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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10년간 이어진 전쟁과 인도적 위기의 기록

2021.03.15

2011년 시리아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시리아 주민들은 계속해서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 아래 놓여 있다. 지난 2011년 지역적인 시위에서 상황이 급변해 전쟁이 된 후 10년이 지난 후 현재까지 극심한 인도적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10년 동안, 분쟁이 시작되기 전 인구의 절반인 1,200만 명이 분쟁을 피해 집을 떠나야 했고, 여러 차례 피난을 반복해야 했으며, 이것은 21세기 최대 규모의 피난이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실향민으로 지내고 있다. 

시리아의 인프라도 상당부분 파괴되었으며, 특히 시리아의 의료 시스템이 황폐화되었다. 수백 개의 의료시설이 폭격을 당했고, 수많은 의료진이 사망하거나 피난했으며, 시리아 곳곳의 병원에서는 여전히 의료물자가 부족해 힘겨워하고 있다. 현재 시리아 주민의 의료 공백은 매우 극심한 상황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시리아의 위기에 대응해 왔다. 시리아 여러 지역에서 도움이 필요한 주민에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의료물자를 지원하고, 병원과 진료소를 세우며, 국경없는의사회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의료 시설과 의료진 네트워크에 원격 지원을 제공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시리아 내 주민 뿐 아니라 시리아 난민이 머물고 있는 여러 인근 국가에도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10년간 이어진 시리아 전쟁 속에서 100만 명의 시리아 주민의 인도적∙의료적 필요가 어떻게 쌓여왔는지, 국경없는의사회가 이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되짚어본다. 

 

2011년: 시위가 무력 충돌로 번지다 

2011년 시리아인들은 민주적인 개혁을 촉구하고자 거리로 나왔다. 초기 소규모 시위에서 시작해 3월 중에는 대규모 시위로 급격히 진화했다. 시위에서 경찰과 군대의 폭력이 일어나고 집단 체포와 잔혹한 진압이 이어지며,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가 갈등으로 번지자 시리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이나 이웃 국가로 피난하기 시작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 초기부터 시리아 주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의 정부 통제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허가를 거듭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그 결과,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영역은 정부 통제 밖에 있는 지역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의 현지 의료진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홈스(Homs), 이들리브(Idlib), 하마(Hama), 다라(Dara’a) 지역의 야전병원과 진료소에 의료 및 구호 물자를 지원하는 등 시리아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의료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는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 적신월사를 지원해 도시 내 의료적 필요 증가와 의료 공급 부족에 대응했다. 

레바논과 요르단 등 인근 국가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시리아 난민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내부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던 환자들이었다. 우리는 시리아에서 폭력을 피해 탈출한 난민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2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다

2012년: 한 간호사가 시리아 북부의 국경없는의사회 야전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 중 많은 의료 시설이 파괴된 후 동굴이나 학교, 건물 지하 등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에서 병원을 운영해야 했다. ©MSF 

2012년: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은 시리아의 양계장에 공기주입식 수술실을 설치했다. 이것은 응급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무균 상태를 유지하는 데 효율적인 방법이다. ©Robin Meldrum/MSF 

2012년, 분쟁 당사자가 구성되고 각기 분쟁에 참여하며 갈등이 고조됐다. 휴전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분쟁은 곧 본격적인 전쟁으로 발전했고 전국적으로 사망자와 부상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부 전역에 병원을 열어 증가하는 의료적 필요에 대응했다. 많은 의료 시설이 공격을 받고 파괴됨에 따라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에 병원을 설치해야 했다.  주택, 양계장, 학교, 건물 지하에 병원이 세워졌다. 각 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외상 치료와 전쟁 부상자 수술에 중점을 둔 응급 진료를 진행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또한 인근 국가에 시리아 난민이 늘어감에 따라 레바논의 베카밸리(Bekaa Valley)나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 도미즈(Domiz)의 난민 캠프 등에서 활동을 확대했다. 시리아 난민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더 먼 곳으로 피난하게 되면서, 중동을 넘어 유럽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이 늘어갔다.  

 

2013년: 시리아 주민의 인도적 위기가 악화하다

2013년: 중상을 입은 한 남성이 다마스쿠스 동부의 포위된 지역에 있는 임시 병원 수술대에 누워 있다. ©MSF
2013년으로 접어들면서 시리아 주민들은 극심한 폭력에 노출되었을 뿐 아니라, 기능이 마비되고 점차 약화되는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고통이 배가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에서 예방 가능한 질병이 재발하는 것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알레포(Aleppo)에서는 아동 홍역이 유행했고, 14년 만에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것은 전쟁으로 시리아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나타난 초기 징후였고, 국경없는의사회는 이에 따라 시리아 북동부에서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을 펼쳤다. 

