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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파키스탄: 취약 계층의 산모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21.12.17

이름: 정의
포지션: 산부인과의 (Obstetrician Gynaecologist)
파견 국가: 파키스탄
활동 지역: 페샤와르
파견 기간: 2021년 7월 - 2021년 11월

페샤와르 여성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EuiJung / MSF

 

1. 파키스탄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라는 도시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여성 병원에서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산부인과 진료와 신생아 진료가 가능한 모성 전문 병원이었는데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이곳에 병원을 설립한 지 10년이 넘어서 안정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전 아프리카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병원 수준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입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또한 전문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아서 이곳의 환자들은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산부인과를 총괄하는 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긴급 구호 활동을 주로 하는 단체인데 안정적인 이 병원을 왜 파키스탄 정부에 인계하지 않는지 저 또한 물음이 생겼는데요, 알고 보니 파키스탄은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비정부단체(NGO)에 호의적이지는 않다고 합니다. 추방한 단체도 여럿 되고요. 그만큼 비자 발급도 어렵고 이곳에 새로 병원을 개소하는 것 또한 어려워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페샤와르 여성 병원 전경. ⓒEuiJung / MSF

 

페샤와르 병원의 수술실 모습. ⓒLaurie Bonnaud/MSF 

 

2. 파키스탄의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파키스탄은 높은 산모 사망률을 보이는 나라입니다. 제가 자주 만났던 환자 케이스는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긴급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였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여성이 분만을 서두르려고 자궁 수축 촉진제로 주로 쓰이는 옥시토신을 오남용하여 자궁이 파열되거나 태아를 사산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까지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미 상황이 심각한 상태에서 응급 수술을 위해 병원에 오기에 중환자 케어가 필요했습니다. 

원인을 살펴보자면 검증되지 않은 의료진(의료 면허가 없는 조산사 등)이 민간으로 분만소를 운영하며 약품을 용법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케이스가 대다수였습니다. 심지어 분만 촉진제인 옥시토신은 길가의 상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이 약을 구매해 임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긴급한 의료적 치료도 필요하지만 보건 교육이 더욱 시급해 보였는데, 파키스탄 정부에서 NGO가 사람들을 찾아가 교육을 진행하는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을 허가하지 않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물 오남용에 대한 보건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국경없는의사회 차원에서는 보건소에 지원인력을 보내 보건 교육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큰 빈부 격차도 의료보건 문제를 야기하는데요, 소외 지역에 살거나 취약 계층인 주민들에게는 의료 지원이 부족합니다. 페샤와르에는 수많은 사립 산부인과 병원들이 있지만 난민, 피난민, 빈곤층 등 취약 계층 여성이나 연방부족직할지역(FATA) 출신 여성이 찾아갈 수 있는 전문 산부인과 병원은 매우 적습니다. 사립 병원들은 진료비가 턱없이 비싸고, 공립 병원들은 상대적으로 서비스 질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는 모든 지원을 무료로 제공하고 취약 계층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페샤와르 병원 신생아 치료실에서 광선 치료를 받고 있는 황달에 걸린 아기. ⓒLaurie Bonnaud/MSF 

 

병원 내 출산, 백신 접종, 위생 관리 등 보건 인식 증진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Laurie Bonnaud/MSF 

 

3. 코로나 19로 활동에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로 현장에 올 수 있는 활동가가 줄어들면서 활동 시작과 종료 시점 조정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공백이 생겼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은 분만과 신생아 케어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었는데, 방역 조치가 강화되면서 열이 나는 환자는 파키스탄 정부 운영 병원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원래도 안전상 위험도가 높은 지역이라 이동과 외출에 제약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동료가 집에 초대해도 갈 수가 없고, 식당도 허가된 곳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서 특별히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4.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환자가 있나요? 

제왕절개를 5번 했던 환자가 생각이 나네요. 보통 제왕절개는 3회 이상은 잘 하지 않고, 수술력이 있으면 다음 임신을 할 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요, 자궁이 이미 약해져서 다음 수술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있었던 파키스탄 북부는 무슬림 지역이어서 보수적인 경향이 크고 남아선호사상도 센 편이었습니다. 실제로 남편의 허락이 없이는 병원에 갈 수도 없는 환자들도 있었었습니다. 분만 중인데도 머리는 꼭 스카프로 가리려고 노력하는 환자들도 보았고요.  

이 환자는 아들을 갖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또 임신한 경우였어요. 출산이 임박해 진료를 해보니 제왕절개가 5번째고, 다른 합병증도 있었습니다. 결국 분만 후에는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만 했는데, 네 번이나 제왕절개를 했는데도 다시 임신한 것이 사회적인 영향 때문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다행히 산모와 아기가 건강했고, 산모는 무사히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돌아갔습니다. 

 

5. 한국의 근무 환경과 비교한다면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응급 수술이 많다는 점이 가장 다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분만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원활히 진행할 수 없을 때 오는 경우가 많아서 수술의 난도가 꽤 높은 편입니다.  

또 다른 점은 역아(逆兒)나 쌍둥이 등은 한국에서 보통 수술로 분만을 진행하는데 이곳은 자연분만을 시도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흡입 분만도 진행하는 경우가 꽤 되고요. 따라서 한국에서보다는 위험한 분만이나 수술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6. 하루 일과를 알려주세요. 

공식 업무는 아침 8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출근하면 월수금은 메디컬 회의를 진행한 후 곧장 분만실로 가서 의사들과 회진을 돕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만나서 수술 계획이나 치료 계획을 안내하고 가족 계획도 상의합니다. 9시 이후에는 분만실에 머무르면서 전반을 총괄하며 흡입분만, 열상, 수술 등에 관여하고 치료 조절합니다. 6시쯤 퇴근하고 병원 바로 옆에 마련된 숙소로 돌아가는데요, 밤중이라도 응급 상황이 생겨서 연락이 오면 병원으로 수시로 출동합니다. 

 

7. 이곳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고맙고 소중한 존재일 것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무료로 치료를 제공하면서도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의료 상황에 관계없이 거의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수술과 치료를 제공하고, 약도 좋은 약을 처방합니다. 병원 위생도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죠. 또한 그 지역의 문화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데, 제가 현장에서 보고 느끼기로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프로젝트건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다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페샤와르 여성 병원에서 방금 태어난 신생아를 안고 있는 정의 구호활동가. ⓒEuiJung / MSF

 

8. 이번이 5번째 활동입니다.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운이 좋았고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그래서 가진 재능을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돈, 시간 등 제가 조금만 헌신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가는 거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살아갈 원동력을 주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환자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구호 활동지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또 활동지에서 만나는 여러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과 교류하는 것도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9. 미래의 활동가에게 한마디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가 되었다면 생명을 살리는 의료 봉사에 막연한 로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하는 사람도 있고, 채용설명회에 참여하는 등 직접 알아보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열정이 있다면 지원서를 내고 한번은 도전해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면접을 보고 불합격할 수도 있는 거고, 안되면 또 도전하면 되고요. 구호 활동에 참여한 후 한 번만 해볼 수도 있고, 계속할 수도 있는 겁니다. 너무 무겁게 내 모든 것을 내팽개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해보세요. 

 

10. 정의 활동가에게 국경없는의사회란? 

국경없는의사회는 제가 더 즐겁고 건강하게, 마음을 열고 살게 해줍니다. 마음이 열리고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페샤와르 여성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EuiJung / 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