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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도움 청할 곳 없는 임산부들”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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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 왔을 때 저는 임신 7개월이었습니다. 고향 마을의 가족과 친척들은 거의 다 죽었고 저는 너무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몇시간을 걸어서 레바논 국경을 넘어야만 했는데 중간에 하혈을 시작했습니다. 유산하는 건 아닐지 두려웠습니다.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난민 마리암(Maryam, 18세)

국경없는의사회는 2013년 4월 레바논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시리아 난민들의 주요 유입 지점인 베카(Bekaa) 계곡에서 난민들의 니즈(needs)에 부응하고자 임신 및 출산 건강 프로젝트를 개설했다. 해당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조산사 마지 미들턴(Marjie Middleton)은 “많은 여성들이 가족도 남편도 없이 홀로 이곳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고향에 두고 온 경우도 있지만 전쟁으로 잃은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미들턴 조산사는 “많은 임산부들은 임신 기간 단 한 번도 의사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검진을 받을 방법이 없었으니 태아의 건강 상태도 알 수가 없고, 정서적으로도 극도로 불안한 상태를 보입니다. 정서적 스트레스와 물리적 스트레스가 겹치면 임신에 아주 위험합니다”라고 이어 말했다.

저렴하면서도 안전한 분만 환경 부족

 

새로 도착한 나라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난민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도움을 청하기란 쉽지 않다. 미들턴 조산사는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될지 모르는 임산부들이 많다면서, “텐트에서 홀로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제가 조산사이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홀로 겁에 질린 채 출산한다는 것이 산모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우 힘듭니다”라고 전했다.

병원비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레바논 여성에게 조차도 임산부 검진이 매우 비싸다. 미들턴 조산사는 “의사를 만나서 비타민제를 받아오는 것만 해도 교통비 포함 20달러 정도가 필요한데, 이는 일용직 근로자의 주급의 절반이 넘는 큰 돈”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유엔난민기구(UNHCR)는 시리아 난민에게 등록여부에 상관없이 출산 비용의 75%를 부담하고 있다. 이전에는 전액을 보전해주었지만 자금 부족으로 최근 들어서 75%로 지원 규모를 축소했다. 하지만 그 25%조차도 대부분의 난민들의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더욱이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을 받아 출산이 가능한 병원은 베카 계곡 지역에 6곳에 불과하다.

자연분만의 경우 50달러, 제왕절개는 2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미들턴 조산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안 될 경우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아니면 난민 카드를 압수당하는데 난민 카드 압수는 곧 병원비를 갚을 때까지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 임산부들은 임신 기간 중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임신부 건강과 출산 지원 외에도
가족계획을 돕고 있다.

임산부 위협하는 열악한 생활환경

숙련된 조산사의 도움 없이 집에서 출산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난민들은 매우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비좁고 종종 비위생적이기까지 한 환경은 임산부에게는 최악이다. 수성 설사와 같은 증세도 흔하게 나타난다. 미들턴 조산사는 “생식기 감염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상당 부분 임신 기간 진료를 전혀 받지 못하는 데다가 씻거나 위생시설을 사용하기도 어려운 환경이 원인입니다. 실제로 조산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이러한 감염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미들턴 조산사는 조산사 “많은 난민 여성들이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태아의 성장이 어려워지고 여성들이 임신 기간 건강을 유지하기도 힘듭니다. 영양실조 상태로 태어난 신생아들도 많이 봤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는 임신 기간 네 번의 정기 검진을 제공하고, 우려되는 점이 있거나 합병증이 나타나는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무료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숙련된 조산사를 통해 임산부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에도 여성들이 위험 증상을 인지하고 출산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육을 통해 레바논에 유입된 임산부 난민들이 진통이 시작되거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어디를 찾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들턴 조산사는 “실제 진통이 시작된 후에야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는 여성들을 봐왔습니다. 우리도 응급상황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이 곳에서 출산을 하라고 권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85% 정도는 정상분만을 한다고는 하지만 추가 치료가 필요한 합병증이 있는 경우 병원이 훨씬 안전한 환경”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출산 후 관리 및 필요에 따른 가족계획

출산 후에도 신생아와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출산 후 관리 및 가족계획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미들턴 조산사는 “출산 후 첫 주에 다시 와서 검진을 받고, 이어서 6주 후에 최종 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원하는 경우 피임을 시작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여성도 많지만 더 이상 임신을 원치 않는 여성도 많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동안만큼은 임신을 피하고 싶은 난민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가족계획 서비스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이에 대응하고 있다.

“한동안은 남편도 저도 아이를 더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시리아 상황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레바논 생활도 너무 불안합니다.” 생후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피임약을 얻으러 발벡(Baalbeck)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은 마리암이 말했다.

시리아에서 탈출해 나오는 동안, 혹은 레바논에 머무는 동안 정보 부족이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피임을 할 수 없었던 여성들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감염, 성병, 기타 여성 관련 보건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난민 여성들을 위한 일반 여성 보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