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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의 결핵 퇴치 프로그램, 한국 재단이 주는 고촌상 수상

2014.02.07

지난 1월 31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Stop TB Partnership) 총회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상을 하나 받았습니다. 바로 한국의 고촌재단이 주는 고촌상입니다. 이 상은 고촌재단이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과 공동 제정하여 결핵과 에이즈 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주는 상입니다. 올해로 8회째인 이번 고촌상에는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아이티의 게스키오센터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날 시상식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HIV/결핵 전문 의학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인 에릭 고메르 박사가 국경없는의사회를 대표해 상을 받았는데, 시상식장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사람은 국경없는의사회의 30년 베테랑 고메르 박사보다도 함께 참석한 20대 여성, 푸메자 티실리였습니다. 푸메자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바로 그녀가 국경없는의사회가 남아공 진행 중인 결핵 퇴치 시범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가 아주 어렵다는 광범위 약제 내성 결핵을 이겨내고 완치된 첫 번째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2010년에 푸메자 티실리는 케이프타운 기술 대학에서 공부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광범위 약제 내성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아 학업을 중단한 채 지역의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양한 기존 결핵 치료약에 내성이 있어서 치료하기가 어려운 푸메자의 결핵은 다스려지지 않았다.

저는 이전에 한 번도 결핵을 앓은 적이 없는데 아예 처음부터 많은 치료제에 내성이 있는 결핵에 걸렸어요. 믿을 수가 없었죠. 치료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러분은 상상하기도 어려우실 거예요. 저는 하루에 약을 20알씩 먹었어요. 모두 합치면 2만 알 정도죠. 모든 약이 저마다 다른 부작용이 있는데, 저한테는 최악의 부작용이 일어났어요.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것이죠. 약제 내성 결핵 치료에 쓰이는 주사약 때문에 일어난 부작용인데, 치료를 받은 초반에 그 주사를 6개월 동안 매일 맞았어요.

푸메자와 국경없는의사회 결핵 전문의 제니퍼 휴스

그러던 푸메자는 국경없는의사회 결핵 프로그램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2년만인 지난해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제가 완치된 건 기적이에요. 지금 제가 살아있는 이유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리네졸리드라는 약을 추가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약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얼마 안돼요. 공공 병원에서는 리네졸리드가 너무 비싸다고 말해요. 그래서 운이 좋은 소수만이 쓸 수 있어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25년간 결핵 퇴치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계속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약제 내성 결핵 치료를 시작해서, 이제는 세계 여러 곳에서 약제 내성 결핵 치료를 제공하는 주요 NGO 단체가 되었다. 

이번 고촌상 후보로 국경없는의사회를 추천했던 것은 뉴욕의 독립 연구 단체 트리트먼트 액션그룹(www.treatmentactiongroup.org)인데, 추천서에서 국경없는의사회를 추천한 배경을 이렇게 썼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위기 상황에서 살고 있는 결핵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결핵 퇴치를 위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활동으로도 세계 결핵 치료, 특히 약제내성  결핵 치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2012년에만 봐도 국경없는의사회는 세계 30개 국에서 결핵 환자 약 2만 9000명을 치료했는데, 특히 그중 약제 내성 결핵 환자는 1780여 명이었다. WHO의 2012년 세계 결핵 보고서(Global Tuberculosis Report)에 따르면 2012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은 약제 내성 결핵 환자 수가 불과 4만 7188명인 점을 고려할 때, 국경없는의사회의 결핵 퇴치 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결핵 활동가들을 대신하여 수상을 한 에릭 고메르 박사는 수상 기념 연설에서, 결핵이 치료 가능한 질병임에도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약제 내성 결핵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 같은 분쟁 지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크게 발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세계보건기구 조사를 보면 전 세계 약제 내성 결핵 환자는 약 45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 단 17퍼센트만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양질의 결핵 치료를 제공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내전이 벌어지지 않은 곳에서조차 일부 결핵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다제 내성 결핵, 광범위 약제 내성 결핵은 결핵 중에서도 진단과 치료가 가장 힘듭니다.” 

2013년 8월, 남아공 칼리처의 리조 노반다 결핵 치료 센터에서 푸메자의 완치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그렇다면 푸메자가 광범위 약제 내성 결핵을 떨쳐낼 수 있게 해준 약인 리네졸리드가 남아공에서 쉽게 사용될 수 없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 리네졸리드는 가격이 비싸고, 훨씬 저렴한 복제약이 특허권의 제약으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 고메르 박사는 수상 기념 연설에서 리네졸리드가 결핵 치료에 더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푸메자가 완치된 것은 국경없는의사회 시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처방된 고강도 항생제 리네졸리드 덕분입니다. 매년 약제 내성 결핵 진단을 받는 사람이 1만 명 이상인 남아공에서 리네졸리드를 결핵 치료제로 쓸 수 있다면 대단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품질 승인을 받은 리네졸리드 복제약 1정의 가격이 남아공 돈으로는 10랜드(약 965원)에 불과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보건부는 무려 28배의 금액으로 리네졸리드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을 2년 동안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49만3000랜드(약 4760만원)에 이릅니다. ”

푸메자는 비록 청력을 완전히 잃었어도 결핵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결핵 환자, 특히 약제 내성 결핵 환자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약제 내성 결핵은 유행병의 단계에 도달했지만, 우리는 이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베다퀼린, 델라마니드, 수테졸리드, 리네졸리드 같은 신약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약제내성 결핵 치료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을 HIV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전략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