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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우리는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2013.11.20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의료 활동의 일환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라크 북부 도미즈 난민 캠프의 환자 수백 명에게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시리아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환자들, 또는 캠프에서 겪어야 하는 상황들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분쟁 발발 이전에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최근 격변에 휘말리면서 오랜 시간 약물 치료나 진료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도미즈 캠프의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활동은 주6일 운영된다. 네 명의 상담사로 구성된 팀이 매주 70-100건의 개별, 가족, 그룹 상담을 진행한다. 이들은 의사, 간호사, 현지 보건 단원들과 협력하여 환자를 진단하고 포괄적인 정신건강 치료를 제공한다.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인 헨리케 젤만(Henrike Zellmann) 박사는 지난 8월부터 도미즈 난민 캠프에서 활동해왔다. 젤만 박사는 이라크 심리학자 1명, 시리아 심리학자 2명과 팀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다. 캠프 내 심리 치료에 대한 니즈가 얼마나 증가하고 있는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젤만 박사에게 들어본다.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헨리케 젤만(Henrike Zellmann) 박사 (우측)

 
▲시리아 난민 아동이 그린 그림.
그림 속 국기에는 “사람들”이라고 적혀있다.

악화되는 난민들의 심리 상태

정신건강 차원에서 보면 도미즈(Domeez) 난민 캠프의 상황은 정말이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극도의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몇달만 버티면 상황이 종결되겠지,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나기는 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난민의 정신건강 상태는 극도로 취약합니다. 게다가 캠프에 도착하는 순간 맞닥뜨린 캠프의 생활환경,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분쟁에 대한 기억, 분쟁이 언제 끝날지, 또는 언젠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불확실성 등, 가뜩이나 취약한 정신상태의 급속한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계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생활을 하다 보면 심리 상태가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곳의 난민들은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들에게는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조만간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정신병과 같은 보다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난민들 사이에 만사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뤄야 하는 고충들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합니다. 물론 전쟁의 트라우마와 열악한 생활환경이 이러한 정신장애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정신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몇주 전,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한 여성이 진료소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열한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세 아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집안 사정이나 아이들의 상태가 어떤지도 몰랐고요.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다행히 생활여건이 괜찮고 이웃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그녀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고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설득할 겁니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오명이 이곳에서 특히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역사회의 연대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심리 문제

캠프 생활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정말이지 이 아이들이 어떤 일들을 헤쳐나가고 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이들이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소중한 하루하루가 그냥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캠프 내 교육시설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그래서 먼지구덩이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 부양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13-14세의 어린아이들이 일을 하느라 교육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아동 상담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겪는 반응이 정상적임을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반응은 수많은 또래 친구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 중의 하나가 야뇨증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는 부모에게도 힘든 일이 됩니다. 아이들이 당황하고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에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 10살 소년이 야뇨증 때문에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몇 개월 전에 이라크에 왔고 이 캠프에서 가족과 재회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겪고 있는 일은 정상적이라고 설명해주고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 조언해주었으며 전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아이가 안도하는 반응을 보여서 우리도 매우 기뻤습니다. 그저 야뇨증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수치심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

대부분의 경우 심리적 상처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팀은 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주요 활동 중의 하나는 그저 환자들에게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환자와 상담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증상을 경감시켜 궁극적으로 자신의 반응에 대한 통제력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문제로 가족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런 점에서 비밀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진정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환자들이 매우 화가 나고 마음에 심한 외상을 입은 상태로 진료소에 도착하기도 합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고 스트레스로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환자들에게 스스로를 표출하고, 자신들의 반응을 들여다보고, 자신들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즉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상담실의 문이 닫히면, 우리는 그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환자와 함께, 환자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습니다. 상처가 치유된다 하더라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에 더 잘 대처하고 다스릴 수 있는 법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