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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피난 중 다제내성 결핵을 극복한 부부 이야기

2019.10.28

샨(Shan)주 라시오(Lashio)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간판. 국경없는의사회는 2001년 샨 주에 첫 진료소를 열었고, 현재 1차 진료뿐 아니라 C형 간염, 결핵(약제내성 결핵 포함), HIV 치료를 제공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라시오와 무세(Muse)의 두 진료소 외에도 라시오와 시파우(Hsipaw) 교도소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하며, 샨 주의 오랜 분쟁으로 인한 실향민 발생 또는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대응역량도 갖추고 있다. ⓒScott Hamilton/MSF

미얀마 샨(Shan) 주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는 2015년 이후 처음으로 다제내성 결핵을 앓고 있던 환자 두 명을 치료했다. 이 두 환자는 부부로, 무력분쟁으로 피난을 떠난 후 다제내성 결핵에 걸렸고, 2년 가까이 치료를 위해 아이들과 집을 떠나야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미얀마의 분쟁 영향권 내 환자들이 직면하는 난관뿐 아니라, 벽지의 환자들이 특화된 치료가 부족해 겪는 어려움 또한 보여준다. 

샨 주는 미얀마군 탓마도(Tatmadaw)와 무장 비정부 소수민족집단 간의 분쟁뿐 아니라, 무장 소수민족집단 간 장기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8월 중순부터 재개된 분쟁으로 민간인 사망자와 약 8천명의 실향민이 발생했다.  9월에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샨 주 북부에 새롭게 형성된 실향민 캠프 내 수백 가구에게 비식품 구호물자를 배분했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은 인도주의단체들이 활동할 수 없는 지역에 위치해있다. 특화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피난을 겪으며 치료를 못 받게 되고 이는 건강에 매우 치명적이다. 아익 종(Aik Jong)과 아예 테(Aye Htwe)는 2017년 남산(Namhsan)구의 거주지에서 내몰린 후 5일 동안 매우 붐비는 사원에 갇혀있었다. 이 부부는2013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구금되어있던 기간 동안에는 약을 복용하지 못했다.

가족과 떨어져야 했던 치료과정

사원에서 풀려난 후 이들은 다른 피난처를 찾았고, 그러던 중 테는 체중이 급격히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라시오(Lashio)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로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다제내성 결핵(MDR-TB) 양성 진단을 받았다. 고향에는 다제내성 결핵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부부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다제내성 결핵 치료는 반드시 필요하며, 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매우 험한 과정이기에 많은 환자들이 치료과정 도중 포기하기도 하며, 완치된 환자는 매우 드물다. 치료는 약 2년간 지속되며 어지럼증, 구토, 메스꺼움, 청각 손상, 신기능 저하 등 상당한 부작용을 수반한다. 환자들은 매일 경구용 약물 혼합제를 복용해야 하며, 첫 6개월 동안은 일주일에 6일 매우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아야 한다.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의 다제내성 결핵환자들은 격리된 생활을 하며, 치료받는 동안 가족이나 지인의 방문은 극히 제한된다. 아익 종과 아예 테가 국경없는의사회가 생활비를 지원하는 라시오의 국경없는의사회 다제내성 결핵환자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세 자녀는 친척들에게 맡겨졌다. 

“처음에는 치료과정이 정말 힘들었지만 의료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많은 동기부여가 필요하진 않았어요. 치료가 매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었기 때문입니다.”_아예 테

아익 종과 아예 테는 완치됐지만, 가족과 재결합하고 농부로 일하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다제내성 결핵이 완치되어 정말 기뻐요. 엄청난 짐을 덜어낸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 다시 아이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가는 비용이 상당하거든요.”_아익 종

 

가까운 치료소의 부족

아익 종과 아예 테가 겪어야 했던 큰 사회적, 그리고 정서적 변화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면 비교적 경감되었을 것이다. 미얀마 보건체육부는 원칙적으로는 다제내성 결핵 치료를 지역단위까지 분산시켜 기초보건과 함께 제공하고자 하나, 아직까지 실천되지 않고 있다.

