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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아웨일(Aweil)의 간호사 이영수 인터뷰

2014.03.11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 사무소를 찾은 이영수 선생님

남수단에서 활동 중인 이영수 선생님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분이 올려주신 질문을 물어보았습니다.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남수단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로 일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영수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지금 계신 남수단 지역의 상황은 어떤가요?

남수단은 생각보다 큰 나라예요. 그래서 내전에 휘말린 지역은 위험하고 지금도 그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제가 있는 지역은 내전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에요. 항상 위험성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제가 전쟁 지역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 불안정한 것이죠.

부분 철수를 할 때 남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렵지는 않으세요?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두려움이 있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든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 불안하죠. 하지만 그 불안보다 믿음이 더 크기 때문에 남은 것 같아요. 국경없는의사회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상황이 정말 급박해진다면 우리를 철수시킬 것이라는 믿음이죠. 상황을 신중하게 다루고 우리 활동가들이 위험한 상황까지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저는 아윌에 있으며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보안을 관리하는 팀이 있고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믿어요. 그리고 당장 우리가 떠나고 나면 현지 환자들은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팀원들 때문에 남은 것도 있어요. 나 혼자가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있으니까, 우리가 함께한다는 데서 힘을 얻어요.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동질의식이 강하게 생겨요. 위급 상황이라면 더 뭉치게 되죠. 여기서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얘기들을 해요. 희한하게 만나서 금세 친해지더라고요. 잠깐 같이 지냈어도 헤어질 때면 정말 섭섭하고 눈물이 나죠.

남수단에서 팀 구성은 어떤가요? 프랑스인이 많나요?

지금 우리 팀에는 14~15명이 있는데 프랑스, 미국, 일본, 독일, 호주, 콩고와 나이지리아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아프리카 중 프랑스어 지역에서는 프로젝트가 프랑스어로 진행되니 프랑스인이 많지만 남수단은 영어로 진행이 되는 지역이에요.

아프리카 국적의 활동가들은 자국에서 현지 직원으로 시작해서 몇 년 뒤 다른 나라로 활동가가 되어 온 사람이 많아요. 지금 같이 있는 아프리카인 활동가는 조산사와 의사들이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은 국적이 아주 다양해요.

파견 현장에서 적응하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저는 적응이 빠른 편이에요. 군 간호사 경력 때문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사는 플로리다에 10년 이상 살아서 일 수도 있겠죠. 현장에서는 2가지 방면의 적응이 필요해요. 현지 적응과 팀 적응이죠. 그런데 다들 현지 적응은 생각보다 잘해요. 현지 사람들과 지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하고 오니까요. 의외로 팀원들과의 적응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워낙 서로 다르니까요.

다행히 저는 지금까지 활동지에서 팀원들과 아주 잘 지냈어요. 오히려 어디서 내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아주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서 금세 친해지고 가족처럼 지내고, 문제가 있으면 서로 걱정해줘요.

남수단에서 가장 필요한 의료 인력은 어떤 사람인가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려면 어떤 경력이 도움이 될까요?

현재 남수단에서는 긴급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진이 많이 필요하죠. 꼭 여기가 아니어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지에서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환자를 치료하는 기술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처 능력이 중요하죠. 그러니 응급실에서 일해본 경력이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아과나 산부인과 경력자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의 첫 번째 활동지인 이다(Yida)에서도 임산부나 아동 환자가 많았어요. 수술실 경력도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서 간호사는 환자를 직접 돌보기도 하지만 팀을 관리하고 현지 직원을 교육하는 역할이 커요. 그래서 관리와 훈련 경력이 도움이 돼요. 또 열대 질병에 대한 지식이나 경력도 유용해요. 많은 분들이 그 분야를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HIV나 결핵 프로젝트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필요해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의료 기술 외에 어떤 역량, 마음가짐이 필요한가요?  

오픈 마인드! 그리고 융통성이에요. 언제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것을 고집하면 힘들어요. 가끔씩 현지 상황을 잊고 욕심이 생길 때가 있어요. 주어진 환경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데, 고국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썼던 방법을 못 잊고 아쉬워하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답이죠.

여자로서 힘든 점은 없나요?

(한참 생각하다가) 그런 건 없어요. 아, 여자로서 화장을 꼭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좀 힘들 수 있겠죠. (웃음)

구호 현장에서 일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평화유지군으로 아프리카에 갔을 때부터 막연하게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어요. 그 이후 플로리다에서 일할 때 우리 병원이 아이티의 고아원을 지원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2010년에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났을 국경없는의사회와 아이티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고도 계속 사정이 생겨서 못하다가 한국에 장기 휴가를 왔는데, 이곳에 사무소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지원해서 눌러 앉은 거죠!

애착이 가는 환자를 두고 온다는 것은 어떤가요?

아콜과 이영수 선생님
많이 힘들어요. 페이스북에 처음 올라갔던 사진 속에서 제가 안고 있던 메리가 사망한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 기억이 오래 남아서 다른 환자와 지나치게 유대감을 갖지 않으려고 생각했지만, 유난히 따르는 아이가 생기네요. 지금 있는 병원에 화상을 입고 온 예쁜 여자아이가 있는데 이름이 아콜이에요. 그 뜻이 제 이름이랑 같은 ‘Young’이에요. 그래서 너도 아콜이고 나도 아콜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죠. 아콜이 제 옆에 있으면 아무도 제 곁에 오질 못해요. 아콜이 다 밀쳐내거든요. (웃음)

삶의 보람은 종종 느끼실 것 같은데, 행복하세요?

네, 아주 행복해요. 사실 저는 지금 많이 지쳐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도 누가 저한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좋다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감사해요. 우리가 활동하는 지역의 문화에서는 ‘감사합니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잘하지 않는지 생각보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정말 많이 좋아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어디서 이렇게 순수한 관심과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으며 살 수 있을까?’라고요. 제가 이 사람들에게 받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호주인 동료가 있었는데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에 다음 병원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했어요. 지금은 고국의 병원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데,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처음 올 때는 다시 오고 싶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대요. 오랫동안 이 활동을 한 사람들도 한 번 하고 나면 빠지게 된다는 말을 많이 해요. 활동 후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만 계속 생각나서 돌아오게 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