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즈 알-후반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모자 병원. 원래 이 곳은 호텔이 들어서기로 했던 건물이었다. 2015년 11월,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건물에 병원을 열었고 현재 응급실, 외래환자 병동, 산부인과 병동, 소아과 병동, 영양실조 치료 센터(외래/입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Trygve Thorson/MSF
11월 7일, 예멘 타이즈의 국경없는의사회 모자 병원이 개원한 지 1년 되던 날, 개원 이래 최대 숫자인 24명의 아기들이 태어났다. 타이즈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 리더 조지나 브라운(Georgina Brown)은 “이 숫자는 신기록입니다. 산부인과 병동이 너무 바빠서 응급실 병상을 사용해야 할 정도였어요. 새로 태어난 모든 아기들과 무사히 회복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니 너무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모자 병원을 연 곳은 타이즈 알-후반이었다. 이 곳은 2013년 이후 예멘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의 최대 여파를 받은 지역으로 손꼽히는데,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곳에서 여성과 아동들에게 더 많은 의료 지원을 하고자 이 병원을 열었다. 지난해 이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는 3123명이었다. 분쟁이 심해지기 시작한 20개월 전부터 타이즈에서는 극심한 교전이 수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포격, 공습, 폭탄 폭파, 지뢰 폭발, 저격 등이 거의 날마다 벌어졌다. 격렬한 교전 때문에 사람들은 안전한 의료 지원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은 이 지역에서 무료로 모자 의료 지원을 실시하는 유일한 기관이며, 지난 12개월 사이에 환자 수는 계속 늘어났다. 개원 이후로 4만4573명이 외래환자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고, 4975명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1만8679회의 임산부 진료도 진행되었다. 병상 108개를 갖춘 이 병원은 24시간 내내 운영된다. 10여 개국에서 온 직원 365명이 일하고 있는데 직원 대다수는 예멘 사람이다.
의료 지원을 찾기가 몹시 어려운 가운데, 많은 임산부들은 심각한 합병증이 있는 상태로 출산 직전에야 병원에 도착한다. 병원 개원 1주년 기념일에 태어난 24명 중에 아주 작은 여자 아기가 있었는데, 산모가 너무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산모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사립 병원에서 진통을 하던 중 합병증을 얻은 상태로 이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그 사립 병원에서 청구한 의료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어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산모는 자간전증을 앓고 있었다. (자간전증: 주로 고혈압 증상을 나타내는 심각한 병으로 발작·간부전·신부전 발병의 위험이 있음) 출산 후에는 출혈이 심해 수혈도 필요했다.
의료팀 리더 브라운은 “위험한 출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의료팀은 필요한 지원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산모와 아기 모두 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의 여파로 타이즈 시와 인근 지역의 주민 모두가 큰 영향을 받았다. 많은 주민들이 살던 집과 가족, 생계마저 잃어버린 채, 끊임없는 폭력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교전선 양쪽에서 생명을 살리는 의료 지원을 실시하는 한편, 타이즈 시에 있는 병원 4곳을 지원하고 있다. 알-후반에서는 외상 센터를 운영하여 전쟁 부상자들을 비롯해 의료 지원이 필요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의료 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예멘 내 병원 30곳을 운영 및 지원하면서 종교·민족·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치료한다. 2015년 3월 이후로 예멘 전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 혹은 지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전쟁 부상자는 5만여 명에 이른다.
세함 알리(15세)가 버려진 건물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불빛을 바라보고 있다. 교전을 피해 떠나 온 세함 알리의 가족은 20개월째 타이즈 시에서 살고 있다. ⓒTrygve Thorson/MSF
콘크리트 뼈대밖에 없는 미완공 건물 안에서 여덟 가구가 천막을 짓고 살고 있다. 타이즈에서 교전이 시작된 이래로 벌써 1년 8개월째 이렇게 지내 왔다.
피난민들이 지내고 있는 천막 밖에 걸어둔 천. 생후 4개월 된 모니브 샤만이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 버려진 건물에는 모니브 샤만 가족을 포함해 총 여덟 가구가 살고 있다. ⓒTrygve Thorson/MSF
피난민들이 타이즈 도심 밖 여러 학교에 머물고 있다. 엘 바트라에 있는 이 학교에는 총 46가구가 머물고 있다. 이 교실에서는 11세, 8세 자녀를 둔 부부가 지내고 있다. 이 가족은 20개월 전에 타이즈 도심에서 시작된 교전을 피해 이곳에 와서 살았다. 이 집의 아버지(40세)는 “시내보다는 그래도 여기가 안전해요.”라고 말했다. ⓒTrygve Thorson/MSF
생후 10개월 된 라가드가 타이즈 알-후반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모자 병원 치료식 센터에 온 것은 이번이 4번째다. 주로 아빠 칼레드가 데리고 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오빠 아메르(4세)도 함께 왔다.
2개월 전, 라가드의 엄마가 앓아 눕게 되자 라가드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너무 약해진 라가드의 엄마는 모유 수유도 할 수 없었다. 라가드의 엄마는 수술을 위해 사립 병원에 입원했다. 라가드 가족은 병원비를 낼 형편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한 부유한 사업가가 수술비를 지원해 주었다. 라가드 엄마는 여전히 병원에서 회복 중이다. 그러던 중 라가드가 독감과 같은 병에 걸려 몹시 약해졌다. 9개월 전 이동식 영양실조 치료식 센터에 입원했을 때, 라가드는 겨우 5.5km이었다. 엄마가 입원한 뒤로 라가드는 이모가 돌봐 주었다. 지금은 우유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우유 가격이 턱없이 높다. 지난주에 라가드 가족은 우유를 전혀 구하지 못했다. ⓒTrygve Thorson/MSF
사나 박사(왼쪽)가 야간 근무 시작에 앞서 동료 사라에게서 업무를 전달받고 있다. 타이즈에서 교전이 시작될 당시 카이로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사나는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타이즈로 돌아왔다. 두 의사가 이야기하고 있는 환자는 남자·여자 쌍둥이 아기들이다. 한 달 반 전에 태어난 두 아이는 중증 급성 영양실조로 4일 전에 입원환자 치료식 센터에 입원했다. 두 아이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집에 돌아간 후 아이들의 엄마가 몸이 약해져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었다. 운전사인 아이들 아빠의 수입이 충분치 않아서 가족들은 식량 살 돈이 부족했다. 두 부부는 빵, 죽, 차로 겨우 배를 채웠다. 양의 젖을 먹던 쌍둥이 아이들은 설사·구토 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연료 살 돈이 부족해 한 달 동안이나 병원에 올 수 없었다. ⓒTrygve Thorson/MSF
넉 달 전, 모하메드(8세)는 오토바이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고, 타이즈 알-후반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외상 센터에 왔다. 그 후 모하메드는 수술을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지원하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오늘은 드레싱을 교체하러 왔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압둘잘릴이 조심스럽게 드레싱을 교체하고 있다. 드레싱을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럽지만, 모하메드는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다. 지난 몇 달간 벌써 여러 번 해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매일 드레싱을 갈았는데, 지금은 3일에 한 번씩 한다. 전쟁 부상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환자와 부상자들에게도 양질의 의료 지원을 무료로 받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Trygve Thorson/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