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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신건강의 날: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기까지

2018.10.10

가정 폭력을 겪었던 신시아(가명, 18세)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진료소에서 진료와 상담을 받았다. (2017년 온두라스) ⓒChristina Simons/MSF

폭력이나 자연재해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적 치료만이 아닙니다. 신체적 부상을 다 치료했더라도 심리적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지원해 환자들이 충격적인 과거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4명 중 1명은 정신건강 장애를 겪는데, 그중 약 60%는 이를 해결할 도움을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력 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 집을 떠나는 경우도 있고, 기본적인 의료조차 구할 수 없는 곳들도 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이 비율은 훨씬 높을 것입니다. 이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인도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신건강 지원을 실시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스테파니프카의 한 유치원에 마련한 진료소에서 타마라(73세)가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Maurice Ressel

1998년 국경없는의사회는 긴급구호의 일환으로 정신건강 지원 활동을 해야 한다고 공식 인정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7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총 52개국에서 개인 상담 306,000회, 집단 상담 49,800회를 진행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개인 • 집단 상담을 통해 대처 기술을 기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들의 심리적 증상을 줄이고, 환자들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도적 위기 속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만났던 많은 사람은 가족과 뿔뿔이 흩어졌거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오랜 시간 동안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심리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은 특히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그 전에 받았던 정기적인 치료와 지원이 끊겨서 더 심한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수단 말라칼의 민간인 보호구역은 폭력 피해를 입은 지역민을 보호하려고 만든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자유와 희망을 잃어 버리게 되고, 환경도 열악한데다 일할 기회도 적었기 때문에 캠프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6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자살과 자살 시도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는데, 아동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 캠프에서는 사람들을 무기한 구금하는 정책 때문에 구금센터에 있는 9000명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보니 갇혀 있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불안해졌고, 특히 아동들에게 큰 피해가 나타났습니다. 2018년 국경없는의사회는 6세~18세 아동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진행했는데, 이 아동들 중 자해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시도했거나 혹은 자살 생각을 해 봤던 아동이 무려 25%에 달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리아 캠프에 있는 많은 아동들이 공황 발작과 끝없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두 딸과 모리아 캠프에 머물고 있는 파티마(가명)는 모리아 환경 때문에 둘째 딸(14세)이 걱정스럽게 변했다며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14살밖에 안 됐는데 늘 칼을 가지고 있어요. 자해할 거라며 엉엉 울기도 해요. 아이 베게 밑에서 두 번이나 칼을 발견했어요. 아이를 혼자 둘 때면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어요.”


정신건강 지원 활동의 어려움

2016년 10월, 지중해에서 구조된 사람들에게 심리적 응급 처치를 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스태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성은 아내와 생후 7개월 된 아들과 함께 떠나 왔으나, 아내는 지중해 횡단 중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총 25명이 숨졌다. ⓒBorja Ruiz Rodriguez/MSF

정신건강 지원을 받기까지 사람들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우선 정신건강 지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건강 지원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자신에게 그런 도움이 필요한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심리학자 데보라 두아르테(Deborah Duarte)는 케냐 다다브 캠프에 도착한 난민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겪었던 일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제야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알게 된 거죠.”

심리적 지원에 있어 또 다른 문제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입니다. 환자를 만나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사실 정신 장애에는 사회적 낙인이 따를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양한 접근

모든 상황에는 그에 맞는 접근법이 있습니다. 어떤 상담가들은 환자들이 과거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소화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지만, 어떤 심리학자들은 환자의 특정 문제에 초점을 맞춰 치료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아미르(가명, 35세)는 이라크 남부 술라이마니야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 속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미르는 살라헤딘에 살고 있었는데,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쳐들어와 시를 포위하고 식량 공급을 차단하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로 아미르는 불안과 불면증 속에 시달렸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불안해지고 잠도 못 자요. 방 한 구석에 앉아 아침이 될 때까지 꼬박 밤을 새가도 해요. 그래서인지 몸도 아픈 것 같아요. 배도 아프고 가슴도 아파서 병원에 가봤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선생님을 만나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선생님은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매일 텐트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려 보라고 조언도 해 주셨어요. 운동도 하고 그러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라고 하셨어요.”

정신건강 지원의 또 다른 중요한 분야는 교육 활동입니다. 지역민들에게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신체적 증상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상담처럼 교육도 그룹 활동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교육 주제는 그 지역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연관된 것으로 모임 전에 미리 정합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음웨소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피난민들에게 다양한 의료 활동을 알리려고 연극을 진행했다. (2017년 9월) ⓒSara Creta/MSF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심리적 지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합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내에서 실향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음웨소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배우가 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지원팀은 음악, 춤, 연극을 통해 최대 200명의 관객과 소통한다. 팀원들은 이렇게 연극을 통해서 국경없는의사회가 가까이에서 지역민을 도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2014년 9월 콜롬비아에서 진행된 정신건강 프로그램 ⓒAnna Surinyach/MSF

필리핀 마라위의 실향민 캠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응급 심리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놀이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 11월) ⓒMSF/Rocel Ann Junio

우크라이나 동부 아우디이우카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룹 상담을 진행하는 모습. 2014년-2015년 당시 이곳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 많은 주민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Amnon Gutman/MSF

모든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활동 현지의 지역 특색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새로운 곳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우선 지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지도자들을 만나 조언을 듣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중에 지역 주민이 있으면 매우 유익합니다. 이 직원들은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해서 현지 사람들이 무엇을 터부시 하는지 알고 있고, 지역 주민들이 겪었던 충격적 사건들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활동한 국경없는의사회 상담가 스탠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상담가로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잃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분이 오면, ‘집을 잃었다는 말씀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 힘드시겠어요. 저도 그랬거든요.’라고 말씀 드립니다. 상담의 가장 큰 목적은 환자들을 돕는 것인데요. 이렇게 우리가 함께 겪은 일들을 나누면 환자 분들께 큰 위로를 드릴 수 있습니다.”

현지 특성을 잘 이해하면 최선의 지원 방식을 정할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사회 지원팀은 지역 공동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멕시코 오악사카 주의 후치탄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자원봉사자 세사르 로페즈 바스케스가 아동들을 만나고 있다. ⓒJordi Ruiz Cirera/MSF

2017년 10월, 우크라이나 동부 베레조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이동 진료소가 열려서 지역민들이 찾아와 진료와 상담을 받았다. 당시 베레조프는 교전선에서 불과 7~8km 떨어져 있었고 의료 지원을 받기도 상당히 힘든 곳이었다. ⓒAmnon Gutman/MSF

2017년 11월, 멕시코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기획한 벽화 그리기 행사에 많은 아동들이 참여했다. ⓒConsuelo Pagaza/MSF

이 모든 일을 진행하려면 정신건강 분야를 전공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직원들은 집에서 멀리 떠나 와 긴급한 상황 속에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들을 전해 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도 자신이 가진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호 활동가들에게 가장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시기는 아마 현장 활동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일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재발견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현장에서 겪은 일들이 심리적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자신이 만났던 환자 대다수가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앞으로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돌아온 활동가들은 자신이 현장에서 겪은 일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마음으로 또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해 환자들이 겪고 있는 눈에 보이는 상처,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