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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우리에겐 달리 갈 곳이 없어요”

2018.03.26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미얀마 폭력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로힝야 난민들은 열악한 생활 여건, 곧 다가올 우기, 밤이면 찾아오는 안전에 대한 위협 등 또 다른 위험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캠프 자체가 위험 요소

난민들이 머무는 캠프에서는 홍역, 디프테리아 등 치명적인 감염성 질환들이 벌써 발생하는 등 보건 여건이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주로 4월에 시작되는 우기도 곧 찾아와 급성 수성 설사, 장티푸스, 간염, 말라리아, 뎅기 등 수인성 질환 발생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캠프를 조성하느라 나무를 몽땅 뽑아 지형이 변하는 바람에, 곧 다가올 우기에 진흙 사태와 홍수가 일어날 위험도 매우 높다. 급히 지은 간이 화장실과 우물은 사용을 멈추든지 아니면 시설을 보수해야 한다. 홍수가 일어나 식수가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마와 강풍으로 인해 거대한 지역이 침수될 수도 있고 허술한 임시 거처들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수만 명은 또 다시 피난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현재 로힝야 난민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없어 보인다.

 

해가 지면 찾아오는 두려움

정착지에 있는 남녀 모두 밤이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생활 여건이 열악한 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밤에는 어둠을 밝혀 줄 조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장인 집들, 미혼 여성들,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이 특히 취약하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도 인신 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18세 소녀 샤메마르는 이렇게 말했다.

특히 밤이 되면 너무 두려워요. 화장실에 가든 샤워를 하러 가든 혼자서는 밖에 나가지 않아요. 문을 잠그지 못해서 심지어 아버지께서도 잠을 못 이루세요. 언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로힝야 난민 샤메마르(18세) ⓒSara Creta/MSF

2017년, 강간 피해를 입고 국경없는의사회 시설에서 의료, 심리 지원을 받은 여성, 소녀 대다수는 미얀마에서 일을 당했다. 한편, 최근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친밀한 상대로부터 폭력을 당해 부상을 입고 치료를 구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치료한 여성들 중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여성들도 있었다. 우리는 타박상, 열상, 화상, 골절, 장 폐쇄 등을 치료한다. 이 여성들에게는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도 제공된다. 인도적이며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려면 피해자들을 서둘러 안전한 거처로 옮겨야 한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

성폭력 피해를 입고 도움을 구하는 여성들과 소녀들 앞에 놓인 장벽은 어마어마하다. 낙인과 수치, 보복에 대한 공포, 제공되는 지원에 대한 정보 부족 등 갖가지 장애물이 놓여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지역사회 파견팀 일원 줄리아(35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화를 나누는 여성 대부분은 그러한 폭력을 당한 뒤에 의료적인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 230명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러한 치료를 전혀 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높을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예방 치료와 긴급 피임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에 도착한다. 스스로 임신 중절을 시도하려던 여성들은 패혈증에 걸려 출혈 중에 진료소에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도움 없이 비위생적인 여건 속에서 출산을 하려다가 합병증에 걸려 오는 사람들도 있다. 강간으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은 출산 전이나 후에 자기 마을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러한 여성, 소녀들에게 필요한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캠프 안에서는 심각한 한계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안전한 대안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더군다나 로힝야 여성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날마다 이겨내야 하는 스트레스

많은 난민들이 자신이 겪었던 일들로 인해 큰 충격에 빠져 있다. 게다가 식량도 충분치 않고, 벌이를 할 기회도 부족할뿐더러 개인 안전 또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은 더 크다.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아오는 난민들은 전에 겪은 잔인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문득문득 생각나 괴로워하고, 불안과 긴장에 휩싸여 있으며, 급성 스트레스와 잦은 악몽으로 고통받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상태가 심각한 경우 자기 자신을 챙기거나 가족을 돌보지 못할 때도 있다. 상담사들은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루고 대처 기술을 익혀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도록 돕는다. 로힝야 난민들은 자신의 안전과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상황이 나아질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과연 그 때가 언제일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육로로, 해상으로

로힝야 난민들은 지금도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떠나 국경을 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월 한 달에만 총 3236명의 난민들이 방글라데시로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2018년 들어 지금까지 새로 들어온 난민이 5천여 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수비 카툼(70세)은 이렇게 말했다.

2018년 3월 7일, 누르 라민(25세)과 그의 어머니 수비 카툼(70세)은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Sara Creta/MSF

“상황은 무척 나빠요. 여기까지 오는 것도 몹시 복잡했죠. 일하기도 어렵고, 먹을 것을 사러 시장에 나가는 것마저 불가능합니다.”

새로 들어온 로힝야 난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끔찍하다. 마을이 불타고, 친지들이 살해를 당했으며, 폭력과 괴롭힘이 계속되고, 생계 활동이 모두 무너졌다는 이야기들이다. 수비는 이렇게 덧붙였다.

“남편은 살해 당했고, 사위는 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살해 당하거나 없어졌죠. 언젠가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지만 앞날은 알 수가 없겠죠."

2018년 3월 7일, 수비 카툼(70세)은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Sara Creta/MSF

 

국경없는의사회의 방글라데시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방글라데시에서 25년간 활동해 왔다. 2009년부터는 쿠투팔롱 임시 정착지 근처에서 의료 시설을 운영하면서 로힝야 난민들과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 왔다. 최근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응해 국경없는의사회는 활동 규모를 대폭 확대해 의료 시설과 식수위생 활동을 더 늘렸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수도 다카의 캄란기르차르 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