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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 속 삶과 안전을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1.02.09

이탈리아-프랑스 국경을 넘고자 이동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가정. ©Francesca Volpi

최근 몇 달 사이 이탈리아 북부 국경에는 이주민과 난민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사람들은 눈 덮인 산을 가로질러 서쪽 프랑스로 향하지만, 프랑스 경찰에 의해 가로막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곤 한다. '발칸 루트'를 통해 깊은 숲과 긴 산길을 걸어 이탈리아 동부 국경에 도착한 이들은 여정 중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몇 년 전보다는 전반적인 숫자가 줄었으나, 이주민과 난민이 여정 중에 겪는 폭력과 수모, 고통과 괴롭힘은 변하지 않았다. 이들이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계속 위험한 여정을 떠나는 유일한 이유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당국의 지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인도주의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만이 국경없는의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인도적 지원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12월 중순 두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이탈리아 벤티밀리아(Ventimiglia), 울륵스(Oulx), 볼차노(Bolzano), 트리에스테(Trieste)의 주요 지점을 찾아 이동 중인 이주민과 난민, 이들을 돕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벤티밀리아

거리, 철도 선로, 폐건물, 해변… 당국이 지난 7월 로자(Roja) 강 인근의 임시 난민 캠프를 폐쇄한 후 벤티밀리아 이주민과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캠프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이동 중인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식적인 장소가 없는 것이다. 프랑스 국경에서는 지원 단체와 몇몇 비공식적인 활동가 네트워크가 이들에게 매일 따뜻한 식사를 제공한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그나마 머물 곳을 찾고 있다. 

 

©Francesca Volpi

델리아(Delia)는 벤티밀리아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델리아는 식당에서 이주민과 난민에게 식사를 나누어 준다.  은퇴를 앞둔 60대의 필리포(Filippo)는 매일 식당을 찾아와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할 새로운 가정이 있는지 살핀다. 

©Francesca Volpi

"지난 1년 동안 아내와 저는 우리 집을 열고 난민과 이주민을 머물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30명이 넘는 가정이 우리 집에서 지냈죠. 돈을 받지 않고 머물 곳을 내주었습니다.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는 가정과 여성들을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줬어요. 길거리에서 잠을 자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역에서5분 거리에 있는 구호단체 카리타스(Caritas) 지역사무소는 난민 및 이주민 가정을 위한 법률 자문, 식사, 옷, 숙박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활동에 큰 지장이 있었다. 

"우리는 샤워시설 제공을 중단해야 했고, 식사는 야외에서 배급됩니다. 캠프 폐쇄 이후 상황이 악화되면서 현재 모든 공공기관은 이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지쳐서 희망을 잃고 있어요. 이후가 걱정입니다. 난민과 이주민의 수가 더 증가하면 상황은 위급해질 수 있습니다."_ 크리스티안 파피니(Cristian Papini) 벤티밀리아 카리타스 디렉터

7살 딸을 둔 젊은 부부는 카리타스 숙소 중 한 곳에 머물게 되었다. 에티오피아 출신인 이 가족은 2018년 리비아에 도착해 쿠프라(Kufra)의 구금 센터에 8개월간 억류되었다. 

구금 센터에서 이 부부는 고향에 있는 교회에서 이들의 몸값을 치를 때까지 딸 앞에서 폭력과 고문을 당했다. 부부는 유럽행을 시도했지만 이틀 간의 항해 끝에 리비아 해안 경비대에 의해 가로막혔고 리비아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 구금센터에서 4개월을 보낸 후 탈출에 성공했고 다시 지중해 횡단을 시도하기 전까지 다른 집에서 집안 일을 도왔다. 

2020년 10월 바다에서 3일을 보낸 후 이탈리아 람페두사(Lampedusa)에 도착했다. 이후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벤티밀리아까지 여정을 이어갔다. 

©Francesca Volpi

홍수

2020년 10월 초 극심한 홍수가 벤티밀리아를 강타했고, 그후 며칠 사이에 10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8구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아마도 강가에서 잠들었다 물에 휩쓸린 난민이나 이주민일 것입니다." _루카 다미넬리(Luca Daminelli) /  자원봉사자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저녁 공동묘지 앞 주차장에서 벤티밀리아의 난민과 이주민에게 따뜻한 식사와 옷을 나눠주고 있다. 

©Francesca Volpi

"우리는 이 지역에 세워진 연대 네트워크 덕분에 난민, 이주민과 그 가정을 도울 수 있습니다. 모든 지원은 지원 봉사를 통해 제공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침낭, 담요, 신발, 옷 등 난민과 이주민에게 제공할 물품을 지원해주었는데, 이것은 겨울철에 꼭 필요한 물품들입니다.” 


울륵스 

지난 3년 동안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프랑스로 가기 위해 울륵스에서 수사 밸리(Susa Valley)를 따라 알프스 산맥을 건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봉쇄 조치로 인해 이동 중인 사람들의 수는 감소했지만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다. 여름 동안 적어도 500명이 울륵스를 통과했고, 대부분은 '발칸 루트'를 따라 이동했다. 리비아의 구금 센터에 갇히거나 지중해에서 난파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 길을 택한 북아프리카인, 이란인과 아프가니스탄인이 대부분이다. 

