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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남수단: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에 다리를 잘라야 했던 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2020.05.22
이름: 장예림
포지션: 외과의 (Surgeon)
파견 국가: 남수단
활동 지역: 아곡 (Agok)
파견 기간: 2019/10 ~ 2020/01

남수단 아곡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외과의로 활동한 장예림 활동가(외과의). 수술팀인 동료 외과의, 마취과의, 수술방과 병동 간호사들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1.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구호활동가가 되고자 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인생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 외과 의사라는 직업, 의술이 제가 받은 선물이고, 가진 것을 나눌 때 더 풍성해진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불과 수십 년 전 전쟁 피해국이었을 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바쳐가며 우리를 돕던 사람들이 있었죠. 우리나라는 이제 잘 살게 되었고, 의료의 수준은 높으니 받았던 걸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긴급 구호 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 중에서도 어디든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원칙이 마음에 들어서 국경없는의사회를 선택하였습니다. 

 

2.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었나요?

원래는 간담췌외과를 전공했습니다. 매우 세분화된 의료 환경에서 암 환자 치료를 중점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구호 현장의 환자를 보기에 부족할 것이라 생각해서 2015년부터 권역외상센터에서 외상 외과의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구호활동에서 일반외과의로써 제왕절개수술, 사지절단수술, 화상 수술 등도 해야 한다는 것을 듣고 제가 근무 중이던 병원의 산부인과, 정형외과 선생님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서 배우고 한강성심병원에도 일주일간 가서 화상환자 치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3.이번에 활동하고 돌아온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수단과 남수단의 경계에 위치한, 양쪽 모두에게 잊혀진 지역의 유일한 2차 병원에서 3개월을 보냈습니다. 2008년에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로 병원의 규모가 점차 확장되어 제가 갔을 당시 저와 같은 구호활동가는 20명, 현지인 스태프 380여 명이었고, 의료팀은 저 포함 일반외과의 2명, 마취과의 1명, 내과의 1명, 소아과의 2명, 조산사 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2019년에 병원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엑스레이 촬영실도 생겼고, 이동식 초음파도 2대 있었습니다. 병원 내에서의 연락은 무전기를 사용하였습니다. 

14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와 질환을 치료했는데, 한 달 평균 응급실 내원 환자는 3000여 명, 전체 입원 환자는 600-1000명 정도 규모였습니다. 

전 그 지역의 유일한 외과 의사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역할을 해야 했는데 뱀에 물린 상처, 장티푸스 복막염, 각종 심한 농양 등등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환자군에 총상 사고도 꽤 있었습니다. 수술을 여러 번 해야 하거나 상처 치료를 반복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매일 예정된 수술이 5-7건씩 있었습니다. 

복부농양환자의 수술 모습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남수단 아곡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수술실 모습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4.현장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정규시간은 월-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습니다. 매일 아침 병동 환자에 대한 사항을 인계하는 회의로 하루를 시작했고, 동료 외과의와 번갈아 가면서 당직을 섰습니다. 당직인 날은 20개의 외과 입원 병상, 상처치료 클리닉의 환자들을 보고 응급실과 타과에서 오는 콜을 받았습니다. 오후 5시 이후에 생기는 응급수술도 집도하였습니다.  

당직이 아닌 날에는 수술방을 맡아서 정규수술이 끝나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간혹 수술이 5시보다 일찍 끝나면 수술방 간호사들과 무척 기뻐하곤 했습니다. 한국과 워낙 환자군이 달랐기 때문에 틈틈히, 열심히 다른 영역의 수술을 공부해서 환자들에게 좋은 결과를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일요일에는 정규 일정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2주에 한 번 무전기 없이 온전히 쉴 수 있었습니다. 

 

5.활동 중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었나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이 폭행에 노출되는 경우가 흔했는데, 그중에 남편에게 물려서 아랫입술 절반이 잘려나간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일주일을 꼬박 공부하고 한국에 있는 성형외과의에게도, 국경없는의사회의 자문단에도 의견을 구해서 준비했는데 감사하게 재건 성형수술이 매우 성공적으로 되어서 같이 일하는 모두가 매우 기뻐했던 적이 있습니다. 

환자들을 항상 건강히 퇴원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단도 못 받고 장티푸스 복막염으로 4개월 동안 고생하다가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로 찾아와서 결국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었고, 쌍둥이 중 뱃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은 둘째 아기를 위해서 제왕절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에 결국엔 다리를 잘라야 했던 엄마와 7살 아들도 있었고요. 다리를 절단한 꼬마는 제가 근무했던 3개월을 꼬박 입원했는데 마지막에는 보조기를 가지고 혼자 걷게 되어서 동료들과 함께 기뻐 울었습니다. 

 

6.주거 환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휴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병원 바로 옆에 지어진 구호활동가들을 위한 생활구역에서 지냈습니다. 개인별로 오두막(tukul)을 하나씩 사용했는데, 침대와 책상, 옷장, 선풍기가 갖춰져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습니다. 식사를 위한 공간 외에도 회의도 하고 파티도 하는 공용 오두막이 있었고, 빵이나 피자를 구울 수 있는 큰 화덕이 있었습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이었지만 개수가 넉넉해서 순서를 기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식재료는 매주 수도인 주바(Juba)에서 공급받았는데 채소와 과일, 우유, 치즈, 스낵 등등 기대보다 훨씬 다양했고 음식을 해주시는 분들의 솜씨도 괜찮았습니다. 가져간 한국 음식을 통 안 먹게 되어서 하루를 잡고 동료들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했는데 다들 매우 좋아했습니다. 

당직이 아닌 날에는 근무가 끝나고 3미터 정도 높이의 물탱크에 올라가서 동료들과 석양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인근 강가로 산책을 가서 해가 지는 걸 보고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다 쓰고 버린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서 동료들과 같이 음악을 듣거나 별을 보기도 했고요.  

매주 금요일에는 다 같이 화덕에 피자를 구워서 파티를 했고, 일요일 아침에는 함께 조깅을 하고 오후에는 마켓에 구경가기도 했습니다. 이따금씩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고 저는 동료들 몇 명과 함께 현지인 교회에 가기도 했습니다. 

활동 중에 보낸 크리스마스는 매우 특별했는데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고 매일 일과 후 늦게까지 함께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동료들끼리 서로를 위한 선물도 준비하고 트리도 만들도 요리도 해서 멋지게 이브를 함께 보냈습니다. 

아프리카 전통가옥 투쿨(Tukul) 형태로 만들어진 개인 생활 공간. 우리는 우리의 생활 공간을 아곡 파라다이스 (Agok paradise) 라 불렀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저녁에 함께 자주 모여서 회의도 하고 송별회도 하고 파티도 하던 공간(living tukul)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입원 중인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던 성탄절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장기 입원 환아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상처드레싱을 꾸며주고 수술팀 사람들과 같이 찍은 사진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

 

7.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구호 활동에서 돌아와서 바로 권역외상센터에서 다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활동 전까지는 정형외과 수술을 좀 더 배우려고 계획 중이고, 국경없는의사회의 외과의를 위한 교육 코스도 기회가 된다면 참석하려 합니다. 보건학 공부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8.미래 구호 활동가에게 한마디

구호현장과 한국은 환경이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평소에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외과 의사의 경우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의 자질이 여러 면에서 뛰어나다는 자신감과 동료들,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겸허한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죠. 그렇지만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디딘다면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떠나는 날 배웅하러 나온 동료들과 찍은 사진. 차에 타서도 한참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국경없는의사회/장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