이 무렵 시리아의 의료 기관들은 또한 대량 사상자 대응이나 긴박한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것뿐 아니라 주민의 필요에 대응하는 데 있어 더욱 강하게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남부에서 전투가 격렬해지며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접경지역인 요르단 북부 람타(Ramtha)에 긴급 수술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다라(Dara’a)에 있는 14개 야전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 전쟁 부상자를 치료했다. 

한편, 수십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계속해서 안전한 장소를 찾고 필요한 치료를 받기 위해 시리아를 떠나 인근 국가로 향했고, 난민 유입이 이어진 인근 국가는 보다 제한적인 국경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하여 우리는 시리아 주민에게 최대한 많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지역 내 활동 규모를 더욱 확대했다. 2013년 말경 시리아 난민의 수는 약 150만 명인 것으로 추정됐다.

 

2014년: 격렬한 충돌이 이어지다

2014년 전쟁은 점차 유혈사태로 번졌다. 유엔은 당시 650만 명의 국내실향민이 발생하고 300만 명 이상이 시리아를 탈출한 것으로 추산했다.

폭력과 불안이 이어지고 포위와 포격이 심화되며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은 점점 어려워졌다. 의료 시설과 의료 종사자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광범위한 의료 및 인도적 지원이 불가능해졌다. 

2014년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납치되는 일이 일어나면서 우리는 이슬람국가(IS)가 통제하는 지역에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시리아 북서부에서 활동하던 국제 구호활동가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시리아에서 일부 활동을 유지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열어 시리아의 의료 시설에 대한 원격 지원을 증대했다. 

 

2015년: 대규모 실향 위기가 발생하다

2015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응급실과 화상 전문 병동을 갖춘 15병상 규모의 병원을 설치해 수술과 피부이식, 드레싱, 물리치료, 심리지원 등을 제공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매달 평균 420회의 이상의 응급 치료와 130회의 수술을 진행했다. ©MSF

2015년에는 다른 국가로 피난한 시리아 난민 수가 400만 명을 넘어섰고, 수천 명이 위험한 지중해 횡단을 시도했다. 시리아 내 국내실향민 수는 600만 명에 달했다. 이는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난민 위기를 초래했고, 수백만 명이 인도적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중해에서 난민 수색∙구조 활동을 전개하고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등 대응 활동을 확장했다. 

점차 더 많은 국가와 정당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2015년 극도의 폭력이 이어졌고 이것은 수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민간인 지역조차 일상적으로 폭격을 받았는데, 종종 '더블탭(double-tap)' 공격이 일어나기도 했다. ‘더블탭’ 공격이란 초기 공격 이후 구조대와 부상자를 받는 의료 시설을 겨냥해 2차 공격이 뒤따르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가 화학 작용에 노출된 증상을 보이는 공격도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15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인도적 지원이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의무 후송도 없이 포위된 지역에 갇혔다.

2015년 시리아 내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의료 시설을 지원했다.  150여 개 의료 시설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 시설이 분쟁의 직접적인 피해에 휘말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한 시리아 의료진 23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을 당했다. 나아가 2015년 94차례에 걸쳐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병원 및 진료소 63곳이 폭격이나 포격을 당했고, 이 중 12곳이 완전히 파괴됐다.
연합군의 지원을 받은 쿠르드군에 의해 이슬람국가(IS) 단체가 내몰린 후, 우리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코바네(Kobanê)/아인알아랍(Ain Al-Arab)에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도시 내에 병원을 세웠는데, 코바네에 이슬람국가(IS)가 잠입한 이후 또 한번 격렬한 분쟁이 일어나며 파괴되었다. 하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이후에도 지역 내에서 1차 및 2차 의료 서비스 제공을 지속했다.

 

2016: 분쟁 속에 갇히다

2016년: 포위된 동 알레포의 한 병원에서는 4월에 일어난 공습으로 의사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의 간호사가 부상을 입었다. 보도에 따르면 11월에는 지역에 50회 이상의 공격이 일어나며 동 알레포에 있는 두 개의 병원 또한 공습을 받았다. 한 곳은 외과 병원이었고, 다른 한 곳은 동 알레포의 유일한 아동 전문 병원이었다. 병원 직원이 신생아를 포함한 아동 환자를 병상과 인큐베이터에서 건물 지하로 옮겨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 KARAM ALMASRI

 

