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폭력사태와 치안 불안정으로 인해 아이티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에서 강간을 비롯한 폭행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어 성 ·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와 정신건강 지원, 치료 등 필수 서비스가 시급히 필요하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 레지나 니콜라스(Regina Nicolas)를 기리기 위한 벽화 앞을 지나가는 여성 (2021년 자료사진) ©Valerie Baeriswyl
국경없는의사회는 2015년부터 포르토프랭스 소재 프란 멘엠(Pran Men’m) 진료소를 통해 성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들에게 포괄적인 의료 및 심리 치료를 제공해 왔다. 지난 11월 직원과 환자들을 상대로 한 위협으로 인해 포르토프랭스 전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활동을 잠정 중단해야 했다. 이후 12월에 진료소를 다시 열어 하루 24시간 연중무휴로 환자들에게 무상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내 성폭력 위기사태를 조명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수상 이력을 가진 아이티 출신 시각예술가 린 루시앙(Lyne Lucien)과 협업하여 한 생존자의 힘겨운 회복 여정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담았다.
아이티: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익명으로 전달함으로써 아이티와 그 이외 지역에서 생존자들이 직면하는 어려움과 개인 또는 단체들이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절실히 필요한 관심을 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중 하나는 생존자들이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안전한 거처가 없다는 것입니다.” _다이애나 마닐라 아로요(Diana Manilla Arroyo) / 국경없는의사회 아이티 현장 책임자
성폭력 사례 증가
최근 몇 년 동안 포르토프랭스 권역에서 폭력사태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무장단체와 경찰 간 잦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며, 치안 불안정으로 인해 공공병원과 같은 주요 시설들이 문을 닫았다. 포르토프랭스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성 ·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활동해 왔는데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환자 발생을 목격하고 있다.
2024년 국경없는의사회는 프란 멘엠 진료소와 까르푸 모성 병원(Carrefour Maternity Hospital), 시테 솔레이(Cité Soleil)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신규 프로그램을 통해 4,463명의 성 ·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에게 치료를 제공했다. 2023년에는 프란 멘엠 진료소와 까르푸 모성 병원에서만 3,207명의 생존자를 치료했는데, 이는 2022년 1,775명에서 급격히 증가한 수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포르토프랭스 곳곳에 있는 이동진료소를 통해서도 생존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생존자들이 여전히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들에 의해 폭력을 당했지만, 2022년 중반 이후로 보다 많은 환자들이 가해자가 낯선 이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다수의 사례에 무장단체가 관련돼 있으며 가해자가 두 명 이상인 경우도 종종 있다. 생존자들 중에는 아동과 실향민들도 있다.
상기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생존자의 경우와 같이, 이러한 무장단체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무기를 통한 위협이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밖에서 누군가 문을 열지 않으면 총을 쏠 거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문을 열자 두건을 쓰고 무장한 남성 세 명이 있었어요. 그들은 제가 그들과 자겠다고 하지 않으면 우리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리고 그날 그 세 명이 저를 강간했어요.”
생존자들은 종종 이러한 폭력을 당한 뒤에 신체적 및 심리적 상처를 가지고 일종의 내적 실향을 겪게 된다.
그 사고를 당한 후에 우리는 마을을 떠나서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다른 지역에 머물러야 했어요. 내 속이 이미 죽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공격에 대한 기억이 저를 괴롭혀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현재 아이티에서는 정국 혼란으로 인해 생존자들이 사법체계를 통해 정의를 찾거나 당국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 어렵다.
대다수의 생존자들은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국내실향민 결집 장소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이들은 추가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그 외 생존자들은 어쩔 수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성폭행을 당한 지역으로 돌아간다.
포르토프랭스에는 성 ·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긴급 피난처가 몇 개밖에 없으며, 그 수용 인원도 매우 제한적이다. 생존자들은 피난처에 단 며칠 동안만 머물 수 있거나, 자녀가 있거나 특정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경제적 또는 법적 지원이 필요한 생존자도 있지만, 이러한 서비스는 심각하게 제한적이다.
의료 및 심리적 지원 또한 치유와 회복에 필수적이다. 한 환자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원이 성폭력 후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저는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임상심리사를 만났어요. 그녀는 저를 돕기 위해 의사들이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거라고 말해줬어요.”
의료 및 심리 치료는 생존자들이 회복하는 모든 단계에서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가장 포괄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HIV 노출 후 즉각적 예방과 피임을 포함한 시의적절한 의료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대응 활동을 확대했지만 성·젠더 기반 폭력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사회에 더 많은 지원이 시급하다.
포르토프랭스 시내 한 구역을 지나가는 아이티 여성 (2021년 자료사진) ©Valerie Baeriswyl
성폭력 피해자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건강과 미래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의료 및 심리 치료, 사회경제적 지원, 피난처, 보호 수단 등 관련 정보와 서비스가 보다 광범위하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생존자들이 본인의 존엄성과 건강,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요.” _다이애나 마닐라 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