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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필리핀: 무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

2013.12.12

레이테 섬 북쪽의 마카닙(Macanip) 마을은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건물 5채 중 4채가 파괴되었고 지역 보건소도 한낱 콘크리트 더미가 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아이들의 트라우마 회복을 돕기 위한 심리 치료를 포함하여 마을 주민 2,500명을 대상으로 이동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26세의 버나디나 바라자(Bernadina Barraza)씨도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진료소를 찾아왔다.

▲국경없는의사회 이동 진료소를 찾은 버나디나와
5개월된 딸 아이 마리 저슬

▲성당에 설치된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초진 창구에서
영양실조 여부 검사를 받는 아동

"저는 어린 아이들 셋을 키워요. 남편은 다른 마을에서 일을 해서 낮에는 저 혼자 아이 셋을 봐야 해요. 막내 딸 마리 저슬(Marie Jersel)은 이제 막 5개월이 되었어요. 마리가 설사를 해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고 싶어서 여기 찾아왔습니다. 아들도 열이 나고 피부에 발진이 나서 가려워해서 데리고 왔어요."

태풍이 마카닙을 강타했을 때 버나디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로 갔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학교를 피난처 삼아 모여 있었다. 버나디나는 "아이들이 정말 무서워했어요. 소리도 크게 나고, 정말 무서운 태풍이었어요"라고 말한다. 마을 대피소인 학교와 교회는 태풍을 견뎌낸 몇 안 되는 건물이다.

버나디나와 그녀의 가족은 큰 외상을 입지는 않아 무사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태풍의 심리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태풍이 마을을 덮치고 간 이후 네 살 난 우리 아들 저슨(Jerson)의 상태가 나빠졌어요. 낮에는 다른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지 않아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밤만 되면 잠을 못 자요. 겁에 질린 것처럼 갑자기 깨는 경우도 많고요. 여전히 태풍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카닙 보건소는 한 무더기 폐허로 변했고, 매일 방문하던 조산사도 더 이상 이 지역을 찾아오지 않아서 마을 주민들은 보건 의료나 의약품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하로(Jaro) 마을 보건소까지 가야 한다. 태풍의 피해를 받기는 했어도 여전히 운영이 가능한 하로의 보건소는 주변 지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모여 들어서 북새통이다. 하지만 별 다른 선택권이 없는 임산부와 환자들은 이곳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마카닙에서 이동 진료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이동 진료소는 마을 주민들에게 기초 진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심리적인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현지인 심리학자 멜리자 다즈(Meliza Daz)는 한 피해 아동을 예시로 들며 트라우마 증상을 설명했다. "아이는 울면서 잠에서 깬 후 몇 시간 동안이나 다시 잠들지를 못했습니다. 또, 자면서 오줌을 싸기도 하는데, 하룻밤에 세 번을 쌀 때도 있어요. 이런 야뇨증은 충격이 큰 사건을 겪은 그 또래 아이들이 보이는 흔한 반응입니다. 그 경험을 감당할 수가 없어 신체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잦습니다."

멜리자 다즈는 아이를 위해 종이와 크레용을 준비했다. "아이에게 종이와 크레용을 주고 무엇이 두려운 지 그려보게 했습니다. 그림을 설명해 달라고 하니 아이는 자기가 그린 것은 괴물이고 이 괴물이 자기를 해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그려보라고 했더니, 칼을 든 자신의 모습을 그리더군요. 이런 치료 과정을 재건 놀이(reconstructive play)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외상적 사건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이런 치료 과정과 함께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도와주고, 무서움을 느낄 때마다 안도할 수 있도록 아이를 안아주라고 말씀 드리는 데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라고 다즈 심리학자가 말한다.

버나디나는 진찰과 심리 상담을 모두 마친 후 국경없는의사회 약국에서 아이들의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집은 파괴되었지만, 다행히 마을에서 모은 자재로 작은 오두막을 만들 수 있었어요. 다행히 일주일에 한 번 식량 배급이 되고 있지만, 비닐 깔개나 텐트 같은 다른 구호 물품은 받질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앞으로의 소원에 대해 ‘집을 고치고 생활을 복구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