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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 “이제 우리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요. 모든게 사라졌어요”

2013.11.21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5개월 된 아기 니뇨 제임스 파데르노스(Niño James Padernos)의 울음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다. 벌써 이틀째 아기의 얼굴에는 붉은 열꽃이 피고 고열과 기침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니뇨의 어머니는 “이틀 전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열이 도통 내리지 않네요”라고 말한다. “열이 너무 높아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우리는 1시간 반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부아부아(Buabua) 마을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마을 근처에는 무료 보건소가 없거든요. 하나 있던 곳도 파괴되었고요. 이제 우리에겐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의사들은 니뇨가 폐렴 합병증을 동반한 뎅기열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뎅기열은 대부분의 열대 지역에서 흔한 질병이다.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는 캔이며 양동이, 컨테이너 등 크기에 상관없이 고여있는 물 웅덩이에 번식한다. 문제는 태풍이 휩쓸고 간 후 어디에나 이런 물 웅덩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니뇨의 어머니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태풍으로 마을에 산사태가 일어나서 우리는 부모님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니뇨가 물에 흠뻑 젖었는데 집안 살림이 다 젖어서 아기를 말리거나 감쌀 마른 옷가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태풍이 가장 먼저 상륙한 사마르 섬 동쪽 인구 4만5천의 기우안 시는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건물, 집, 나무, 농작물 등 마을의 모든 주요 생활터전이 황폐화되었다. 태풍 강타 후 니뇨의 가족은 무너진 집의 잔해로 얼기설기 만든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거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워 아이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자 이들은 무료 진료를 찾아 나서야 했다.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면 좋을지 여기저기 물어봤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제 아들인데 병원에 데려갈 돈이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기우안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무료 진료를 해준다면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니뇨는 파괴된 기우안 공공 종합병원 자리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세운 15개 병상의 신설 입원병동에 입원했다. 예전 종합병원은 지붕이 바람에 날아간 데다가 의료 장비며 물품이 모두 비에 젖어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은 산부인과 병동과 수술실을 비롯해 광범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현재까지 중증 탈수 증세를 보이고 있는 아동 두 명을 포함해 8명의 환자가 입원했다.

기우안에서 나흘 전 의료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설사 질환, 홍역, 기침, 콧물, 환부 감염 환자는 물론 교통사고 환자까지 보다 일상적인 환자들을 진료해왔다. 현재까지는 뎅기열 의심 환자는 2명뿐이지만 태풍 상륙 전에도 이 지역에서 뎅기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 추가 발병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