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는 3월 20일 발표된 성명을 통해 최근 수집된 데이터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다제내성결핵(MDR-TB)의 규모가 기존의 추정치를 크게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결핵 중에서도 더욱 치명적인 변종인 다제내성결핵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계적으로 다제내성결핵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접근성 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기가 초래된다. 기존의 진단도구와 약물은 구식이며 비용이 많이 들뿐 아니라, 결핵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지원 부족으로 말미암아 확산이 가속화된다. 세계적으로 결핵환자 중에 내성결핵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구는 5% 미만이며, 다제내성결핵 환자중 겨우 10%만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율은 유병률이 높은 자원부족 지역에서는 훨씬 낮을 것이다.
약제내성결핵을 조사한 지역에서는 전부 그 규모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온다. 현재 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국경없는의사회 회장, 우니 카루나카라(Unni Karunakara) 박사
카루나카라 박사는 “전세계 결핵 환자들 중 95%가 적절한 진단을 받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후원이 줄어들면서 다제내성결핵 발견 프로그램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다. 자금지원이 가장 필요한건 지금이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국경없는의사회의 프로젝트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확인된 결핵 데이터를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북부의 경우, 2011년 국경없는의사회가 치료한 환자 중 65%가 다제내성결핵으로 진단되었다. 이들 중 30~40%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처음으로 진료한 사람이다. 이러한 수치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약제내성이 기존 결핵 치료가 잘못 이루어진 경우에 생길 뿐 아니라, 약제내성결핵 그 자체로 전파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핵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국경없는의사회가 크와줄루 나탈(KwaZulu Natal)의 결핵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신속진단 테스트를 도입한 뒤로 월 결핵 진단 건수가 211% 증가하였다.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 중 13.2%가 가장 강력한 일차 치료약제인 리팜피신(rifampicin)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의사처방 없이 팔리는 약과 규제되지 않는 민간 의료부문 때문에 약제 내성의 발생을 부추기고 있다. 매년 약 99,000명이 다제내성결핵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겨우 1%만이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
미얀마에서는 매년 약 9,300명 건의 다제내성결핵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전부 겨우 300여 명의 환자만이 치료를 받았다. 11차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 글로벌 펀드(Global Fund)가 전부 취소되면서 미얀마에서 10,000명의 다제내성결핵 환자를 치료하기로 한 5개년 계획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결핵치료 확대 계획이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문제가 더욱 골치 아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제내성결핵 치료에는 대부분 20세기 중반 개발되어 부작용이 심각한 고독성 약제를 긴 기간(약 2년) 동안 복용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재정지원 감소, 특히 결핵 치료제 시장의 규모가 작고 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가 별로 없다는 점과 글로벌 펀드의 지원 축소 때문에 일부 약제의 가격은 범접할 수 없으리만치 높다. 더욱이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약제내성결핵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새로운 신속진단 도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싶어도 역시 자원부족으로 어려운 상태이다. 이들 도구를 활용하면 결핵을 몇 날 몇 주가 아니라 수 시간 안에 진단할 수 있으며, 이러한 도구를 활용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지역들은 바로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도구를 구할 수 없는 지역들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정부, 국제 기부자, 제약회사들에게 새로운 자금지원과 효과적이고 저렴한 진단도구 및 약제의 개발을 통해 약제내성결핵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청한다.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단 도구와 복용기간이 짧고 독성이 적은 약물이 필요하며, 아직까지는 아이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품이 없기에 아동용 약물도 개발되어야 한다. 의료진의 잘못으로 병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도 도입되어야 한다.
카루나카라 박사는 “이 치명적 질병을 막기 위해서는 신약, 새로운 연구, 새로운 프로그램, 국제 후원자와 정부의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 그제서야 더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더 이상 두 손 놓고 앉아 다제내성결핵의 위협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결핵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2위의 사망원인이며, 결핵 치료에 쓰이는 일차 항결핵약제에 내성을 보이는 사례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세계 결핵 환자 수는 약 1,200만 명으로 추산된다(2010년 기준).
다제내성결핵(MDR-TB)은 결핵의 한 변종으로 일차약제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결핵을 말한다. 다제내성결핵은 약 2년간 독성이 높은 약물을 사용해 치료하므로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약제내성결핵(DR-TB)이 생기는 경우는 대부분 치료제에 반응하는 결핵을 치료하는 도중 환자가 치료를 끝마치지 않거나, 약이 떨어지거나, 잘못된 복용량을 처방하거나, 부적절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저품질의 약을 공급받은 경우이다. 현재 보고되는 데이터에 따르면 다제내성결핵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 글로벌 펀드는 재원보충회의(replenishment conference)가 실망스럽게 끝이 난 뒤 심각한 재원부족에 직면하였을 뿐 아니라, 후원자들이 약속한 금액을 축소시키는 바람에 2011년 11월 11차 글로벌 펀드의 교부를 취소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11차 글로벌 펀드 교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014년까지 프로그램 확장을 위한 새로운 교부금이 집행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많은 국가들은 전염병 퇴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1차 글로벌 펀드 취소는 약제내성결핵 치료 프로그램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