2016년: 시리아 북부 아자즈(Azaz) 지역에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실향민이 도착했다. 전쟁의 최전선과 폐쇄된 터키 국경 사이에 갇힌 주민들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당시 실향민 캠프로 이동해 필수 구호품을 보급하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국경없는의사회 알-살라마(Al-Salamah)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곳은 시리아에서 가장 큰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이었으며, 응급 치료, 수술, 산부인과 진료 및 외래진료를 제공했다. © Mahmoud Abdel-rahman/MSF

2016년에는 포위전술이 이어졌고, 더블탭 공격이 늘었으며, 폭격과 포격이 격화되면서 시리아 내 인도적 위기가 더욱 극심해졌다. 여러 민간인 지역에서 매일 폭격이 이어졌고 인도적 원조가 끊겼다. 포위된 지역의 주민에게는 식량과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12월 시리아 정부가 동 알레포를 재탈환했지만, 이미 주민들은 5년간 이어진 전쟁 속 가장 격렬한 폭격에 희생된 후였다. 동 알레포는 시리아 분쟁의 축도가 되었다. 포위전이 벌어지고, 의료 시설이 파괴되며, 민간 지역에는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고, 전쟁 규칙은 완전히 무시되는 등 모든 잔학행위가 이곳에서 일어났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동 알레포에 있는 8개 병원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모두 폭격을 당했다. 

의료시설과 의료진, 환자들은 계속해서 무차별 공격과 표적 공격의 희생자가 됐다. 2016년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의료 시설 32곳이 71차례에 걸쳐 폭격이나 포격을 당했다.

한편, 시리아 인접 국가들은 점차 국경을 폐쇄했고, 많은 시리아 주민들은 포위된 지역에 갇히거나 폐쇄된 국경에 고립됐다. 요르단 국경에서도 사람들의 발이 묶이며, 전쟁 부상자들은 의료 지원조차 받지 못하게 되었다. 

 

2017년: 통제권 경쟁이 치열해지다

2017년: 시리아의 아인 잇사 캠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물리치료사 마이클 로리즈(Michaël Roriz)가 3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라카에서 탈출한 아흐마드(Ahmad)를 치료하고 있다. 아흐마드의 아내와 두 딸은 연합군에 의한 폭격으로 사망했고 거주하던 집은 파괴되었다. 아흐마드는 피난 중 이슬람국가(IS) 소속 군인이 심은 폭발물 장치를 밟았고, 부상이 심각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Agnes Varraine-Leca

 

2017년: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라카 동부 알-미시라브(Al-Mishlab)를 방문해 주민의 의료 및 인도적 필요를 파악하고 있다. "처음 마시라브를 방문했을 때는 유령도시 같았는데, 최근 방문했을 때는 몇몇 주민이 집에 돌아왔 있었습니다. 몇몇은 폐허가 되어버린 집을 발견했고, 집과 정원, 거리에서 시신과 폭발물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 국경없는의사회 라카 대응 팀장 크레이그 켄지(Craig Kenzie) ©Diala Ghassan/MSF

2017년 영토와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주요 지정학적 변화로 떠올랐다. 라카(Raqqa)에 대한 대규모 군사 공격 이후, 이슬람국가(IS) 단체는 미국이 지원한 시리아 민주군에 북동부 지역의 넓은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겼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라카에서 일어난 격렬한 폭격 공세로 부상을 당한 수백 명의 환자를 치료했으며, 파괴된 거주지에 남겨진 위장 폭탄과 불발탄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한편 시리아 남부에서는 시리아 정부가 다라(Dara’a), 쿠네이트라(Quneitra), 스와이다(Suwayda) 지역의 영토를 재탈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포격이 이어지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수십만 명의 주민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며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일부 지역에서는 활동에 지장이 생겼다. 우리가 지원한 의료시설 11곳이 표적 또는 무차별 공격으로 12차례에 걸쳐 폭탄이나 포탄을 맞았다.

 

2018년: 대규모 피난 행렬이 이어지다

분쟁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와 시리아 정부군의 군사진출로 시리아 북서부에는 실향민이 몰려들었다. 이는 정부가 내린 항복 조건에 따른 것으로, 정부 통제 지역이 아닌 지역, 주로 이들리브(Idlib)로 가고자 하는 군인과 민간인에게 안전 통행권을 부여한 것이다.  한편 북동부에서는 주민들이 위장 폭탄과 지뢰가 가득한 황폐한 마을과 도시로 돌아왔다.

2월과 4월 사이, 다마스쿠스 교외의 동 구타(Ghouta)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심한 폭격이 일어났다. 공격이 이어지면서 여러 의료 시설이 타격을 입었고, 약 2,000명이 사망했다. 공격은 시리아 정부가 교외 지역을 장악하며 끝이 났다. 

