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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남수단: 환자 70%가 아동, 조금씩 쌓아간 신뢰

2022.11.09
이름:  김지민
포지션:  마취과의
파견 국가:  남수단
활동 지역:  벤티우(Bentiu)
활동 기간:   2022년 5월  ~ 2022년 7월

김지민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마취과 전문의, 남수단 활동지역 병원에서 아동들과  함께 ©김지민/국경없는의사회

1.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남수단 북부 벤티우(Bentiu)에서 마취과 의사로 두 달 남짓 근무했습니다. 벤티우는 분쟁을 피해 피란한 ‘국내실향민’이 모여 임시 캠프가 형성된 곳입니다. 의료적 공백이 큰 만큼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 캠프에는 점점 피란민이 늘어가고 있고 유엔 난민 숙소에서 오는 환자들을 비롯하여 인근 벤티우 환자도 모두 이곳으로 이송되고 있습니다.  

2. 벤티우의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환자가 늘어나서 병원 규모는 커져가는데 의료진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환자의 70%가 아동 환자일 만큼 아동이 많은데, 장티푸스와 장파열 환자의 수는 특히 많습니다. 사실 병원을 빨리 오면 살 수 있는데, 복막염이 심해져 장에 구멍이 여러 개 나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장파열 환자는 정말 일주일에 한두 명은 꼭 왔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번 프로그램의 소아과 파트 규모가 거대했습니다. 공간도 부족해서 계속 늘려가고 있고 외과병동에 환자가 넘치면 코로나19 병동의 텐트를 임시로 빌릴 정도였습니다. 

기후 관련 문제, 기타 환경 문제도 심각합니다. 우기에는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하고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질병은 물론 결핵환자도 매우 흔한 편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후 환경뿐만 아니라 벤티우의 생활환경도 좋지 못합니다. 현지 직원 또한 난민 숙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며 이주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숙소 가운데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유엔 캠프의 물탱크를 비롯하여 국경없는의사회가 물탱크를 벤티우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동 환자의 영양상태도 좋지 못한 점이 문제입니다. 영양실조가 기타 말라리아나 결핵 등 질병과 결합되면 악화되기 마련이라 매우 심각합니다.

벤티우 현장 ©김지민/국경없는의사회

그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이나 프로젝트에서는 보통 같은 증상의 환자가 이송되기 때문에 그 수가 많더라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벤티우 병원에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각양각색의 환자를 치료해야만 했습니다. 그 중에는 외상환자는 물론, 장티푸스나 결핵환자, 또는 심각한 화상을 입은 환자 등 정말로 접하기 쉽지 않은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환자의 규모는 점점 커져만 가는데 비해 병원의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큰 수술방이 한 개 밖에 없어서 작은 방에 모니터를 끌고 오고 약을 가져와서 수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말 계획 수술을 잡지 않지만 환자가 너무 많고 매일같이 응급환자가 발생하고 하루에 10건 이상의 수술이 이루어졌습니다. 

환자 중 가장 어린 환자는 생후 2일 된 아기가 항문이 없이 태어나 배에 구멍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수술을 했고, 반대로 가장 나이가 많은 80대 환자는 갑자기 복부가 팽만하여 개복 수술을 진행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배 안이 암으로 가득 차서 담관이 막혀 있어서 담관을 임시방편으로 장에 연결해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결국 일주일 뒤에 사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티푸스 결핵, 결핵성 종양 등이 곪아서 온 아동 환자도 많았습니다. 의외로 적은 환자는 코로나(Covid19) 환자입니다.  

3.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환자가 있나요?  

마지막 날 이송되어 온 20대 초반의 총상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두 명은 죽고 마지막 남은 생존자였다고 했습니다. 총상이 허벅지에 두 부분, 복부에도 총상이 하나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복부를 열었는데 배가 깨끗해서 당황했습니다. 총알이 복부가 아니라 갈비뼈를 뚫고 폐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피도 차고 공기도 차서 숨을 못 쉬었는데 워낙 건강한 친구여서 상처를 입었단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진행해서 위험한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경험 많은 외과의의 혈관 수술 집도로 벤티우에서의 마지막 수술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또 아동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3개월 된 남자아이로 이송된 환자였는데 복막염으로 인해 배가 땅땅하게 부풀어올라 장이 꼬였거나 썩어 기능하지 않는 상태가 의심되었고, 그렇다면 패혈증으로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환자가 병원으로 넘어왔을 때만 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각만큼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장들끼리 꽈배기처럼 꼬여서 안으로 장이 들어간 상태였는데 썩은 부분을 잘라내어 주니 회복했고 건강해졌습니다.  

©김지민/국경없는의사회

4.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아이들은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무서워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정맥주사(IV)를 잡는 역할은 현지 직원이 대신합니다. 무서워 하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가끔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5살 여자 아이 환자가 이송되어왔는데 제가 옆에만 가도 난리가 났고 수술실에서는 거의 패닉 상태였습니다. 결국 현지 직원이 끌어안고 오빠까지 수술방에 들어와 손을 잡고 달래 수술을 집행했습니다. 상태가 호전되니까 그제야 조금씩 저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5. 한국의 근무 환경과 비교한다면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주거 환경은 어떠셨나요?  

현장은 벌레와의 전쟁입니다. 한국에서부터 전자모기향, 신기패, 계피 등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고 챙겨 왔는데 다행히 모기는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밤에 화장실을 갈 때는 곤충, 벌레들과의 전쟁이었죠. 정말 엄청나게 몰려듭니다. 불에 모여드는 벌레는 물론이고, 워터버그(물벌레)가 엄청 많았어요. 한 번 물리면 정말 고통이 오래갑니다.  

식수위생 전문가가 약을 치고 있지만 워낙 벌레가 많아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화장실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벌레와의 전쟁을 각오해야 합니다. 음식은 너무 잘 나오지만 안타까운 점은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벤티우 현장 ©김지민/국경없는의사회

6. 이곳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지역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곳입니다. 돈이 많다면 주바(Juba)로 가는 이들도 있지만 치료비가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현지 주민의 유일한 희망인 곳이 바로 여깁니다.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수술을 이곳에서 할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것이 이 프로젝트를 닫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7. 국경없는의사회와 계속 함께하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벤티우의 업무 강도가 너무 심해서 파견 기간은 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후임자도 3개월이고 전임자는 7~8주의 파견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3개월 이상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계속 같이 일하던 외과의가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라 힘이 되었고 환자 수가 많아도 심리적으로 피곤함을 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현장 활동 중에 처음 접해보는 수술도 많았고 너무나도 힘든 반면 너무나도 재미있었습니다.  

다음 계획으로는 올해는 쉬고 내년에 다시 파견을 가고 싶습니다. 다시 이곳도 오고 싶은데 정말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만약 좋은 동료를 만나지 못한다면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매우 힘들고 고되지만 반대로 너무 재밌고 보람찬 현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파견을 갈 때마다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 활동을 하다 보면 NGO기관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게 되는데 이 중 국경없는의사회가 제일 일을 열심히 그리고 쉼 없이 일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듭니다. 

 

©김지민/국경없는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