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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라이베리아: “악조건 속에서도 무사히 회복한 고마운 아이들이 기억납니다”

2019.05.13
이름: 박지혜
포지션: 수술실 책임 간호사
파견 국가: 라이베리아
활동 지역: 몬로비아
파견 기간: 2018년 9월 ~ 2019년 3월 (6개월)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의 발네스빌 소아병원에서 박지혜 활동가와 국경없는의사회 현지 직원들 ⓒ국경없는의사회

1.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고등학생 때 카톨릭소식지를 통해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이태석 신부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의대와 신학대를 졸업하고 혈혈단신으로 남수단에 넘어가 혼자의 힘으로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그들을 돌본 신부님의 활동기를 읽고 강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해외봉사활동을 생각하게 되었고 간호학과로 진학해 제가 할 수 있는 의료봉사를 알아보다가 국경없는의사회 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술실 간호사로서, 의료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단체이자 가장 기부금 운용이 깨끗하고 정당한 곳이라고 생각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2. 구호 활동을 떠나기 전 어떻게 지내셨나요?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알려주세요.

구호 현장에서 유일한 수술실 간호사로서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력이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최대한 경력을 쌓고자 상급종합병원 수술실에서 5년을 일하고 틈틈히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초반에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이제 최소한의 경력은 채워졌다 생각해 병원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가서 1년의 어학연수를 했습니다. 이때 수술간호사로서의 지식을 잊지 않기 위해 병원에서 트레이닝 하면서 정리했던 노트 3권을 분량을 나누어 매일 읽었습니다. 일할 땐 바빠서 심도 있게 하지 못했던 수술공부를 이때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3. 이전에 다녀왔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이번에 도움이 되었나요? 어떤 경험이 가장 유용했나요?

저의 첫 번째 구호 활동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프로젝트였습니다. 긴급 구호 현장이었던 데다가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어서 두 번째 구호 활동과는 그 분위기와 프로젝트 성향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 활동으로 국경없는의사회의 분위기, 현장에서의 활동, 팀워크 등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4. 이번에 활동하고 돌아온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이번 프로젝트는 6개월간 현장 구호 활동으로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의 발네스빌 소아병원(Barnesville junction children hospital)에서 진행되었습니다. 2014-2015년 에볼라 창궐 이후 돌보지 못한 아이들(말라리아, 장티푸스 등) 치료를 위해 세워진 병원입니다. 총 106 개 병상과 281명의 스텝이 일하고 있으며 수술실은 2018년 2월에 새롭게 오픈 되었고 5명의 수술실 간호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수술실 책임자로 배정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투입 전에는 하나의 수술실만 운영 중이었고 일반 수술 파트만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2019년 1월에 두 번째 수술실을 열게 되어 새로운 파트(소아 성형 수술)를 시작했고 저는 그 오픈 준비, 현지 수술 간호사 교육을 도왔습니다. 

 

5. 현장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휴일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나요?

활동가들의 근무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하지만 수술팀(수술의사, 마취과의사, 수술간호사, 마추취간호사) 의 일은 주로 수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수술 케이스가 적고 수술이 비교적 간단한 날에는 오후 3시나 4시에 끝날 때도 있고 반대로 응급수술이 많은 날에는 오후 10시에 끝나기도 했습니다. 자다가 응급 환자가 생기면 한밤중에 일어나 수술실로 달려가는 날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새벽에 응급으로 시작해야 할 수술은 주로 심각한 경우가 많아 다음날 아침까지 (오전 7시-8시) 수술을 하곤 합니다. 이 경우 수술팀은 3-4시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예정되어있는 오후 수술을 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조정합니다.  

라이베리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안전해서 낮 동안 다양한 자유활동이 가능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활동가 몇 명과 그룹을 지어 숙소 근처를 조깅하기도 하고,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1시간 거리에 해변도 있는데 모두들 수영을 좋아해 자주 피크닉을 가기도 하고 저녁에는 바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본인이 원하면 종교 활동도 가능해, 저의 경우에는 일요일에 주로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의 발네스빌 소아병원 수술실. 박지혜 활동가는 수술실 책임 간호사로 6개월간 근무했다. ⓒ국경없는의사회

 

6. 주거 환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아직 두 번째 프로젝트라 잘 몰랐지만 다른 선배 활동가 분들에 의하면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 프로젝트들 중에 숙소가 아주 좋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각방이 배정되었고 개인화장실이 붙어 있었습니다. 침대에는 모기, 벌레의 물림 방지를 위한 모기장이 걸려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과 거실이 있고 꽤나 넓은 앞마당이 있어 함께 배드민턴이나 농구와 같은 간단한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라이베리아 프로젝트 숙소 ⓒ국경없는의사회

 

7. 활동 중 인상에 남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국민 수에 비해 의료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라이베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잘 걸리지 않는 병에 걸려 치료시기를 놓쳐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술이 필요할 만큼 상태가 심한 아이들은 대부분 치료시기를 놓쳐온 경우라 이미 몸의 컨디션, 장기의 기능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수술로도 그 아이의 회복을 확실하게 장담 할 수가 없습니다. 늦은 밤까지 수술을 하고 나와도 아이들의 상태가 회복하기에 너무 약한 상태이기에 안심할 수 없는 날이 많았고 한국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환자들을 많이 잃으면서 상실감과 회의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무사히 회복한 고마운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바로 카라마(가명)라는 아이입니다. 카라마는 처음 응급실에서 만났을 때 초기상태가 심각하게 좋지 않았던 아이였습니다. 9살임에도 불구하고 몸무게가 15kg밖에 되지 않았고, 2달동안 5번이나 배를 여는 수술을 하면서 심장기능, 신장기능, 간 기능이 떨어져 갔어요. 저희 팀 모두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비관적인 예상과 건강 상황을 극복하고 이 아이는 살아났고 건강하게 회복해 정기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르쳐준 한국이름 ‘지혜’를 어색하게 발음하며 간호사들에게 물어물어 저를 찾아 수술실로 왔습니다. (당시 아이가 입원해있던 두 달 내내 병원에 남아있던 수술팀원은 저뿐 이었어요. 활동가들은 각자 활동 기간이 다릅니다.) 너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덥석 안고 이마와 볼에 뽀뽀를 했는데 아이가 제 목을 끌어 안더니 볼에 뽀뽀를 해주었어요. “지혜”라고 부르면서.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넘쳐 흘러서 눈물이 펑펑 났어요. 그때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고 생에 처음으로 제가 간호사인 것이 행복했습니다. 

5번의 수술 후 회복이 되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수술실을 찾아온 환자 카라마(가명). ⓒ국경없는의사회

 

8.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한국에서 휴식을 취할 계획입니다. 쉬는 동안 앞으로 만날 현지 직원들을 위한 교육자료들을 만들어 놓을 생각입니다. 활동가들의 미션활동 중 큰 부분이 현지 직원 교육인데 일하면서 교육자료를 준비하기가 좀 빠듯했거든요. 미리 만들어 놓으며 저도 공부하며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9. 미래 구호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하는 활동은 본인이 가진 것을 보다 더 가치 있게 나눌 수 있는 기회이고, 동시에 자신의 가치와 직업 소명 의식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아직 빈곤, 기아, 분쟁, 의료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과 재능이 한국을 넘어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 구호 현장에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