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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결핵 환자 300명에게 희망 줄 새로운 경구약 치료

2022.11.04

벨라루스 국가 결핵 프로그램 전담 의사 나탈리아 야츠케비치가 벨라루스 민스크 소재 연구 센터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MSF/Alexandra Sadokova

치료 10일째가 되던 날 귀에 이상 증세가 느껴졌어요. 약이 청각신경에 영향을 준거죠. 주사를 맞는 건 정말 고통스러웠고 심지어 온몸에 물혹이 생겼습니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앉지도 못했어요.” _마리아(Maria) / 약제내성 결핵(DR-TB) 치료 프로그램 참여자

벨라루스는 지난 20년간 결핵 퇴치 분야에서 진전을 이뤄냈지만, 결핵 발생률 전 세계 상위 30위권의 고부담 국가다. 벨라루스의 결핵 환자 3명 중 1명은 가장 효과적인 약물로도 치료가 어려운 약제내성 변이 감염 환자다. 마리아가 받던 기존의 치료법은 최장 20개월 동안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주사를 맞아야 할 뿐 아니라 근육통부터 우울증, 영구적인 청력 손실까지 셀 수 없는 부작용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혁신적인 결핵 치료

지난 수십 년간 약제내성 결핵환자는 성공률도 낮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장기간 받아야만 했다. 다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7년 국경없는의사회가 획기적인 TB-PRACTECAL 임상시험을 통해 약제내성 결핵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를 실시하면서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임상시험으로 벨라루스, 남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 3개국의 환자가 고통스러운 주사제 대신 단기 경구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2022년 발표된 임상 결과는 전 세계 결핵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베다퀼린(bedaquilne), 프레토마니드(pretomanid), 리네졸리드(linezolid), 목시플록사신(moxifloxacin) 약제를 병용하는 새로운 BPaLM 치료 요법이 기존 약제내성 결핵 치료법보다 더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된 것이다. 

임상 결과 발표 후 세계보건기구(WHO)는 약제내성 결핵 치료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기존 치료법 대신 기간이 단축된 BPaLM 요법을 쓸 것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TB-PRACTECAL 임상시험에 최초로 등록한 약제내성 결핵 환자 중 한 명인 볼하(Volha)는 결핵 완치 판정을 받았다. ©MSF/Alexandra Sadokova

저는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쌍둥이를 낳고 광범위 약제내성 결핵 진단을 받았는데요.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이후 치료를 위해서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시험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을 감염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따로 지내야 했지만, 최대한 낙관적인 자세로 치료에 임했고, 긍정적인 마음과 가족의 응원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어요. 치료는 순조로웠습니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어요. 모든 치료 과정이 환자 중심으로 이뤄진 점이 좋았습니다. 병실 침대 머리맡에 ‘우리는 환자가 아니다. 아프지 않다. 회복 중이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문구를 걸어두고 매일 되새겼고, 다른 환자를 만날 때마다 말해줬어요” _ 볼하(Volha) / 민스크(Minsk) 출신 TB-PRACTECAL 참여자/약제내성 결핵 완치자 

볼하는 임상시험을 통해 결핵 완치 판정을 받고 세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매사에 긍정적이려고 노력했어요. 한 손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약을 먹어야 할 때면 약으로 토끼 모양을 만들곤 했죠.”_볼하(Volha) 

모두를 위한 혁신

국경없는의사회는 TB-PRACTECAL 임상시험 성료 이후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인 SMARRTT에 돌입했다. 리팜피신 내성 결핵환자에 6개월간 전면 경구약 투약 치료를 실시하는 선도적인 연구다. 
벨라루스 호흡기 및 결핵 연구 센터와 협력해 전국에서 SMARRTT 연구 참여자를 모집 중이며 이미 300명이 등록을 마쳤다. 

TB-PRACTECAL 임상시험은 민스크와 근교 지역의 환자만 등록할 수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전국 환자를 대상으로 확장되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도 치료할 수 있도록 각 지역의 약사에게 약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_ 나탈리아 야츠케비치 (Natalia Yatskevich) / SMARRTT 연구 담당자 및 벨라루스 국가 결핵 프로그램 전담 의사

마리아는 SMARRTT 연구에 참여한 약제내성 결핵 환자다.  ©MSF/Alexandra Sadokova

매일 꽝인 복권을 긁은 기분이었어요. 이제 더 이상 희망도 없고 곧 죽겠다고 생각했죠. 2년이라는 긴 시간의 치료가 실패로 끝난 후 SMARRTT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지난 2년간 제 삶을 모두 결핵 치료에 쏟아부었는데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치료받는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좀 더 일찍 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면 제 삶이 아주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마리아(Maria)/SMARRTT 연구에 참여한 약제내성 결핵 환자

결핵은 마리아와 가족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새 친구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힘들었음에도 마리아의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남편과 결혼한 지도 벌써 17년이 다 되어가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2015년에는 남편이 두개골 골절 사고를 당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했었죠. 회복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아주 힘든 시기였지만 서로를 다독이면서 잘 이겨냈어요. 이제는 남편 대신 제가 입원해서 입장이 바뀌었지만,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_마리아(Maria) 

SMARRTT 연구에 참여한 마리아가 한달 동안 복용해야하는 약 상자 ©MSF/Alexandra Sadokova

결핵 환자를 향한 편견

벨라루스처럼 결핵이 만연한 국가에서는 결핵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심각하다. 결핵에 걸리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가까운 지인이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제 친구 안야에게 결핵에 걸렸다고 말했더니 기겁해서 너 때문에 나까지 감염되면 어떡하냐고 묻더군요. 물론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안야는 대학 학위도 두 개나 있고 똑똑한 사람인데도 제가 결핵 환자라고 밝히자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어요.”_마리아(Maria) / 결핵 환자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누구나 결핵에 걸릴 수 있다는 게 현실인데 사람들은 잘 몰라요. 결핵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_리자(Liza, 가명) / SMARRTT 연구에 참여한 약제내성 결핵 환자

올해 20살인 리자(Liza,가명)는 약제내성 결핵 진단을 받고 SMARRTT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진단과 치료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했다.©MSF/Alexandra Sadokova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두 달을 눈물로 보냈어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죠. 그리곤 회사 건강검진에서 결핵 진단을 받았어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_리자(Liza, 가명) / SMARRTT 연구에 참여한 약제내성 결핵 환자

결핵 환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려면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결핵 증상이 눈에 띄지 않다 보니 사회의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한 벨라루스 문학 작품 때문에 사람들은 결핵에 걸리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수시로 기절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증상을 겪은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저는 요즘도 결핵 환자가 있냐고 놀라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그럴 때마다 아직도 결핵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답해주죠.”_ 볼하(Volha) / 결핵 완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