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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E형 간염 백신은 방치된 질병과의 싸움 속 한 줄기 희망

2022.10.14

지난 20년간 E형 간염 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국경없는의사회의 노력은 치료제 및 백신의 부재로 좌절되곤 했다. 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남수단 보건부와 함께 세계 최초 대규모 E형 간염 예방접종 캠페인을 실시하면서 E형 간염이 야기한 공중보건 위기를 타개할 수 있게 됐다.
E형 간염의 피해를 고스란히 목격한 후 역학(疫學) 공부에 뛰어든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이자 시그레네츠키(Iza Ciglenecki)와 식수위생 전문가 에티엔 지누(Etienne Gignoux)는 전 세계 유일한 E형 간염 백신의 접종 확대에 대한 옹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두 전문가와 함께 E형 간염 예방접종 캠페인을 실시하기까지 길고 힘들었던 여정을 돌아본다. 


 

E형 간염으로부터 완치된 2세 남아 ©Peter Caton

 

2004년, 폭력으로 피난민이 대규모 유입됐던 수단 다르푸르(Darfur) 모네이(Mornay) 캠프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당시 저는 집중치료실 담당이었는데 중증 E형 간염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집중치료실에 오는 환자 중 절반이 임신부였습니다. 황달이나 심한 경우 간부전까지 발생했는데, 치료제가 없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임신부 사망률은 25%까지 치솟았습니다.”_이자 시그레네츠키(Iza Ciglenecki) /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역학조사 책임자


수십 년 동안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지역의 피난민 임시 거처 및 난민 캠프에서는 E형 간염이 유행할 때마다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E형 간염 바이러스는 오염된 음식이나 식수를 통해 전염되는데, 열악한 생활 환경 탓에 질병이 확산하기 쉽다. 또, 바이러스가 수년간 생존할 수 있다 보니 식수위생을 개선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염 통제가 어렵다.


2004년부터 모네이 캠프에서 역학조사관 및 식수위생 전문가로 활동한 에티엔 지누는 “모네이 캠프에 매일 2백만 리터 이상의 식수를 지원해왔지만, E형 간염 확산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2011년, 중국에서 첫 E형 간염 백신인 헤콜린(Hecolin)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모든 임상시험을 거쳐 예방 효과가 약 90%에 달하는 이 백신은 E형 간염과 치열하게 싸워온 보건 종사자에겐 한 줄기 희망이다. 하지만 중국 외 국가에서 전염병 대응에 사용하기까지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국경없는의사회는 남수단 유니티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E형 간염 예방접종 캠페인을 전개했다. © Peter Caton
2015년 세계보건기구는 E형 간염 유행에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는 임신부 등 모든 지역민이 헤콜린을 접종받을 것을 권장했다. 하지만 E형 간염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가 캠프 등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이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보니 그 심각성이 간과되어 백신 접종률이 저조했다. 올해까지도 E형 간염 예방접종 캠페인을 실시한 국가는 전무했고, 각 보건당국의 의사 결정권자들도 E형 간염 백신의 존재 여부나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사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2016년부터 향후 E형 간염 확산 시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2020년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의 피난민 캠프에서 E형 간염이 창궐했을 때는 백신을 확보할 수 없어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을 전개하지 못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추후 감염 발생 즉시 백신을 수송할 수 있도록 2021년 초 중국 제조공장에 선주문을 넣어 백신을 확보했다.


2021년 7월,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활동 중인 남수단 벤티우 피난민 캠프에서 E형 간염 환자가 발생했다. 이에 남수단 보건부와 국경없는의사회는 백신을 활용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E형 간염의 위험성뿐 아니라, 특히 임신부가 E형 간염에 가장 취약하고 감염 시 자연유산이나 사산 위험도 높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었던 보건부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원을 받아 E형 간염 예방접종 캠페인을 적극 실시하기로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담당자가 지역사회 주민의 보건인식제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Peter Caton
1차 백신 접종은 이듬해인 2022년 3월과 4월에 걸쳐 이뤄졌고, 현재까지 임신부를 포함한 25,000여 명이 2차 접종을 마쳤다. 10월 내로 마지막 3차 접종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수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E형 간염 예방 접종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동안 외면되었던 E형 간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산이 생겼습니다. 이번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이 E형 간염 모범 사례가 되어 다른 국가들도 헤콜린 접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길 바랍니다.”_ 이자 시그레네츠키 /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역학조사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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