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 진데르(Zinder) 지역 남부에 위치한 마가리아(Magaria) 보건 구역의 아이들. 마가리아는 나이지리아 국경과 맞닿은 지역이다. © Mack Alix Mushitsi/MSF
작년 니제르에서는 말라리아 유행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욱 오래, 심각한 규모로 지속됐다. 우기가 길어지면서 집중호우가 홍수를 유발하고, 매개 모기가 번식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며 말라리아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국경없는의사회는 니제르 보건 당국과 협력해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니제르 진데르(Zinder) 지역의 마가리아(Magaria)는 10월의 이른 아침인데도 햇빛이 뜨겁다. 수확철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른 시간에도 이미 밭으로 향하고 있지만, 살리수(Salissou)는 마을에 ‘진료실’을 열었다. 매트를 깔고 하얀 트렁크 가방에서 진료 도구를 꺼냈다. 살리수는 매일 아침 일찍 밭일을 마친 후 이곳에서 마을 아이들을 진료한다. 짐을 풀기도 전에 첫 환자가 왔다.
살리수는 가자비(Gazabi) 마을 주민들이 뽑은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이다. 예전에는 마을 아이들이 말라리아나 설사, 흉부 감염 등의 질병에 걸리면 부모가 아이를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보건소에 데려가기 위해 9km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아니면 전통 치료사를 찾거나,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두 명의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이 가자비 마을의 5세 미만 아동 500 여명을 대상으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 관리자인 아다무(Adamou)와 마을 보건 담당관 살리수가 환자 치료 기록을 보고 있다. 아다무는 살리수의 질문에 답해주고, 의약품 및 말라리아 진단키트 필요 수량 파악을 돕는다. © Mack Alix Mushitsi/MSF
“바쁜 시기에는 하루 20명 이상의 아이들을 봅니다. 대부분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들입니다.”
살리수가 4세 여아 샤잘리(Chazali)의 체온을 재며 말했다. 샤잘리의 엄마가 이곳으로 아이를 데려왔다. 몇 분 후, 체온계가 울렸다. 39.5도였다. 살리수는 가방에 손을 뻗어 말라리아 속성 진단키트를 꺼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살리수는 샤잘리의 팔 윗부분 둘레를 재어 아이의 영양 상태도 확인했다.
10분 후 속성 진단 검사결과가 나왔다. 말라리아 양성이었다. 살리수는 가방을 열어 노란 알약을 꺼냈다. 앞으로 치료가 끝날 때까지 보호자가 직접 약을 줘야 하기 때문에 살리수는 직접 약 한 알을 꺼내 복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살리수는 잘게 빻은 항말라리아제를 물에 타 아이에게 먹였다. 진료소 앞에는 벌써 14명의 아이들이 줄을 섰다.
호흡기 감염 치료를 위한 항생제를 들고 있는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 © Mack Alix Mushitsi/MSF
말라리아는 진데르를 포함해 일부 니제르 남부 지역의 풍토병이다. 니제르 보건 당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니제르 전체 말라리아 환자 중 17%가 진데르에서 나왔다.
니제르 정부의 지역사회 보건 정책의 일환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2019년 마가리아에서 지역사회 보건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4개 행정구역의 총 인구는 마가리아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이 프로젝트는 외딴 마을에 사는 5세 미만 아동의 기초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강화하여 말라리아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말라리아와의 싸움을 이어온 지난 몇 년 동안 꽤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저하된 지역이 있고, 보건소가 있다고 해도 운영이 원활하지 않으며, 의약품이나 기타 필수품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조르주 토나무(Georges Tonamou) 박사 /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코디네이터
촌각을 다투는 싸움
마을 주민들이 보건 인식 제고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 Mack Alix Mushitsi/MSF
2020년 9월 말라리아 유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을 찾아온 아동 중 절반 이상이 말라리아 확진을 받았다.
“촌각을 다투는 싸움입니다.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은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수록 생존 확률이 올라갑니다. 안타깝게도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마가리아 소아 병동에서 보는 환자 중에는 병원을 찾는 시점이 너무 늦어 위중한 상태의 아동이 많습니다.” _조르쥬 토나무 박사 /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코디네이터
국경없는의사회가 2005년부터 지원하고 있는 마가리아 소아 병동은 환자 이송을 위한 지역 내 위탁 센터다. 작년 한 해, 입원치료가 필요한 중증 말라리아 아동 환자 9,296명이 병동에 입원했다. 대부분 니제르 전역의 분산화된 의료 시스템을 통해 마가리아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동의 상태가 위중해 상급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 각 지역의 보건 담당관이 환자를 가장 가까운 보건소로 이송하고, 그 중 더욱 증세가 심각한 환자는 지역 병원으로 다시 이송합니다.” _ 조르쥬 토나무 박사 /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코디네이터
국경없는의사회는 여러 보건소에 구급차를 지원해 무상으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급차가 없으면 환자가 직접 비용을 내고 오토바이나 수레로 이동해야 하는데,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전 세계 최취약층의 약 95%가 외곽 지역에 살기 때문에 이동이 어렵다.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의 역할
마을 주민들이 보건 인식 제고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 Mack Alix Mushitsi/MSF
“마을 사람들이 보건 담당관을 신뢰하는 이유는 우리가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훈련 받는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_살리수 / 지역 보건 담당관
국경없는의사회는 니제르 보건부와 협력해 현재까지 278명의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을 교육했다. 교육은 열흘간 진행되는데, 이 기간 동안 보건 담당관은 말라리아, 설사, 흉부 감염 등 흔한 소아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까운 보건소로 즉시 이송이 필요한 위험 증상에 대해서도 익힌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또한 교육이 끝난 후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에게 항말라리아제와 보건 상담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살리수는 두 명의 멘토가 있는데, 한 명은 지역 보건소의 수간호사이고 다른 한 명은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말릭(Malik)이다. 말릭은 정기적으로 살리수를 만나 환자에 대해 논의하거나 활동 기록대장을 확인하고, 살리수가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답해주며, 의약품이나 기타 도구의 필요 수량 파악을 돕는다.
살리수는 무보수로 활동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한 가구당 약 3kg의 잡곡을 모아 살리수에게 선물했다. 마을 대표는 두 보건 담당관을 위해 마을에 상담 공간을 마련해주고, 살리수가 환자를 보는 동안 살리수 대신 밭에서 일할 인력을 지원했다.
“제가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_살리수 / 지역 보건 담당관
국경없는의사회는 1985년 니제르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공공 의료 시스템을 지원해 말라리아, 콜레라, 홍역, 뇌수막염과 같은 전염병에 대응했다. 현재 니제르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아가데즈(Agadez), 디파(Diffa), 틸라베리(Tillabéry), 마라디(Maradi), 진데르, 마가리아와 니아메(Niamey)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20년 국경없는의사회는 니제르 전역의 분산화된 의료 시스템을 통해 마가리아 보건 구역에서 23만 여명의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했다. 이중 절반이 5세 미만 아동이었다. 이들은 병원에서 치료 받거나,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의 도움을 받았다. 말라리아 유행 지역, 국경없는의사회가 설치한 관찰 센터, 또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통합 보건 센터 등에서 치료가 이루어졌다. 2019년 5월부터 2020년 말까지 지역사회 보건 담당관들은 약 16만 명의 아동을 치료했는데, 이중 60%가 말라리아 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