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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함께 미래를 그리는 공간 ‘틴클럽’

2020.12.01

2020년 3월에 열린 틴클럽에서 아동 청소년 환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Francesco Segoni/MSF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아동과 청소년은 성인보다 사회적 낙인과 질병의 심리적 부담에 더욱 취약하다.  그래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국경없는의사회는 HIV감염률이 높은 말라위에서 '틴클럽(Teen Clubs)'를 운영해 아동∙청소년 환자들이 HIV 치료와 사후관리, 진단 검사,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은 틴클럽을 통해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몇몇은 그룹의 멘토 역할을 맡기도 한다. 


칠룽가모(Chilungamo)는 어렸을 때 자신이 HIV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다. 

"2011년 제가 12살이었을 때 HIV 양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는 제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거라 생각했어요. 나를 기다리는 건 죽음 뿐이고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_칠룽가모

9년이 지난 지금 칠룽가모는 청년이 되어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틴클럽에서 멘토 역할을 맡아 말라위 치라줄루(Chiradzulu) 지역에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어릴 때 HIV 양성 판정을 받은 20살 칠룽가모가 틴클럽에서 다른 HIV 감염 아동∙청소년 환자를 위한 멘토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Francesco Segoni/MSF

말라위는 전 세계에서 HIV 감염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인구의 약 10명 중 1명이 HIV 양성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치라줄루에서 20년 넘게 활동하며 효과적인 치료와 검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HIV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HIV에 감염된 사람들은 연령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아동과 청소년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별한 주의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살이 채 되지 않은 아동 환자에게는 ‘HIV-양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조차도 어려울 때가 있다. 성적으로 성숙하고 있는 청소년의 경우, 성으로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 

"어린 환자에게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때로는 긴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상담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환자의 연령과 성숙도를 고려해야 합니다. 어린 아동 환자에게는 간단히 혈액 속에 ‘막힌 것’ 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조금 더 성장하면 HIV에 대해 알게 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려 주고 도와주기도 합니다.” _미리암 해리(Miriam Harry)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 환자들은 특히 사회적 영향에  민감하다. 

"이렇게 취약한 나이일 때 또래와 지역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미래를 볼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인생에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_미리암 해리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이러한 여러 요소 때문에 아동∙청소년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논의할 때 성인 환자와 함께 있는 것을 어렵게 느끼고 때로는 매우 불편해한다.

"성인 환자들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부끄러웠어요. 틴클럽에 참여했을 때 저는HIV에 감염된 저와 같은 아이들과 청소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저는 용기를 얻었고 병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됐어요. “_칠룽가모

칠룽가모는 자신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고 느낀 이후 틴클럽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을 넘어 친구들을 위한 멘토가 되었다. 멘토가 되기 위해 칠룽가모는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준비했다. 

틴클럽은 학교 출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로 토요일에 열린다. 그룹 세션, 보건 교육 토론과 놀이 시간 사이에 아이들은 임상 진료를 받고 바이러스량을 검사하여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실패하는 경우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다음 단계로 즉시 이동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아프리카 전역에 퍼지기 전인 2020년 3월 초 무덥고 화창한 토요일, 172명의 아동과 청소년이 치라줄루 마을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나미탐보(Namitambo) 보건소에서 열린 틴클럽에 참여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타미카 무니엔엠베(Tamika Munyenyembe)가 보건소 앞 넓은 뜰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관찰했다. 

나미탐보 보건소에 진행된 틴클럽에서 소녀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Francesco Segoni/MSF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실제로 이들이 겪는 문제이고, 특히 아동∙청소년 환자의 경우, 그 차별은 가족 안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HIV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치료제 복용을 멈추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HIV 치료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치료제를 먹지 않으면 문제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될 뿐입니다.” _타미카 무니엔엠베 / 국경없는의사회 사회복지사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가피하게 틴클럽 대면 모임을 중지하는 등, 활동을 일시적으로 축소할 수 밖에 없었다. 의료적인 후속 치료는 전화로만 진행했고,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처방량을 늘려 환자들이 진료소를 방문해야하는 횟수를 줄였다. 이후 상황이 나아져 일부 제한사항(레크리에이션 활동은 여전히 중단)이 있지만 대면 모임 등 틴클럽을 재개할 수 있었고 상황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오늘 출석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저는 오늘 무척 행복합니다. 몇몇 환자들과 연락이 끊길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몇 달간 활동이 축소되면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이러스량을 검사하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_미리암 해리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2019년 한 해 동안에는 9,200여 명의 환자가 국경없는의사회의 틴클럽에 참석했다. 칠룽가모처럼, 틴클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 때문에 고통 받던 아이들이 오히려 그 상황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더욱 단단히 준비하게 되는 변화를 겪는다. 많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 속에서 의미와 동기부여를 찾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틴클럽이 많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스스로를 위해 책임감을 갖도록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처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됐어요.”_ 칠룽가모

2019년 2월부터 9월까지 말라위 치라줄루에서 활동한 임희정 활동가(약사)도 활동 당시 토요일마다 ‘틴클럽’을 지원했다. 모두가 협력해 함께 하는 틴클럽은 아동∙청소년 환자에게 검사와 치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도와주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공간이다. 

“제가 있었던 말라위 치라줄루는 HIV 양성 비율이 50%에 이르는 곳입니다. HIV는 효과적인 진단 도구와 약품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면 대부분 사망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곳에서는 전체 감염자의 50%를 차지하는 어린이, 청소년들과 매주 토요일 ‘틴클럽’을 운영하며 청소년 HIV 환자들의 교육과 정기 혈액검사,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매주 물류전문가, 자원봉사자, 정신건강 간호사, 약국, 청소년 멘토, 의사, 간호사 등 전 스텝들이 협동하는 모습은 큰 자극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도 가서 점심때가 되면 배식을 돕기도 했는데, 환자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_임희정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