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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구금센터에서 본 수용민 정신건강 – 의료보다 더 필요한 것

2019.06.13

글 | 산드라 밀러(Sandra Miller) / 트리폴리에서 활동한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활동 매니저 

리비아 트리폴리(Tripoli)의 잔주르(Janzour). 회색빛 하늘 아래 여성들은 5층짜리 아파트 테라스에 나와 색색의 빨래를 아침 바람에 조심스럽게 내걸고 있다. 반대편에는 가시 돋친 철사가 감겨있는 장벽이 보인다. 그 너머에는 난민과 이주민 수백 여명이 수용돼있는 안질라(Anjila) 구금 센터가 있다. 누더기 치맛자락과 때로 얼룩진 신발이 더러운 벽에 널려 있고 깨끗한 바람 한 점 받지 못하고 있다.

6개월이 넘게 같이 활동하고 있는 우리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약품, 보충 식량, 공책 한 상자를 가지고 삼엄한 경비 체계를 갖춘 구금 센터로 향한다. 이날의 목표는 이곳에 수용된 난민과 이주민의 신체적 질환과 정신건강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다. 이들은 구금센터 안의 열악하고 비인도적인 여건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들을 겪고 있으며 있으며 특히 공포, 불안, 불면증, 우울증을 보이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리비아 구금센터 남자 수용소 내부 ©Sara Creta/MSF

지난 한 달간,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일어난 폭력 충돌로 인해 구금 센터의 수용민들이 장기적으로 겪는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에 대한 우려는 더 커졌다. 트리폴리 주변 지역에 있는 민간인까지 위험에 놓이게 되었고 주변에서 폭탄이 터지고 포격, 공습이 일어나는 이곳에서 구금센터에 수용되어 있는 3,000명 이상의 난민과 이주민들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을 수 있는 즉각적 위험 속에 놓여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안질라 구금 센터에 들어가면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한다. 남자 80명이 사람들이 꽉 찬 수용소 방에서 나와 10명씩 줄을 맞춰 땅에 앉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 생기하나 없는 이들의 얼굴엔 표정도 없고 눈동자도 초점이 없다.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은 젊은 여성을 힘겹게 올려다 볼 뿐이다. 발키즈 므가드미(Balkees Mgadmi)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외모에서 풍기는 여리여리한 느낌과는 전혀 달리 차분하지만 강인한 명령조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국경없는의사회입니다.” 

24살의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통역사 발키즈는 아랍어, 불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의사, 간호사, 정신 건강 담당 의료진이 매주 구금 센터를 방문해 환자들을 치료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하지만 보통은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가 이어진다. 

“여러분들에게 공책과 펜을 나눠드릴 거에요. 생각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여기에 해 보세요.”

공책과 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오랫동안 자유를 억압당한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 중에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고문을 당해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피란을 가려고 지중해를 건너다 가족이 바로 눈앞에서 익사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결국 해군에게 붙잡혀 리비아로 강제 송환된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요. 정신 건강 측면에서, 어떤 선택이나 대안도 없고 처음 겪어보는 힘든 환경 속에 갇히게 되면 과거 경험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안 좋은 경험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_ 히샴 소프라니 (Hisham Sofrani) /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틱택토(삼목게임)을 통한 정신적 자극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매일 이어지는 위험한 환경도 잘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들이 바로 회복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금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움을 주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심리 대응 방식의 일종인 대응기제를 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이들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하도록 돕습니다. 생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리비아 구금센터 내부 ©Sara Creta/MSF

의료진이 기도 감염이나 급성 수성 설사, 옴, 결핵 등 질병을 진료하는 동안 소규모로 모인 사람들은 구금 센터 한 쪽 끝 바닥에 앉아 심리 상담사와 스트레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면증을 비롯해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난민들은 정신건강 상담을 들으며 깊게 호흡하고 간단히 몸을 움직이는 활동도 한다. 매우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다. 그 중 몇 명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다같이 웃음을 나누기 시작한다. 

안질라 구금 센터에서는 이렇게 하루 활동이 끝나면 다시 각자 수용소로 들어가는데,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결국 이들은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들을 돌보며,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할 존엄성을 가지고 치료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리비아에 있는 난민과 이주민은 리비아 내무부(Libyan Interior Ministry)가 운영하는 공립 구금 센터의 공식 집계로 현재 600만명으로 파악된다. 수많은 리비아 국민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집을 떠나지만 결국 리비아와 피난 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강탈, 고문, 성폭력, 착취, 강제 노동뿐이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무고한 이 난민들은 국제적 기준보다 훨씬 낮은 생활 여건과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환경 속에 취약한 상태로 무차별적 수용돼 살아가고 있다. 

4월 4일 전쟁이 발생한 이후부터 국경없는의사회는 국제사회에 분쟁지역 근처에 있는 난민과 이주민들을 리비아 밖의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것을 요청해왔다. 2019년 5월, 난민과 이주민 단 455명만이 리비아 국외로 이송됐으며 300~400명은 지중해에서 해양경비대 단속으로 국제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로 강제 송환되거나,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환경인 구금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