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70여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약 450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두 가지 주요 우선순위를 설정했는데, 첫번째는 우리에게 의존하는 수십만 명의 환자를 위해 기존의 필수 의료 서비스를 지속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바이러스 자체의 확산에 대비하고 대처하는 것이다. 각 지역의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전 세계 최전방 의료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새로운 현실’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브라질, 미국 등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러 국가에서 대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한 전 세계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기존의 정기적 의료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우리가 돕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봉쇄 및 여행 금지 조치로 의료진과 물자의 이동이 제한되고 있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우리는 모든 운영 방식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인도주의 단체로서 우리는 긴급 상황 시 경험 많은 전문 인력과 의료품을 빠른 시간 내에 각지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여행 금지와 이동 제한 뿐 아니라 필수 개인 보호 장비, 의약품 및 의료 자재의 전 세계 공급망이 전례 없는 장애를 겪으며 우리는 환자들을 계속 치료하기 위해 통상적인 운영 방식을 뛰어넘는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브라이스 드 레 비그네(Brice de le Vigne) 국경없는의사회 코로나19 프로젝트팀 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안나-클라라 이브라손(Anna-Clara Ivrasson)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보산고아(Bossangoa) 병원 홍역병동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2020년 3월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 보상고아는 홍역 대유행의 진원지였다. ©James Oatway
코로나19 대유행의 파괴적인 영향
세계의 관심은 현재 코로나19 대유행의 직접적인 영향에 집중되어 있으나,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보건 위기를 볼 필요가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여러 지역은 의료 시스템이 이미 취약하고 사람들이 극도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대유행의 간접적인 영향도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을 통제하는 것은 분명한 우선 순위이지만, 우리가 기존의 정기적 의료 서비스를 중단하고 코로나19에만 집중하는 것은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수십 년간 다른 전염병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전염병이 나머지 의료 시스템에 미치는 연쇄반응이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수 의료 서비스를 지속하고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라리아, 홍역, 영양실조나 임신 합병증 등으로 더 많은 생명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_ 케이트 화이트(Kate White) 국경없는의사회 코로나19 프로젝트 팀 의료 담당자
코로나19의 위험은 이미 의료 접근이 제한적인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더욱 감소시킨다. 인적, 재정적 자원이 일반 의료에서 코로나19 대응으로 전환됨에 따라 의료 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중단될 수 있고, 중요한 예방접종 캠페인 또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최전방 의료 종사자의 수가 이미 적은 지역인데, 이들 마저 건강이 악화되어 매우 부족해질 수 있다.
감염의 두려움
동시에 사람들은 이동 제한 조치가 내려진 동안 돌아다니는 것이 어렵거나 의료 시설을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을 염려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도 진료를 연기하게 된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방글라데시,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이집트에서 우리 의료 시설에 오는 환자 수가 최대 50%까지 크게 감소하는 것을 목격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시설을 환자와 직원 모두에게 안전하게 하고 전염병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진료소와 병원에서 구체적인 코로나19 감염 예방 및 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각국의 보건 당국이 각 의료 시설에서 동일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우리가 활동하는 여러 지역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이나 진료소가 수백 Km 내에 유일한 지역 내 의료 시설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시설에 올 때 안전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거나, 설사나 말라리아가 있는 아이를 데려오거나, 안전하게 출산하고 싶을 때, 병원에 올 수 있어야 합니다. 병원이나 진료소에 오지 않아 더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_케이트 화이트 국경없는의사회 코로나19 프로젝트 팀 의료 담당자
케냐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손에 부상을 입은 환자가 임상의사의 처치를 기다리고 있다. ©Paul Odongo/MSF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보상고아 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홍역 병동. 2020년 3월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 보상고아는 홍역 대유행의 진원지였다. © James Oatway
병원 밖에서의 노력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병원 밖에서도 지역사회의 특정한 필요에 맞춰 의료 활동을 조정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19를 염려하고 있지만, 모든 지역사회에서 코로나19가 최우선 건강 문제는 아니다.