 “자원과 진단 기구가 부족해 아직도 많은 환자가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이 말은 외진 곳에 사는 이들은 가까이에 치료 받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치료를 받기 위해선 집, 일터,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코디네이터 미첼 산그마(Mitchell Sangma)

분산된 다제내성 결핵 치료가 부족한 미얀마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카친(Kachin) 주, 샨(Shan) 주와 양곤(Yangon)에서 결핵 치료를 제공하며 중 현재까지 다제내성 결핵 환자 229명을 치료했다. 

 

“치료는 육체적인 고통이었지만, 아이들과 떨어지는 건 정신적인 고통을 주었습니다. ”
최근 다제내성 결핵이 완치된 아익 종(Aik Jong/남) 과 아예 테 (Aye Htwe/여) 부부 인터뷰

아익 종(Aik Jong, 좌측), 아예 테(Aye Htwe,우측)와 아들 아웅(Aung). 이 부부는 2013년부터 미얀마 샨(Shan)주 라시오(Lashio)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았다.  ⓒScott Hamilton/MSF

 

아익 종 (남편)

"2017년 무장한 인원이 우리에게 집을 떠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인근에선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어요. 군인들은 우리에게 총을 겨누며 계속 다른 무장단체 소속이냐며 몰아붙였어요. 아이들과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인근 사원에서 5일 동안 억류되었습니다. 물과 식량이  부족했고, 군인들이 아무 것도 만지지 못하게 해서 2013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처방 받고 있던 항레트로바이러스 약을 복용할 수 없었어요. 상황을 봐가며 최대한 복용하려 했지만 여전히 복용시간을 놓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CD4 세포 수가 급격히 떨어졌고, 아마 그때 다제내성 결핵에 걸린 것 같습니다. 사원은 매우 붐볐고, 군인들이 계속 상대 무장단체들이 어디있는지 취조하면서, 몇몇 사람들을 고문까지 했어요. 전 계속 제가 민간인임을 설명해야 했어요. "

 

아예 테 (부인)

"마침내 풀려났지만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른 수도원으로 피신하기로 했어요. 7-8일 정도 머물렀는데, 점점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라시오로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아들 아웅 밍(Aung Ming)도 우리와 같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보살피고 싶어서 아이들도 데리고 갔어요. 

라시오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다제내성 결핵 양성판정을 받았어요. 부작용도 심하고 치료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서 겁이 났지만, 치료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이미 국경없는의사회를 잘 알고 있었고, 오랜 기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장점은 있었어요. 우리는 치료 프로그램을 잘 따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었죠. 가장 힘든 부분은 아이들과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료는 육체적인 고통이었지만, 아이들과 떨어지는 건 정신적인 고통을 주었습니다. 결국 아웅 밍은 제 사촌에게, 나머지 두 아이는 여동생에게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엔 치료가 정말 힘들었지만, 의료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치료과정 20개월 동안 거주지와 생활비를 지원해줬습니다. 수시로 간호사들이 방문해서 상태를 확인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도와주었어요. 사실 많은 동기부여가 필요하진 않았어요. 치료가 매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다른 두 아이는 못 본지 20개월 되었습니다.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아이들을 맡기고 떠날 때 딸은 6개월밖에 안됐었거든요.

이제 우리는 다른 문제를 직면했는데, 바로 차별입니다.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만, 학교에서 아웅 밍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교장은 아이들이 얼굴을 맞대고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 아들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감염 될 수 있으니 집에 있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라고 했어요. 우리 아들의 권리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차별이에요.”

아예 테 (Aye Htwe Jong)가 결핵 완치 환자를 위한 축하 행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의 ‘졸업’을 기념하는 기념품을 받고 있다. ⓒScott Hamilton/MSF

 

아익 종 (남편)

"지방 보건소 직원을 찾아가 이야기했어요. 우리 아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병을 옮기지 않을 거고,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요. 하지만 직원은 말도 안 된다며 우리 대신 나서길 거부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상위 부서에 가져가기로 했어요. 유일한 대안은 라시오에 있는 고아원에 아들을 보내는 건데, 그러면 아들과 또 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의 교육과 미래가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도 함께 해결책을 찾고 있어요. 이곳 의료활동 매니저인 시(Si) 박사가 도와주고 있어요.  다른 두 아이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보러 가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일단은 다제내성 결핵이 완치되어 다행이에요. 정말 큰 짐을 던 것 같아요. 이순간을 절대 잊지 못 할거예요. 완치를 축하해준 진료소도요. 

고향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