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정부군과 비정부 무장 단체들이 벌인 분쟁으로 지금까지 170만여 명이 피난민이 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폭력의 발생지인 보르노 주, 그리고 요베 주의 수도 다마투루 등지에서 시설 10곳을 운영해 1차 • 2차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도망친 여성들
나이지리아 카치나 출신의 알티네는 카메룬 국경에 가까운 풀카 시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조산사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캠프 사람 대다수는 여성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은 주로 산부인과 합병증이 있는 12세~18세 여성들이죠. 산부인과 병동에 한 주 동안 50명이 입원할 때도 있어요. 임신 중에 문제가 있는 여성들도 있고, 출산 후에 병이 생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실향민뿐 아니라 풀카 현지 사람들도 치료합니다. 실향민들은 납치, 강제 결혼,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거기다가 정신적 충격까지 받아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성 매개 감염병에 걸린 환자들도 치료하고 있습니다.
실향민 대부분은 식량이나 옷이 거의 없는 채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 중에는 아직 터놓고 자기 얘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분들에게 억지로 얘기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죠. 그분들은 사랑하는 식구들을 잃어버리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분들이에요.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지원했는데 그분들이 미소를 되찾고 다시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뻐요.
사라진 일상
인근 키라와 마을에서 온 판타(45)는 현재 풀카에서 16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떠나기 전에는 소를 많이 길러서 우유를 얻을 수 있었어요. 아이들 중 몇몇은 학교에 다녔고, 다른 아이들은 농사일을 거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반란군이 쳐들어와서 소를 다 끌고 갔어요.
남편은 3년 전에 떠났어요. (정부)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서 남자들을 데려갔거든요. 친척 말로는 남편이 죽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알 수는 없어요. 마을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서 저는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군의 도움을 받아 풀카 시로 온 거예요. 여기서 재혼을 해서 아이 셋을 더 얻었어요. 그중 둘은 쌍둥이예요. 큰 애들은 나이지리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몇몇은 라고스(나이지리아 최대 도시)에 살고 있어요.
우리 가족은 풀카에 집이 있어요. 제가 카드(필수품을 배급받는 데 필요한 카드) 둔 곳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식량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최근 몇 달간 정말 살기가 어려웠고, 배가 아파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찾아왔어요.
지나간 날들을 생각할 때면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게 되면서 갑자기 머리가 아파요. 전에는 귀금속이며 가구가 다 있었는데 … 지금은 방수포 안에서 자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낙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언젠가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숲 속에서의 삶
31세의 테니손은 혼자 아이를 키운다. 열네 살 첫째부터 막내(생후 11개월) 야하야에 이르기까지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테니손은 원래 그워자에 살았다. 어느 날, 마을 바로 밖에서 농사를 짓던 테니손은 비정부 무장 단체들이 통제하는 땅에 갇히게 되었다. 이후 테니손은 3년간 삼비사 숲에서 지내다가 5월 중순 그곳에서 탈출해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농사일을 하러 나갔다가 숲에 갇혔어요. 제 남편은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농부였고, 우리가 사는 곳은 주민이 5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고혈압이 있던 남편은 넉 달 전에 숨을 거뒀어요. 삼비사 숲에서는 진찰받을 데도 마땅치 않았고 약도 구할 수 없었거든요. 그곳에는 파라세타몰 같은 기본 약을 파는 조그만 가게밖에 없었어요.
제 남편은 이틀을 앓다가 갑자기 숨을 거뒀어요. 저는 남편 시신을 나무 아래 눕혔어요. 군이 벌인 폭격 때문에 민가들도 피해를 입어서 우리도 머물 데가 없었거든요. 군인들은 수풀 속에 있는 사람은 전부 보코하람 편이라고 생각해서 집들을 다 불태웠어요. 거기 있는 동안 너무 힘들었고 우리는 자주 굶주렸어요. 굶주려 죽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이들은 홍역에 걸렸어요.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우린 수풀로 가서 채소를 따먹고 지냈어요. 물을 길을 수 있는 데는 한 군데밖에 없었어요.
어느 날 밤중에 숲에서 나와 그워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걸어갔어요. 그워자까지는 너무도 먼 거리였어요. 제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까지 가는데 12시간이나 걸렸거든요. 그냥 제 감을 믿고 집까지 찾아갔죠. 실향민 캠프에서 온 사람들이 옷을 좀 주더라고요. 저는 지금 돈도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대피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과연 언제 천막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