망을 안고 멕시코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겪는 폭력은 세계 곳곳의 전쟁 지역에서 나타나는 폭력과 다르지 않다. 비정부 무력 단체들이 저지르는 살인·납치·위협·신병 모집·강탈·강제 피난 등 갖가지 폭력으로 사실상 갱단과 범죄 단체들이 통제하는 지역에 사는 수천 명이 날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멕시코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의 의료 지원을 받는 중미 북방 3개국 출신 환자들의 16%는 직접적인 공격을 피해 고국을 떠났다고 했고, 41%는 개인적인 위협을 받은 이후에 떠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중미에서 비밀리에 멕시코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멕시코 전역에서 또 다른 폭력을 겪을 상황에 체계적으로 노출돼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데이터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의 지원을 받는 이주민 중 68%는 미국에 들어가려고 멕시코를 경유하는 동안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여성 중 1/3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했다. 폭력의 피해자 중 47%는 그들이 겪었거나 목격한 폭력의 영향으로 심리적인 피해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미국의 재정적 지원 속에 멕시코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 ‘프로그라마 프론테라 수르’(Programa Frontera Sur)는 중미에서 이미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을 또 다른 폭력에 노출시키고, 이들에게 필요한 피난처와 보호 체계를 체계적으로 빼앗는다. 조직 갱단의 피해자들이 난민지위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이미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를 탈출한 사람 중 멕시코에서 난민지위 승인을 받은 사람은 0.5%뿐이다.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이주 당국에 붙잡힌 사람들이 난민지위 신청을 한 경우, 판사 앞에서 망명심사 청문회를 하기까지 구금 센터에 머무른다. 난민지위 승인을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목숨의 위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피해 중미를 탈출한 사람들은 멕시코와 미국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추방 당하는데 이는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다. 중미의 폭력을 피해 떠나 온 사람들을 위한 의료 지원, 보호, 인도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이 지역 여러 국가들의 집단적인 실패로 보아야 한다.
현실 체크 8: 동남아시아에 있는 로힝야족
쿠투팔롱에 있는 간이 캠프. 방글라데시에 사는 무국적 로힝야족에 대한 난폭한 단속이 벌어져, 수천 명이 쿠투팔롱 간이 캠프에 피신했다.
수년간 미얀마에 있는 로힝야족은 박해를 피해 떠나면서 밀수업자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무국적 소수 민족으로서 이들이 나라를 떠날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다. 밀수업자 네트워크에 대한 단속으로 그마저도 미얀마를 떠나는 일이 줄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족은 피난민 캠프에 살든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있든 심각한 이동 제한을 받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수년간 의료 지원을 구하는 데 큰 제한을 겪어 왔고, 지금도 상황은 그대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그들이 피난민 캠프 바깥에서 기본 의료 지원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다.
로힝야족에 속한 많은 이들이 방글라데시로 떠나 왔다. 현재 최대 50만 명이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정식 난민 지위 없이 법적으로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의료 시설이나 지원 서비스를 구하기도 극히 어렵고, 착취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도 무척 어렵다. 그들은 착취에 극도로 취약하다. 최근 몇 년간 로힝야족 많은 이들이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떠나 제3국, 특히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으로 피신했다. 이 루트를 따라 이동하는 방글라데시인들도 많은데, 보다 나은 상황을 찾아가려면 밀수업자들의 배를 이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피난처를 찾아 떠난 로힝야족이 이 지역에서 자신들이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힌다. 이 나라들은 난민 협약 서명국들이 아니기 때문에, 로힝야족이 난민으로서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얻을 길이 없다. 이에 따라 그들은 의료 지원을 구하거나 그 밖에 필요사항들을 충족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으며, 체포와 구금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