©Francesca Volpi

'탈리타쿰(Talità Kum)' 보호소는 울륵스 기차역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오후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문을 열고, 몇몇 자원봉사자 네트워크가 이곳을 관리한다. 국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몇 킬로미터 더 가면 전직 도로노동자의 집이 있는데,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24시간 쉼터를 제공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Francesca Volpi

"겨울이 되면 산은 얼음과 눈으로 뒤덮이는데, 산을 넘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험해 집니다.” _ 피에로 고르자 / 인류학자 및  인권단체 대표

여정은 역 앞 광장에서 시작되는데, 이곳에서 클라비에르(Claviere)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클레비에르는 이주민과 난민들이 프랑스 브리앙송(Briançon)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국경도시이다. 

"기온이 -15°C일 때 걷다가 발이 젖으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겨울은 모두가 협력해 생명을 구해야 하는 매우 중대한 시기입니다.

 

다행히 이 계곡에는 전쟁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녹아 든 결속력, 투쟁, 저항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산 곳곳에서 난민과 이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와 활동가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사망자는 5명이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망을 막을 수 있죠.” _ 피에로 고르자 / 인류학자 및  인권단체 대표

볼차노

12월 중순 볼차노의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은 약 120명 정도였다. 국경을 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볼차노에 도착했지만, 브레너 패스(Brenner Pass)는 폐쇄됐고,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실제로 이곳에서 국경을 넘으려 시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약 50명이 고속도로 다리 밑의 쓰레기 더미 속 낡은 텐트 사이로 쥐들이 뛰어다니는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깨끗한 물이나 위생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Vincenzo Livieri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볼론타리우스(Volontarius) 협회가 운영하는 이동진료소 덕분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뿐 아니라, 난방이 되는 실내 공간에서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Vincenzo Livieri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단체를 지원해 침낭, 담요, 신발, 옷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난민 등록 체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배포된다.

니제르 출신인 이시피(Issifi)는 독일과 스위스에 잠깐 머물다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유기농 사과 재배를 하는 농부 라이너(Reiner)를 만나기 전까지 이시피는 볼차노의 거리에서 1년 넘게 생활했다. 라이너는 자신의 집으로 이시피를 초대했고, 이시피는 사과 재배 시기 이후에도 계속 라이너의 집에 머물렀다. 

©Vincenzo Livieri

“이시피의 사정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고, 그가 여정 중 겪은 일에 대해 들었을 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느 누구도 이들이 겪는 고통과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겨운 삶을 살았는데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죠.” _ 라이너 

트리에스테

터키에서 온 이주민과 난민은 발칸 루트를 따라 그리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통과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대부분 걸어서 이동하며, 트리에스테 국경을 통해 이탈리아로 들어온다. 이 국경에서 가로막힌 이주민과 난민은 돌아가야 한다. 간혹 이 과정에서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그들이 받는 대우는 악명 높다. 

트리에스테의 이주민과 난민은 푸시백(pushback)을 두려워해 대부분 도시 내에 머문다. 국경에서 최대 10km지점에서도 푸시팩이 일어날 수 있다. 일부는 트리에스테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이탈리아연대컨소시엄(ICS)의 지원을 받는다. 국경을 따라 난 숲길에는 낡고 더러운 배낭과 옷이 버려져 있다. 

*푸시백(pushback): 국경에서 난민과 이주민을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밀어내는 조치

©Vincenzo Livieri

국경과 언어를 넘어 전해지는 입소문 덕분에 이동 중인 많은 이주민과 난민은 저녁이면 철도역 앞 정원에 모인다. 자원봉사자들이 뜨거운 음식과 마실 것, 옷을 나눠주고, 필요한 경우 이동 중 당한 부상을 치료해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제대로 된 신발 없이 먼 거리를 걷다 발에 생긴 부상이다. 심지어는 맨발로 걷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중에 모든 소유물을 강도 당하고 빼앗기기도 한다. 

 

 

©Vincenzo Livieri

국가 기관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개별적으로 일하는 인도주의 활동가, 자원봉사 단체와 지역사회의 소중한 헌신을 목격하고 있다. 이들은 이동 중인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생활 환경과 지원을 제공하고자 한다.  

하지만 배척과 고통보다는 지원과 보호를 보장하는 이주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비인간적인 대우와 경찰의 손에 의한 폭력과 학대, 국경에서 반복되는 푸시백은 큰 고통과 인도적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난민과 이주민이 존엄성이 보장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훨씬 더 위험한 경로를 택하게 될 뿐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탈리아-슬로베니아 국경에서 반복되는 난민 및 이주민의 푸시백을 중단할 것을 이탈리아 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이주민과 난민은 먼저 크로아티아로 밀려난 뒤 보스니아로 가게되는 데, 이곳에서 이들은 절망적인 생활 환경과 반복적인 학대를 겪어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프랑스 국경에서 프랑스 당국과 공동으로 수행되는 경찰 조치에 있어 사람들의 존엄과 안전을 존중하며, 가정, 자녀가 있는 여성, 미동반 미성년자 등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것을 이탈리아 당국에 호소한다. 우리는 또한 이탈리아 당국에 이들의 취약성과 이탈리아에서 머물게 될 제한된 시간을 고려해, 모든 국경 지역에서 적절한 환경과 지원,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