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남수단 나시르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산부인과 병동을 운영한 지 3개월경, 산파인 패트리샤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나시르에서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아래는 당시 병원에 있던 한 산모에 관해 패트리샤가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그야말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본 것 같아요. 인공호흡이 필요한 아기, 유산 후 하혈을 하는 여성, 출산 중에 다른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여성. 하지만 모두들 치료를 받고 상태가 좋아졌죠.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진짜 다 본 것 같다.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과연 있을까......’라고 생각했죠.
바로 그 때 사건이 터졌습니다. 교전이 점점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는 거예요. 15분 안에 짐을 챙겨서 배 앞으로 모여야 했어요. 팀 리더, 의사, 간호사, 물류 담당자로 이루어진 팀은 뒤에 남아서 남수단 직원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모든 환자들이 퇴원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했답니다. 정신 없이 짐을 쌌어요. 심장이 쿵쾅거렸죠...... 우리가 이렇게 떠나는구나 싶었어요.
해질녘 즈음, 배들은 강가를 떠났고 우리는 소바트 강을 지났어요. 여러 마을들을 지나는데, 하나 같이 전기도 없고, 그저 조용하고 어두웠어요. 우리는 ‘지그미르’라는 마을에 도착해 그 곳에서 머무를 수 있었어요. 거기서는 또 다른 단체가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틀 지나서 위성 전화기로 전화가 한 통 왔어요. 나시르에 있는 우리 병원에 한 산모가 찾아 왔는데, 그 곳에 남아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제게 조언을 구하는 전화였어요. 산모가 진통을 겪고 있고, 격렬한 발작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정보가 더 필요했죠. 진통이 시작된 지는 얼마나 됐는지, 발작을 보인 것은 얼마나 됐는지, 산모의 혈압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을 알아야 했죠.
병원에 있던 모든 약과 물품들은 다 포장을 해버린 상태였어요. 혈압 측정기는 저장용 박스에 있어서 누군가 뒤져봐야 했죠. 전화로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니, 산모는 현재 심각한 형태의 자간전증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렇다면 정말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죠. 황산마그네슘을 처방하라고 권했어요. 정확한 복용량이 프로토콜에 적혀 있는데, 과연 그들이 프로토콜을 가지고 있었을지. 그곳 의료진들은 패혈증도 의심하면서 산모가 몇 분 안에 호흡 정지로 괴로워할 것이라고 예상했죠. 인공호흡 장치도 다 싸놓은 상태라서 의료진에게는 곧바로 쓸 수 있는 인공 호흡기도 없었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외과의사와 저는 여기 있고, 환자는 나시르에 있었으니 말이에요. 시간이 촉박했죠. 결국 우리는 나시르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배에 올라 탔어요. 한낮이었어요.
사람과 집기류를 가득 실은 배들은 우리를 태우고 반대 방향으로 향했어요.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아래 한 시간 정도 이동해서 강가에 다다랐어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저를 마중 나온 간호사를 만났어요. 산모가 아이를 낳았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고 전해주었어요. 병원에 가봤는데, 정말 그렇게 병원이 텅 빈 것은 처음 보았답니다. 환자도 의료진도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죠.
분만실은 어두웠어요. 여기저기 의료물자들이 흩어져 있었고요. 피곤해 보이던 의사는 제가 어서 일을 맡아주기를 바랐죠. 저는 장갑을 끼고 산모를 살펴보러 갔어요. 여전히 멍하게 있었기는 했지만, 산모의 상태는 안정을 찾은 듯했어요. 물에 적신 스폰지로 산모 몸을 닦아주고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었죠. 아기는 항생제가 필요하고, 산모는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감염과 발작의 위험을 막아줄 약이 필요하고, 저는 산모의 심박수와 혈압을 체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정맥주사와 황산마그네슘을 준비하는 동안 산모가 또 발작을 했어요. 발작이 너무 격렬해서 얼마 동안은 주사를 놓을 수도 없었고, 약을 먹일 수도 없었어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인데 그렇게 나시르의 빈 병원에 있었던 거예요. 아기에게도 정맥주사와 항생제를 놓아야 했어요. 정말 할 일이 많았답니다.
아기에게 줄 약의 복용량을 정확히 재고 나서 약을 주고 있는데, 우리의 남수단 팀원 한 명이 병원에 도착해서 제게 말했어요. “패트리샤, 지금 나가야 돼요! 최전선이 이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어요!” 팀 리더도 라디오를 통해 메시지를 전했죠. 즉시 병원을 떠나야만 했어요. 나시르 상황이 너무 불안정해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다시 대피를 해야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환자들을 모두 데리고 가야 했죠.
서둘러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겨서 트럭 뒤에 쌓았어요. 배 안에서 환자는 정맥주사 2개를 꽂은 채 들것에 누워 있었죠. 하나는 발작 방지 약물을 투여하는 주사였고, 하나는 포도당 주사였어요. 얼마 동안 산모가 전혀 먹지를 못했거든요. 남수단 현지 팀원들은 우리와 함께 대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이 혼란한 상황 속에 남아 있는 거죠. 그들과 가족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배에 올라타서 환자 옆에 앉았어요. 환자 어머니도 거기 있었는데, 담요로 둘둘 싼 갓난 아기를 꼭 안고 있었어요. 열 살짜리 남자아이와 두 살배기 여자 아이도 옆에 있었어요. 강 위로는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가 이동하고 있었고, 걸어서 대피하는 사람들도 많았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해안가에 보였는데 집기류를 전부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었고, 아이들도 저마다 양동이나 그릇 등을 머리에 얹고 걸어가고 있었어요.
우리는 지그미르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환자는 그 날밤 현지 치료소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밤새도록 3시간마다 한 번씩 산모를 체크했고, 아기에게 포도당을 처방한 후에야 대나무 위에 플라스틱 판을 얹은 구조물 아래 마련한 우리의 잠자리로 들어갈 수 있었죠. 아이 상태도 좋았고, 산모의 혈압도 통제할 수 있는 수치였어요.
다음날, 아기 엄마가 모유수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아기는 자기 목숨이 거기에 달려 있기라도 한 듯이 열심히 젖을 먹었어요. 힘들게 이동을 하고 진료소에서 밤을 보내고서도 아기 엄마 상태가 좋아 보여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요. 전날 오후 이후로는 더 이상 발작도 없었어요. 아주 좋은 신호였죠.
갓난 아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 정말 불공평하구나. 너는 태어난 지 고작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피난을 다니고 있다니.”
심각한 교전이 임박하면서 나시르 지역 주민 전체가 대피한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2014년 5월에 나시르에 있던 병원을 대피시켰습니다. 그 병원은 그 지역 주민 약 30만 명을 위한 2차적 의료시설이었습니다.
2014년 7월 말에 국경없는의사회 팀원이 나시르를 방문했을 때, 약탈을 당한 병원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고, 지역 주민들은 나시르를 완전히 떠나버린 듯했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을 주민들에게 접근하기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국경없는의사회는 대피한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2014년 1월부터 4월까지, 나시르 병원 의료진들은 매달 평균 4,100명의 외래환자 진료를 실시했고, 그 중 1,400명이 5세 미만의 아동이었습니다. 매달 약 405명의 환자들이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150명은 입원환자 병동에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병동에는 95명의 여성들이 있었고, 집중 치료급식 병동에 있었습니다. 외과수술 병동에는 140명의 환자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