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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최악의 인도적 재앙”을 목격한 임상심리사 이야기

2024.06.05

시드니에 거주하는 임상심리사 스칼렛 웡(Scarlett Wong)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녀에게는 이번이 팔레스타인에서의 두 번째 파견 활동이었는데, 이전에는 우간다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튀르키예에서 지진 대응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이 목격했던 것 중 “최악의 인도적 재앙”이라는 가자지구에서 3주간 활동하며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문답 형식으로 전한다.

가자지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로 근무한 스칼렛 웡. 2024년 3월. ©Scarlett Wong

가자지구에 도착한 이래 보고 느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드론의 감시 아래 놓여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엉성하게 지어진 임시 거처 위를 맴도는 최첨단 드론 아래 6개월 전 집을 떠나올 때 신었던 신발이 이제 너무 작아져 맨발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대비를 이루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가자지구 아이들은 부푼 희망과 깊은 슬픔을 모두 자아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이들이 손수 만든 형형색색의 연 수십 개가 하늘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죠.... 바로 그 옆에는 연막탄과 총격을 퍼붓는 비행기들이 있고요.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큰 아이들이 슬픔에 잠긴 부모와 형제들을 뒤로한 채 떠나온 사연이 너무도 많습니다.

 

팔레스타인 현지 동료들은 매일 출근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민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50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북적이는 임시 텐트에서 생활하며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만, 일부는 포격과 폭격을 피해 집에서 탈출할 때 입었던 옷이 가진 전부입니다. 이들은 매일 밤낮으로 탱크, 미사일, 쿼드콥터, 드론, 아파치 헬리콥터 사격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일터로 향해 할 일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을 찾아온 모든 아동, 남성, 여성들에게 헌신과 친절을 보이는 동료들을 보면서 저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죠.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충격적이었나요?

보호자 없이 고아가 된 아동들의 숫자요. 보고된 바에 따르면 약 17,000명의 아동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라파는 사람들로 꽉 차 있어 해당 아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할 안전한 공간이 없습니다. 게다가 자원, 식량, 물, 전기, 혹은 이 아이들을 돌봐 줄 보모들도 충분하지 않죠.

가자지구 아동들이 물통이 담긴 수레를 끌고 텐트로 향하고 있다. 2024년 1월. ©MSF

또한 피난처를 찾아 비좁은 라파 지역으로 이주한 인구의 밀도도 상당합니다. 수십만 개의 텐트가 비, 바람, 추위에 노출된 채 사생활 보호와 식량, 물, 전기에 대한 접근성도 거의 없는 상황에 놓여있죠. 이는 가자지구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흔치 않은 일입니다. 주민들은 보통 우리같이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살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부모들은 일하러 가는 것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텐트에서 거주하며 학교나 일터에도 가지 못하고 식량과 거처도 없는 채로 지내고 있죠. 두려움 속에서 불가피하게 느껴지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삶은 사실상 멈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매일 밤 많은 부모들이 이른 새벽에 다시 들려오는 포격과 폭격 소리에 울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군이 라파에 대한 군사적 습격을 계속 이어간다면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을 겁니다.

그곳에서 가장 시급한 인도적 수요는 무엇인가요?

안전이요. 민간인과 구호 활동가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원 활동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식량을 안전하게 배급하거나 물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죠. 예측 불가한 무차별적 포격과 폭격 속에서 대피처는 무용지물이 되고요. 가자지구 주민 전체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그들이 목격하고 겪은 일들의 잔상이 뇌리에 박혀 고통받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러한 상황에 개입하거나 공격을 중단시킬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문당한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친구들의 신체 일부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걸 목격한 사람들, 슬픔에 잠긴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만 해도 한 어머니가 몇 년 전 자신의 아이 하나를 잃고 지난달 또다시 8개월짜리 아들을 포격으로 잃었던 사연을 들려주었죠. 그녀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 정신없이 아들을 찾다가 이내 아들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곤 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제 품은 이제 텅 비었습니다”라고 말했죠.

 

물론 가자지구 전역에는 식량, 물, 거처 등 다른 수요들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영양실조’ 사례를 목격하고 있는데,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을 이 한 단어로 축약하기에는 부적절해 보입니다. 이는 가자지구에서 전례 없던 일이며 국경없는의사회는 영양실조 치료를 위해 긴급히 인력을 훈련하고 동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주민이 먹을 것을 찾아 잔해 속을 뒤지고 있는 모습. 2023년 10월. ©MSF

가자지구에서 목격한 상황은 이전의 인도적 구호 활동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른가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자지구 상황은 제가 본 것 중 최악의 인도적 재앙입니다. 다른 인도적 상황의 경우, 사람들이 피난할 수 있고 민간인의 생명이 무엇보다 우선시됩니다. 다른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대개 이렇게까지 고의적이고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굶주림을 당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다수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해되고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은 본 적이 없습니다.

 

가자지구에서는 병원이 표적이 됩니다. 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구급차 운전사, 인도적 구호 활동가, 환자들이 살해되고요. 제가 겪은 상황 중 구명 지원과 도움을 전할 수 있는 곳이 몇 분 거리에 있지만 거부된 곳은 가자지구가 유일합니다.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알 마와시(Al-Mawasi) 진료소 외부 전경. 2024년 3월. ©Scarlett Wong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국경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외출하고, 학교와 직장에 다니며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동네 전체가 파괴되고, 민간 인프라가 손상되고, 주민들이 인위적인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평화로운 삶과 우리가 누리고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똑같이 원합니다. 그들은 친구 혹은 가족들과 밥을 먹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자지구의 문해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좋은 삶과 미래를 꿈꿉니다.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 교사, 간호사, 소규모 자영업자, 변호사, 조산사, 축구팬, 예술가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국제사회 전체가 이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민간인, 병원, 의료진들을 위한 휴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국제법과 국제 질서의 정당성에 우리가 과연 희망, 믿음, 기대를 걸어도 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