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초 미국 시사잡지 타임(TIME)지가 선정한 보건 분야 100대 인물에 노마병 생존자이자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며 노마병 생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엘리시움(Elysium) 설립자인 물리카트 오콜란원(Mulikat Okolanwon)이 해당 재단의 공동 설립자와 함께 선정됐다. 이에 자세한 오콜란원의 이야기를 전한다.
물리카트 오콜란원은 어린 시절 노마병에 걸려 중증 기형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북부 소재 소코토 노마 병원(Sokoto Noma Hospital)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후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그가 이후 노마병 환자를 위한 옹호활동가가 되어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당 질병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물리카트 이야기 더 읽어보기]
노마병 생존자 물리카트 오콜란원. 2023년 5월. ©Fabrice Caterini/Inediz
제 인생은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게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되었어요. 조부모님과 그들이 살던 마을에서 함께 지내던 당시, 저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죠. 조부모님은 제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병은 악화하여 제 얼굴을 급격히 망가트렸죠.
저는 집 근처에 있는 수련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병으로부터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병이 제 얼굴에 치명적인 흔적을 남긴 탓에 저는 지역사회 주민들과 어울릴 수 없었죠. 그 후 저는 외출도 할 수 없었고 그 어디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피해 다니는 삶이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다른 사람들처럼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어요. 항상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나중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죠. 이로 인해 저와 제 가족은 더 큰 두려움과 정서적 불안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울었어요. 차라리 그냥 죽었더라면 이런 사회적 낙인과 질병영향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다행히 라고스(Lagos)에서 만난 한 교수님이 제게 소코토 노마 병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차로 24시간 거리였죠. 거기서 저는 처음으로 성공적인 성형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5번의 수술을 더 받고 현재 상태에 이르렀죠.
그 후 저는 마침내 저 자신을 아끼고, 제 사진을 찍고, 지역사회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제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도 등록했고요. 하지만 여전히 제 외모 때문에 저와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소코토 노마 병원에서 제가 처음으로 맡게 된 업무는 요리였습니다. 나중엔 공부를 더 해서 경력을 쌓기로 결심했죠.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고되긴 했지만 그래도 버텼습니다. 지금은 보건정보관리학 학위를 가지고 있죠.
2018년 1월, 저는 노마병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하는 소코토 노마 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위생 담당자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건강 부서와도 일하고 있죠. 제 이야기를 통해 노마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노마병과의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고 희망을 갖도록 격려합니다.
소코토 노마 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위생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는 물리카트. 2023년 5월. ©Fabrice Caterini/Inediz
2022년, 저는 노마병 옹호활동가로서의 여정을 통해 난생처음 나이지리아 밖으로 나가볼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에 초청받아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서 제 이야기를 공유할 기회가 주어졌죠. 나이지리아 보건부 장관도 그 자리에 참석해 나이지리아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소외열대질환(NTD) 목록에 노마병이 등재될 수 있도록 요청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목록에 노마병이 포함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노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노마병이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관련글 읽어보기]
제가 이렇게 노마병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는 노마병 환자의 90%가 몇 주 이내로 사망하는데 이건 우리가 예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마병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고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또한 최초의 노마병 생존자 단체[홈페이지 보러가기]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지원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생존자들도 직업을 갖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저마다 장기(長技)가 있고(There is ability in disability), 우리가 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