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는 "지중해 난민 수색구조선 시워치4가 이탈리아 팔레르모((Palermo)에 억류된 지 한 달이 넘도록 행정적인 차단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선박 소유주인 ‘시워치’는 최근 이탈리아 행정법원에 법적 항소를 제출하며 계속되는 억류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시워치4의 국경없는의사회 조산사 Marina가 갑판 위 사람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Hannah Wallace Bowman/MSF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워치와 협력하여 시워치4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구조된 생존자를 위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우리 팀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 구조 작업을 계속할 준비가 된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 지중해 중부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지만 현재 우리 팀은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아동 2명과 임산부 1명 등 20명 가까이 사망하고, 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월 19일부터 시워치4의 운항이 가로막혀 구조 활동을 재개하지 못하고 사실상 갇혀 있습니다. 시워치4가 억류된 이후 지중해 중부에서는 최소 8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백 명이 리비아로 강제 송환됐고, 그곳에서 그들은 고문과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_베아트리스 라우(Beatrice Lau) /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책임자
8월과 9월 시워치4에 승선해 활동한 국경없는의사회 인도적 지원 담당자(humanitarian affairs officer) 일리나 안젤로바(Ilina Angelova)는 시워치4에서 만난 생존자가 자신의 출신 국가에서, 사하라를 횡단하며, 리비아와 지중해에서 겪은 경험을 직접 들었다. 일리나가 생존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2020년 8월 시워치4에서 구조된 생존자의 모습이다. ⓒHannah Wallace Bowman/MSF
“패트릭(Patrick)*은 리비아에서 구금되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패트릭은 납치되어 무장 단체 지도자의 주둔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심 큰 길가에 있었는데, 높은 콘크리트 벽 뒤에 가려져 있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패트릭은 다른 난민과 이주민과 함께 지도자의 주택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말을 하거나 기침을 해도 안 되고,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됐습니다. 규칙을 어길 경우 총살을 당했습니다.
저는 생존자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이야기가 특히 잊히지 않습니다. 분주한 도로와 활기찬 도시 이면에 높이 솟은 막힌 벽 너머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적막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됩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패트릭이 왜 한밤중에 위험한 고무 보트에 올랐는 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도망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설령 보트가 뒤집혀서 익사하게 된다 해도 말입니다. 올해 지중해 중부에서 473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자신이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구조
우리가 구조한 난민 354명은 8월 낮에는 뜨거운 폭염 속에, 밤에는 극심한 추위와 어둠 속에서 혼잡하고 위태로운 보트 위 파도가 치는 대로 표류하고 있었고,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습니다.
이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난민들이 갑판 위에 올랐을 때에는 이미 기력이 소진되어 간신히 두 발로 서 있거나 가까스로 몇 걸음을 겨우 옮길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뱃멀미와 탈수증으로 일부는 즉시 탈진해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고, 심지어 몇 시간 동안 음식을 한 숟가락 뜨지도 못했습니다. 생존자 중 최소 150명이 식량이나 식수가 없는 상태로 엔진이 고장 난 작은 보트 위에서 3일 밤낮을 표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닷물과 휘발유가 섞이며 부식성이 강하고 위험한 상태로 수면 위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고, 매우 고통스러운 화학화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구조 직후 만난 대부분 난민들은 자신의 나이나 국적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다시 하면 멍한 상태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들이 어떤 정신적 외상을 겪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몇 시간에 걸쳐 필사적으로 진행된 구조 작업이 점차 마무리되고, 우리는 또 다른 긴급한 상황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생존자에게 식량과 옷, 위생 용품을 보급하고, 비응급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다 취약하고 필요가 큰 사람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고 안전함을 느낀 난민들은 저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만난 한 청년은 몸에 파편이 박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트리폴리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이었는데, 그때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었다고 합니다. 발에 총상을 입은 10대 소년도 만났습니다. 소년은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길에 괴한의 총에 맞았지만 아프리카계 흑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어떤 여성은 무장 괴한이 다른 여성의 아기를 산 채로 흙에 묻는 광경을 보고, 자신의 아기가 단 몇 미터도 떨어지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존(John)*은 건설노동자인데, 어느 날 공사하던 집의 유리창을 실수로 깨트렸습니다. 집주인은 존의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어 500 리비아 디나르(한화 약 40만원)를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고용주의 답변이 들려왔습니다. “이 아프리카인은 500디나르의 가치도 없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처리하세요.” 그리고 실제로 집주인은 그렇게 했습니다. 집주인은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걸었고 몇 시간 뒤, 존은 3개월 동안 구금되었습니다. 매일 구타와 학대, 전기 고문이 이루어졌습니다. 신체적 학대로 기형이 된 손을 저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단지 유리창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이것은 수치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잔인함과 차별의 행위를 보여줍니다. 모든 흉터와 개에게 물린 상처, 기형이 되고 장애가 생긴 팔다리는 이들이 그간의 여정에서 받은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2020년 8월에 구조된 시워치4 갑판 위의 생존자 가족 모습이다. ⓒChris Grodotzki/Sea-Watch.org
기다림과의 싸움
우리는 각 당국이 시워치 4의 안전한 하선 장소를 지정해 줄 때까지 꼬박 11일을 기다렸습니다. 의도적으로 하선이 지연되며 구조된 생존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담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한 여성이 괴로워하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 손을 잡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자신들을 다시 리비아로 돌려보낼 것이냐며 간절히 애원하듯 물었습니다. 평소 따뜻했던 여성의 눈빛은 공허했고, 자신이 도망쳐나온 했던 바로 그 곳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성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찾아와 같은 질문을 했고, 절박감과 불안감은 나날이 커져가는 듯 했습니다.
