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유림 (*활동가의 요청으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포지션:  마취과의 파견 국가:  남수단 활동 지역:  아웨일 (Aweil) 활동 기간:   2022년 2월  ~ 2022년 5월

1.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남수단 북서부 아웨일(Aweil)에서 소아와 산모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아웨일은 수도 주바(Juba)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인데, 수단 국경과 매우 인접해 있습니다. 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다 보니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괜찮았습니다.

이 병원은 주로 소아와 산모를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지만 아동이나 임산부, 성인 남성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소아 및 임산부 진료를 지원했고 그 외 일반 성인 환자는 현지 보건부가 담당했지만, 나중에는 보건부 소속 의사가 없어 국경없는의사회가 성인 남성 환자도 담당했습니다. 저는 이곳의 유일한 마취과의였기 때문에 하루 평균 20건의 수술을 담당하며 약 13주 동안 매일 당직을 설 정도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2.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웨일에서 근무하며 체감한 현지의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바로 화상이었습니다. 특히 2~3세 아동 환자가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이곳에서는 겨울철 전기나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현지인들은 불을 피워 요리를 하고 난방 효과를 위해 쓰레기를 태우기 때문에 화상을 입는 아동이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 이틀에 한 번씩 붕대를 갈아주는 ‘드레싱’ 치료를 해줬지만 회복 속도가 더디어 몇 달씩 입원해 있던 환자도 있었습니다. 반면 날씨가 조금 풀리는 3~4월경에는 망고를 수확하는 시기라 수확 작업을 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오는 골절 환자가 많았습니다. 이 밖에도 악어, 당나귀, 소에게 물려서 오는 환자,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 환자 등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보았습니다.

또 이곳에서 두드러지게 많이 발생하는 환자는 너무 늦게 병원에 오는 산모입니다. 여기서는 대부분 집에서 출산을 하는데, 그러다가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와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태반이 떨어져서 사망하는 경우, 분만 후 출혈이 심한 경우, 출혈 부위가 감염되는 경우,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 사산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 태아의 팔이나 다리 한 부위만 나오거나 머리만 나오지 않은 상태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산모도 보았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이러한 상황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면 환자를 수도의 큰 병원으로 전원하기도 합니다. 이 근방 한시간 거리 내에는 갈 수 있는 병원이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임신부가 병원에 내원하면 ‘산과력 차트’를 기입합니다. 산과력 차트란 해당 임신부가 출산력이 있는지,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면 그중 몇 명이 생존했는지 등을 기록한 차트입니다. 이곳에서는 평균적으로 8~9명의 아이를 낳고 대부분 집에서 분만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전부 생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같이 근무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5년 전 이곳에서는 분만이 지연되어 생기는 누공* 환자가 못해도 하루에 한두 명씩은 있었는데, 지금은 두 달에 한 명꼴로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너무 오래 아프거나 분만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지연되면 병원에 꼭 가야한다는 인식이 생겨나 산과적 누공 환자가 감소했음을 의미합니다.

*산과적 누공(obstetric fistula): 분만이 길어지면 태아가 산모의 질벽, 방광, 직장 등을 오랜 시간 누르며 구멍이 발생하는 질병.

기억에 남는 환자는 교통비가 비싸 남편이 병원을 가지 못하게 했던 임신부였습니다. 사흘 꼬박 진통을 하다가 왔는데, 출산 후 저희에게, “병원에 오길 참 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임산부는 총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세 명만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3.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환자가 있나요?

