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은 갖가지 문제로 병원을 찾는다. ⓒPhilippe Carr/MSF
남수단 어퍼나일 전역에 교전이 발발한 이후로 1년이 지났다. 폭력을 피해 탈출한 사람 중 다수는 아직 아부로크 인근에 남아 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이곳 사람들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점점 생활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아부로크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긴장에 휩싸인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일곱 명의 자녀를 둔 아나는 판잣집 밖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죽을 때가 오면 죽게 될 거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요. 처음에 우리가 떠난 곳은 말라칼 시였어요. 그러다 작년에 교전이 터져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두 번이나 자리를 떠야 했어요.”
작년 5월, 3만8000여 명이 폭력을 피해 아부로크로 피신했다. 하지만 아부로크에 도착한 사람들은 거처도 물도 식량도 구할 수 없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교전이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피난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 몇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북쪽으로 떠났다. 하지만 시장, 차(茶)를 파는 상점들, 교회, 심지어 자전거 수리점도 그대로 있다. 짐을 한가득 싣고 수단에서 온 트랙터들이 노점에 물건을 대고 있지만, 물건을 살 돈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람들 대다수는 나뭇가지를 엮고 낡은 비닐 시트를 지붕으로 얹은 거처에 빽빽하게 모여 산다. 야외에서 살 때보다 아주 미미한 정도로 나아진 상황이다.
국경없는의사회 아부로크 프로젝트 매니저 파이바 단사(Paiva Dança)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끊임없이 이동하다 보니 공동체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리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작년에 겪은 시련 때문에 아직도 신체적·정신적으로 몹시 지쳐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따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8500명이 모여 있는 이곳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 몇 달 안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2월에서 5월 사이에는 물이 희박해지는데, 큰 비용을 들여 먼 나일강에서 물을 운송해 오는 것에 대해 인도주의 단체들과 당국 사이의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 남수단 현장 책임자 자우메 라도(Jaume Rado)는 이렇게 말했다.
“아부로크에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 중에는 물을 공급하겠다고 나서는 단체들도 있지만, 8개월 전 캠프에 콜레라 위기가 나타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공급되는 물의 양과 질을 올바른 수준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자우메 라도는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남수단에서도 이쪽 지역에 나타나는 평화 상태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여기 있는 국내 실향민들이 집에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리려면 우선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야 합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현재 자신들이 지내고 있는 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아부로크에 있는 피난민들이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다. 먼저, 점점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등 생활 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또 한 해 여기 머무르는 것이다. 아니면 살던 마을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전에 그곳을 떠나게 만든 동일한 폭력을 또 다시 겪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북쪽에 있는 수단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의 난민캠프들은 생활 여건이 매우 열악하다.
떠나겠냐는 질문에 한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수단은 저의 집이 아니에요. 물 문제가 나빠진다면 북쪽으로 가겠죠. 그렇지 않다면 여기 있을 거예요.”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위 여성과 다른 대답을 내놓은 여성도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저는 앞으로 몇 주 안에 제가 살던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저는 거기가 좋았고, 우리 식구들도 거기 가면 더 잘 지낼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그녀의 친구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지역에 있던 몇몇 인도주의 단체들은 또 다른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 마을은 여전히 지원이 필요하다. 아부로크에서는 식량, 물, 거처, 의료 지원이 없으면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식량 배급률이 너무 낮아, 국내 실향민 다수는 생활 필수품을 살 소득을 마련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비정부기구 일용직 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숯을 만들어 내다 팔기도 한다. 단돈 얼마라도 벌기 위해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마리사(Marrisa)라는 밀주를 정제해 파는 것은 어렵지 않게 듣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힘겨운 여정을 하는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그들 곁에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교전의 여파로 와우 실루크·코도크 프로젝트가 파괴된 후, 달아나는 지역민들을 뒤따라갔다. 2017년 2월 초반, 작은 야전병원이 아부로크에 문을 열고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팀은 운전기사, 물류 코디네이터, 의사, 간호사, 지역사회 보건 자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Philippe Carr/MSF
당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활동 매니저로 일했던 이렌게 루케바 란드리(Irenge Lukeba Landry)는 이렇게 살명했다.
“처음에는 호흡기 질환, 설사, 그 밖에 거친 날씨 속에 지내다 생기는 병에 걸린 환자들을 주로 봤습니다. HIV 감염인들처럼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몹시 걱정되었습니다.”
자우메 라도 남수단 현장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아부로크에 머물든 고향으로 돌아가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들의 권리를 지지할 것입니다. 어디서 머물지 결정이 나면 바로 그곳에서 의료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다른 인도주의 단체들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