“말해주세요. 제발 말해주세요! 우리를 다시 리비아로 데려갈 건가요?”
해결책이 신속히 마련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갑판 위에서는 불안감이 지속되자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과 청소년 중 일부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식욕을 잃어 음식을 먹지 못했고, 의료진은 이것을 우려했습니다. 하선이 지연되며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존자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지치고 불안해 보였지만 한결같이 우리 활동가를 배려하고, 다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폭염 속에서 24시간 동안 계속되는 갑판 위 활동과 야간 교대 근무로 활동가들의 얼굴도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어도 지친 표정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생존자들은 계속해서 갑판 위 작업을 돕겠다며 나섰습니다. 우리의 상태를 물으며 오히려 우리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습니다. 식사 전에는 우리에게 먼저 식사를 했는지 물었고 함께 식사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동지애와 연대의식을 나눴던 순간들, 구조된 사람들이 서로를 (그리고 우리를) 보살피는 사려 깊고 희생적인 태도는 암울한 나날에도 우리의 가슴 속에 희망과 도전을 회복하게 했습니다.2020년 8월에 시워치4에서 구조된 모자가 하선을 준비하고 있다. ⓒHannah Wallace Bowman/MSF
작별 인사
첫 구조작업 이후 11일째 되는 날 우리가 간절히 기다렸던 소식이 전해져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탈리아 당국이 시워치4에 시칠리아(Sicily) 섬의 팔레르모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생존자를 격리 선박으로 이동시킬 것을 지시했습니다.
생존자가 한 명씩 구조선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예방 조치로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으로 하트를 그려 인사했고,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습니다. 생존자들은 몇 년간의 극심한 역경을 뒤로 하고 마침내 유럽에 도착해 구조선에서 걸음을 떼어 선박에 오르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답했습니다.
그들이 이 곳에 도착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저는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수 개월, 수 년간의 착취, 여정 중 잃어버린 부모, 자녀와 친척, 떠나온 곳에 남겨지거나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들, 연민과 지원을 거절당한 채 완전히 버림받았던 가장 암울했던 날들을 말입니다.
구조된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저는 기억합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저와 제 동료들에게 보여준 강인한 회복력과 인내심, 친절함에 감사와 존경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함께 한 마지막 순간에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아무도 버려진 채 남겨지지 않도록 해상 구조 활동을 지속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구조선의 운명은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 진입하면 다시 출항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적었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생존자들이 하선한 시점으로부터 15일 이후, 시워치4는 운항이 가로막혔습니다. 구금의 근거로 사용되었던 법 조항이 이제는 지난 5개월 사이 다섯 번째 지중해 수색구조선을 가로막는 정치적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해상 구조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저는 우리가 구하지 못한, 또 구하지 못할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안전하고 평범한, 존엄성 있는 삶의 기회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까지 그들은 무엇을 감내해야 했을까요? 우리가 만나지 못할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도 유럽이 만든 이 불리한 상황에 저항해 부디 안전한 곳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지중해 중부의 뛰어넘을 수 없는 큰 장벽에 가로막혀 여전히 리비아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유럽이 귀를 닫고 회피하는 동안 패트릭과 함께 억류된 이들과 같이 수만 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전한 침묵 속 강제 구금되어 하루하루를 비인간적인 잔혹함과 잔인함, 부당함 속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 개인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