"일률적 접근 방식은 이런 전염병 상황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의 필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며, 가장 시급한 의료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동시에 코로나19 전염의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우리 활동을 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벽한 코로나19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실제로는 현재 여러 지역에서 말라리아나 영양실조가 급증하고 있고 지역사회 질병 및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_케이트 화이트 국경없는의사회 코로나19 프로젝트 팀 의료 담당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
의료 지원을 지속하고자 하나 어떤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시리아, 엘살바도르, 말레이시아, 멕시코에서 일시적으로 이동 진료소 활동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했다. 이라크에서는 비감염성 질환 프로그램 신규 환자 등록을 중단해야 했으며, 라이베리아 몬로비아(Monrovia)에서는 여행 금지 조치로 인력이 부족해져 소아외과 수술을 중단해야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발루치스탄(Balochistan)과 카이베르 파크툰크와(Khyber Pakhtunkhwa)에서 피부리슈만편모충증 진료를 중단하고, 페샤와르(Peshawar)의 산부인과 병원을 임시 폐쇄했다. 나이지리아 잠파라(Zamfara)에서는 납중독 대응 활동 대부분을 일시 중단했다.
국제 구호 활동가 파견과 개인 보호 장비를 비롯한 의료 물자의 지속적인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새로운 계획을 보류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예멘 콰나위스(Qanawis)에서 새로운 산과·소아과 시설을 개소하려 했던 계획도 포함됐다. 이곳은 임산부와 아동이 지속적으로 극심한 분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창의적인 해결책 찾기
전 세계적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의료 접근성을 유지하고 최전방 의료 종사자들이 지역사회에 계속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자 했다. 원격 의료 이용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서부터 온라인 감염 예방 및 통제 교육을 제공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보건 증진 캠페인을 펼치며, 전통 치료사를 위한 메신저 소통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목할 만한 활동이 있었다.
우리는 우선 임산부가 직접 진료소를 방문하도록 권장하는 임신부 진료 건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국가의 모성 보건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여성들이 지역 사회 내에서 여러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합병증이 생겨 병원에 가야하는 여성을 식별할 수 있도록 지역 보건 요원이나 전통 조산사와 협력하고 있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캄보디아와 같이 다양한 국가의 HIV, 결핵, C형 간염, 비감염성 질환 프로젝트에서는 정기 진료를 줄이고 환자에게 필수 치료제를 더 긴 기간(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1~6개월) 동안 처방해 의료 시설을 자주 방문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동시에 전화 상담, 메시지, 지원 네트워크를 통해 환자가 후속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야기하는 합병증에 가장 위험한 대상은 다제내성 결핵(MDR-TB)과 같은 기저 폐질환을 가진 사람들인데, 에스와티니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이러한 취약 환자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보건소에 오기 위한 불필요한 대중 교통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이곳에서 치료하고 있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 40명 중 대다수가 현재 '비디오 관찰 치료(video observed therapy)'를 사용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환자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약을 복용하는 모습을 촬영해 보내면 간호사가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에스와티니 마찬제니(Matsanjeni) 보건소에서 다제내성 결핵 환자에게 비디오 관찰 치료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 MSF/Jakub Hein
한편 엘살바도르, 팔레스타인, 인도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정신건강 서비스 상당수는 현재 기존 및 신규 환자에게 비상 전화 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상담자와 심리학자가 전화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파키스탄 카슈미르(Kashmir)에서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로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정신건강 진료소를 운영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곳의 임상심리학자 아자즈 아마드 소피(Ajaz Ahmad Sofi)는 전화 상담을 통해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신규 환자 중 많은 수가 친척이나 이웃, 친구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방문 상담을 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봉쇄로 생활은 훨씬 더 어려워졌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_아자즈 아마드 소피(Ajaz Ahmad Sof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