시리아 정부가 재탈환한 후 다라, 동 구타, 하마, 홈스 등 지역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의료 지원 활동과 의료 시설 지원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때 우리는 북부 지역의 의료 지원을 확대했다. 

 

2019년: 북부지역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다

2019년에는 주로 시리아 북부에 분쟁의 피해가 크게 나타났다.

시리아 북서부에서는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를 비롯한 동맹국이 마지막 반군 거점인 이들리브에서 공세를 시작하며 수십만 명의 실향민이 발생했다. 대부분 실향민이 향한 지역은 깨끗한 물이 없고, 의료 서비스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진 대부분 지역은 이미 과밀집되고 인도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으나,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리아 북동부에서는 이슬람국가(IS) 단체의 마지막 거점인 데이르 에즈-조르(Deir ez-Zor)에서 온 6만 명 이상의 실향민이 알홀(Al-Hol) 난민 캠프로 급격히 유입되었고, 이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활동 규모를 확장했다. 2019년 말, 터키군은 시리아 무장 반군 단체와 함께 '평화의 샘(Peace Spring)' 작전을 개시했다. 터키 국경을 따라 난 길이 30km, 폭 440km의 땅에서 쿠르드족 인민 수비대를 내모는 것이 목표였다. 

계속되는 갈등과 피난에 더해 2019년 시리아는 몇 년 만에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고, 시리아 파운드화는 암시장에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시리아 주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020년: 군사 공격,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다

 2020년: 한 소녀가 시리아 북동부 알하사카(Al Hasakah) 주에 있는 알홀(Al-Hol) 캠프의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약 65,000명이 이슬람국가(IS)의 마지막 거점을 탈출한 후 알홀 캠프에 억류되어 있다. 이들 중 90% 이상이 여성과 아동이며, 캠프 인구의 3분의 2가 18세 미만이다. 평균 7명이 한 텐트에서 생활하는 등 매우 밀집되어 있는 반면 캠프 내 의료 시설은 극히 제한적이다. ©Ricardo Garcia Vilanova

2020년: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시리아 북서부의 한 실향민 캠프에서 담요와 위생 도구 등 필수 구호품을 보급하고 있다. 2020년 초 시리아 정부군과 동맹군이 이들리브 지역에 공세를 펼치며 학교와 시장, 난민 캠프가 파괴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병원의 의료진은 10명 이상의 부상자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경우인 대량 사상자 대응을 여러 차례 시행해야 했다. ©MSF

2020년 초 시리아 북서부에서 대규모 군사 공세가 계속되면서 약 1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 중 상당수는 이미 지난 몇 달, 몇 년 사이 이미 지역 내에서 피난했고, 여러 차례 분쟁을 피해 이동한 상태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위태로운 시리아의 보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3월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선언된 지 4개월 후인 7월 9일 첫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확인되면서 이내 이들리브로 번졌다. 최초 코로나19 사례는 의료진 사이에서 발생했으며, 이것은 이후 몇 달간 더 큰 우려를 낳았다. 코로나19이전에도 시리아의 보건 분야에는 인적자원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지역 내 병원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한 의료진이 여러 병원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 몇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시적으로 격리되는 것만으로도 지역의 의료 서비스에 접근성에 큰 타격을 가져올 수 있었다.

한편 경제위기는 계속되었고, 시리아 파운드화의 기록적인 가치 하락은 시리아 주민에게 현실이 되면서 거처, 식량, 의료 등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울 수 없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레바논 등 일부 인근 국가의 또한 경제위기를 맞으며 그곳의 난민도 큰 타격을 입었다. 

9년간의 전쟁 이후 시리아의 의료 시스템은 붕괴되었다. 의료 물자의 공급이 제한되고 의료진이 부족해지며, 의료 시설은 폐쇄되거나 운영이 중단되었다. 

 

2021년 3월: 시리아의 현재 상황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리아의 분쟁은 끝나지 않았고, 시리아 주민들은 계속해서 고통 가운데 머물고 있다. 전쟁의 영향은 전 세계에 흩어진 시리아인에게 계속해서 처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전쟁 이전 인구의 절반인 1,200만 명에 가까운 시리아인이 시리아 안팎으로 피난해 있다.

전 세계에 560만 명의 난민이 흩어져 있으며, 주로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등에 있다. 국내실향민은 620만 명에 달하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숫자이다. 대부분은 매우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국가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의 60%에 가까운 1,240만 명의 시리아 주민이 현재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불과 1년 만에 식량이 부족한 시리아인의 수가 450만 명 증가했다. 경제위기가 이어지고 코로나19로 일자리가 감소하며 식량가격이 치솟아10년간의 분쟁으로 피난을 계속하며 쇠약해진 시리아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