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1일, 뉴델리/제네바
현재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내 제안사항에 따르면 세계 수백만 명에게 필요한 적정 가격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심각하게 제한될 수 있다고,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가 오늘 경고했다. 이번 일요일 호주 퍼스에서 시작되는 차기 RCEP 협상을 앞두고,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번 무역 협상이 가져올 수 있는 해로운 여파에 대해 경고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Access Campaign) 남아시아 대표 리나 멘가니(Leena Menghaney)는 “RCEP 협상에 포함된 제안들은 국제 무역 규칙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의약품 접근성에 대해 훨씬 더 강경한 지적재산 조항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라며 “이 제안들이 수용된다면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을 포함해 이번 협상에 참여하는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 그리고 인도에서 생산되는 저렴한 구명 복제 의약품에 의존하고 있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적정 가격의 복제약에 접근할 가능성이 제한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협상 자료 중 지적재산과 관련하여 유출된 문건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은 국제 무역 규칙을 넘어서는 제안들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제안들은 적정 가격의 복제약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하는 것들이다.
Access Campaign 동아시아 총괄 책임자 브라이언 데이비스(Brian Davies)는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지적재산 관련 조항 중 다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항들을 반영하는데, 사실 TPP는 의약품 접근성 측면에서 볼 때 최악의 무역 협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라며 “TPP에 참여하지 않았던 국가들, 특히 인도 및 ASEAN 주요 회원국들은 RCEP 협상 아래에서 비슷한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압박에 놓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RCEP 협상에 포함된 국가들 중에는 인도가 포함돼 있다. 적정 가격 의약품의 접근성을 해칠 수 있는 조항들이 더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복제약을 대량 생산하면서 ‘저개발 국가들의 약국’이라고 불리는 인도는 전염성, 비전염성 질환 치료에 필요한 적정 가격의 구명 의약품을 저소득 국가들에 공급하고 있다. HIV, 결핵, 말라리아 등을 치료하고자 국경없는의사회가 구입하는 모든 의약품의 2/3 또한 인도산 복제약들이다.
이번 협상에서 인도는 지금까지 여러 무역 협상에서 애써 지켜 온 의약품 접근성 보호를 철회하라는 더 큰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인도는 특허 기간 연장, 자료 독점권 등의 독소 조항들이 과거 인도-일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는 EU-인도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제안될 때마다 강경한 태도로 이를 거부해 왔다.
가장 해로운 조항 중 하나는 ‘자료 독점권’(data exclusivity)이다. 이는 더 저렴한 복제약들의 시장 진입을 막는 특허처럼 작용할 수 있는데, 심지어 특허가 만료되었거나 애초에 특허 자격이 없는 의약품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 그 밖에, ‘특허 기간 연장’ 등 의약품 접근성에 해로운 다른 조항들도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남아 있는데, 이 조항들은 지적재산 강화를 둘러싸고 논란의 여지가 높은 측면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특허 남용을 막고 의약품 접근성을 보호할 안전 장치도 없다.
Access Campaign 의료 코디네이터 그렉 엘더(Greg Elder) 박사는 “이번 협상 테이블에 놓인 조항들로 인해 복제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HIV를 비롯한 다양한 질병의 치료가 지연되거나 방해될 것이며, 이는 심각한 의료적 여파를 초래할 것입니다.”라며 “HIV 감염자 23만 명을 치료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가 사용하는 HIV 의약품의 97%는 인도에서 구매한 복제약들입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 복제약들이 없다면 현재 우리가 치료하는 환자들만큼 많은 수의 환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도 및 ASEAN 협상가들에게 촉구합니다. 그 어떤 무역 협상 조항도 저소득 국가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복제약의 공급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