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병원에서 300 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형 폭탄이 터지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몇 분 안에 수 십 명의 환자가 응급실로 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누가 가장 급한 환자인지 빠르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파키스탄 북서쪽 키버 팍툰콱(Khyber Pakhtunkhwa) 지역 로워 디르(Lower Dir)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티머가라(Timergara) 병원의 무하메드 자허 (Muhammad Zaher) 박사가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지역인 로워 디르 (Lower Dir) 지역에서 파키스탄과 무장 반군 세력간 무력 충돌이 잦았다. 여전히 치안 상황은 불안하고 폭탄 공격, 총격, 그리고 암살이 매일 자행되고 있다.
이 지역은 도로 사정이 나쁘고 산악 지형이기 때문에 교통 사고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자허 박사는 “도로 상황은 최악이다. 조그만 밴에 25-30명이 타는 것은 예삿일이다. 만약 사고가 나면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기 쉽다”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09년부터 티머가라(Timegara) 중앙 병원을 지원하고 있다. 응급실에 신규 환자 분류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동시에 도착했을 때를 위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응급 환자 치료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새로운 환자 분류 방안에 따라 의료진은 주요한 활력 징후에 근거 해 환자의 치료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에 따라 환자를 분류 할 수 있게 됐다. 녹색으로 표시된 환자는 안정적이어서 몇 시간 뒤 치료를 받아도 괜찮고, 노란색을 받은 환자는 1시간 정도 대기 가능하다. 그러나 빨간색으로 분류된 환자는 생명에 위협을 받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치료해야 하며, 검은색은 이미 회생 불능으로 분류 된다. 빨간색을 받은 환자는 즉시 심폐소생실로 옮긴다. “이런 방식으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최대로 수용하고 최소한의 시간에 환자를 최대로 살릴 수 있다”라고 자허 박사가 밝혔다.
남아프리카 환자 분류 점수 (SATS, South African Triage Score)에 근거한 환자 분류법이 응급실에 도입돼 매일의 환자 관리가 용이해졌다. 병원에 도착한 후 환자는 혈압과 심장 박동 수 및 몸 상태를 검진 받는 등 초기 검사를 받는다. 2012년 들어 3월까지 12,162명의 환자가 분류 시스템을 통해 분류돼, 이 중 3,271명의 환자가 심폐소생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알리(Ali) 이야기 5살 알리는 친구랑 놀던 중 지붕 위 구멍에 빠져 5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 알리의 이웃은 “알리는 추락 후 의식을 잃었어요. 당시 집에 남자 어른이 없어서 알리 엄마가 저에게 도와 달라고 달려왔어요. 저는 즉각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라고 말했다. 티머가라(Timergara)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알리는 즉시 환자 분류 절차에 따라 심폐 소생실로 옮겨졌다. 초기 응급 치료를 받은 후 구체적인 검사를 받았다. “CT 스캔을 통해 오른쪽 두개골 골절을 발견했습니다. 다행히도 내부 출혈은 없었습니다. 최소 5~6 시간 동안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만약 어지러워하거나 토하거나 의식을 잃는다면 추가 치료를 실시해야만 했습니다.” 응급의인 토마스 폴 (Thomas Pols) 이 말했다. “이러한 부상 치료를 하루에 2-3건 정도 합니다. 지붕에서 아이가 떨어지는 건 이곳에서는 매우 빈번한 사건입니다. 어떤 경우는 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지붕 추락은 이 곳만의 공공 보건 문제로 예방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
로워 디르(Lower Dir) 지역에는 전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설이 부족한 상황인데, 로워 디르 전 지역에서 찾아온 환자를 대상으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료진들이 티머가라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실시하고 있다.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티머가라 병원으로 이송돼 오는데 몇몇의 경우 인근 어퍼 디르(Upper Dir)나 바쟈 (Bajaur) 지역 까지 환자를 보내기도 한다.