제가 근무했던 병원은 심각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물자가 전반적으로 모자라 환자 치료에도 난항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상태가 심각했던 한 환자가 들어왔는데,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때 약 3분마다 줘야하는 약물 에피네프린이 4개밖에 없었습니다. 턱없이 부족해 간호사들이 산부인과 병동, 집중치료실에서 약물을 빌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약물을 다 썼을 때, 가망이 없어서 그만하자고 할까 생각했는데 환자가 살아나서 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상태는 다시 위독해졌습니다. 임신부였는데 출혈이 멈추지 않아 자궁절제술을 하고 가족들로부터 여섯 번의 헌혈을 받아 수혈을 했습니다. 수술실에 있는 약과 비품실의 약까지 전부 썼지만 결국 이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상황이 끝나고 나서 다른 방에 있던 마취간호사가 “그래서 그 사람이 병원의 모든 약물을 다 쓰고 창고 것까지 다 꺼내쓰고 수술실의 혈압 올리는 약을 다 쓰고 죽었다고?” 물었습니다.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환자를 살리지 못해 힘들었고, 모든 약을 다 썼는데도 살릴 수 없어 힘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가지고 있던 모든 약을 다 소진해버린 것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 약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고, 결국엔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의 무게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곳에선 한 환자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결정은 꼭 필요합니다. 처음엔 포기할 생각한 게 너무나도 미안했고, 제가 그때 포기하지 않아 다른 환자들의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날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어느 쪽으로든 선택을 내려야 하지만, 그 선택의 무게 또한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4. 한국의 근무 환경과 비교한다면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자원이 한정된 환경에서 근무했습니다. 의약품의 수량이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오는 환자군도 크게 차이 났습니다. 보통 한국에서 병원에 가야한다고 판단되는 증상의 환자에 비해 훨씬 안 좋은 상태의 환자가 많이 왔습니다. 이곳에서는 검사 역량도 크게 차단되어 있어 정밀검사를 못해 환자의 상태를 다 어림짐작으로 파악해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렸습니다. 특히 패혈증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피검사가 쉽게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검사하며 전해질 수치를 낮추는 등 증상을 관리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불가능해 짐작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5. 하루 일과를 알려주세요.

아침 8시에 회진을 돌고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정규 수술을 합니다. 정규 수술을 마치면 퇴근을 하는데 응급 수술 환자에 대비해 항상 대기하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이러한 응급 수술은 이틀에 한두 건 꼴로 발생했습니다.

6. 이곳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현지 주민의 인식은 정말 좋았습니다. 병원에서 집은 10분 거리라 출퇴근이 편했습니다. 집에서 몇 걸음만 가도 남녀노소할 것 없이 반겨주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만이 유일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불안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으면 모두가 나서서 절 보호해 준 기억도 나네요. 외국인은 흔히 말하는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보호해 주자는 암묵적인 의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7. 첫 활동을 다녀오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꿈을 이뤘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사람들이 가장 좋았습니다. 같이 지내고, 같이 일한 사람들이 좋아서 잘 지냈습니다. 우리를 살려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매일 같이 듣는 것, 우리의 존재를 좋아해 주는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현지 직원들과의 관계도 참 좋았는데, 제 삶의 의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말 그대로 의료 중심적인 단체인데, 시스템이나 원칙을 정말 잘 만들어두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리 필요한 약품이나 기구를 키트로 만들어 수술 시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바로 수술에 임할 수 있게 하는 등 ‘국경없는의사회만의 프로토콜’을 만들어 놓은 것이 놀라웠습니다. 놀랄 만큼 여러 기준과 루틴이 만들어져 있고, 이것을 따르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8.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상황에 맞으면 다음 활동지로 또 떠나고 싶습니다. 다만 현재 직장 스케줄과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잘 조율해 보려고요. 한국에 돌아와선 다음 활동을 준비하면서 원래 근무하던 곳에서 계속 근무할 것 같습니다.

활동을 나간다는 건 연애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애할 때는 늘 좋지만, 혼자일 때 행복할 수 있어야 더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활동지가 아닌 곳에서도 내가 행복할 수 있어야 활동지에서도 건강하게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있던 곳도 삶의 일부이고 활동지에서의 생활도 제 삶의 일부입니다. 양쪽의 삶 모두 건강하게 돌봐야 다른 쪽의 삶을 살아갈 때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제 자신을 잘 돌보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활동가의 요청으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