“동업자가 쏜 총에 맞았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산악 지역에 살고 있는데 도로 상태가 나쁘다. 사람들이 나를 들것에 실어 한 시간이나 걸어서 옮긴 후 다시 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사마 바테실 (Samar Bagh Tehsil) 병원으로 찾아 갔다. 정맥 주사를 통해 수액을 주입한 후 사마 바테실 병원에서 이곳 티머가라 병원으로 이송됐다”라고 티머가라 병원에서 다리에 박힌 총알과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안와(Anwar)가 말했다. 현재 그는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다.
안와의 삼촌은 “43 파운드 정도를 사마 바(Samar Bagh) 병원의 의사에게 빌렸다. 수술을 받는데 수술비가 들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술비가 무료여서 기뻤다. 만약 무료가 아니었으면 집을 팔거나 가축을 다 팔더라도 수술비를 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티머가라 병원의 응급실 진료, 응급 수술 및 산부인과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정신과 치료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진료는 모두 무료이다.
신규 프로그램 실시: 파키스탄 북동부 지역에 정신 보건 프로그램 지원파키스탄에서 정신 건강 서비스는 전무한 편이고 로워 디르(Lower Dir)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지역 인구는 120만 명이지만 정신과 의사는 거의 없는 상태인데, 국경없는의사회가 파악한 이 지역 정신과 의사는 딱 한 명뿐이다. 로워 디르의 불안정한 치안 상황이 많은 사람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민들은 폭력 사태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 뿐만 아니라 매일 받는 일상적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 체력이 바닥나고 있는 상황이다. 티머가라(Timergara) 응급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은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실상 정신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환자들 중 많은 수가 자살 시도 후 병원에 오기도 했고 많은 환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는 2012년 2월부터 티머가라 병원에서 정신건강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남녀 직원으로 이뤄진 정신건강 팀은 모자 보건실, 응급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이관된 환자들에 대해서 개인 혹은 그룹으로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티머가라 병원 여성 상담사 2명 중 한명인 사이다(Saida)는 “매일 평균 7명을 상담합니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이관된 여성 환자 중 많은 경우 아이를 잃거나, 유산, 자궁 적출 혹은 출산 후 우울증에 경험했습니다. 응급실에서는 가정문제, 사회 경제 문제 혹은 자살로 인한 정신과 환자가 많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자살을 시도한 환자들은 여자였습니다. 여성들은 가족 내에서 정신적 혹은 재정적인 지원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습니다.” 로워 디르 지역에서 정신 보건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 “사람들은 정신건강이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 입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질병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체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플 수 있다는 점을 전혀 모릅니다. 정신 상담을 해주기 보다는 약을 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환자들에게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프게 된 것이라고 이해 시키고 있습니다.”라고 사이다(Saida)는 말했다. 정신 보건에 대해서 일반적인 이해를 높이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에 대해서도 정신과 지원을 하고 있다. 사이다(Saida)는 “정신건강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찾아오는 환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후속 상담을 위해 재방문하는데 더욱 적극적인 여성 환자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도와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라고 밝혔다. 2012년 5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444건의 정신건강 상담을 실시하고 30 건의 그룹 정신과 치료 세션을 진행했다. |
국경없는의사회는 1986년부터 파키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다. 키버 팍툰콱 (Khyber Pakhtunkhwa) 지역에서는 티머가라 (Timergara)뿐만 아니라 다가이 (Dargai), 한구 (Hangu), 페샤와르 (Peshawar)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발로치스탄 (Balochistan) 주의 퀴에타 (Quetta), 쿠크락 (Kuchlak), 데라 무라드 자마리 (Dera Murad Jamali) 그리고 샤만 (Chaman)에서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인 쿠람 (Kurram)에서도 진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올해 말 신드흐(Sindh) 주의 카라치(Karachi)에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파키스탄 내 모든 활동은 전세계 개인 및 사기업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정부, 자선 기구, 정치 관련 단체, 군대의 지원은 받지 않고 있다.
* 환자 이름은 익명성 보장을 위해 모두 가명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