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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기를 원해요. 우리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어요. 여기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자비로운 일이 되었어요.”_움 카탑(Umm Khattab) / 시리아 출신 난민
움 카탑은 수년간 레바논 북동쪽 국경 인근에서 허술한 텐트를 집으로 삼아 살아왔다.
그녀의 증언은 레바논 헤르멜(Hermel)과 카아(Qaa), 아르살(Arsal)에서 수만 명의 난민이 직면한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이곳에서는 방수포와 쓰레기 조각으로 만든 임시캠프가 황폐한 풍경을 채우고 있다. 이렇듯 빈약한 피란처는 난민들을 거친 비바람으로부터 거의 보호하지 못한다. 레바논에서 증폭되는 반(反)난민 정서로부터 보호하기에는 더욱더 역부족이다. 난방도 없고 흙바닥으로 이루어진 열악한 공간에 밀집되어 살아가는 난민들은 보안 검문소와 지역 내 긴장에 대한 두려움에 매일 시달린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 가족 10명 모두 하루 종일 텐트 안에 갇혀 지내요. 시리아인들에게 부여된 통금 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는 절대로 텐트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아이들은 현지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_와엘(Wael) / 자녀를 둔 36세 고혈압 및 당뇨병 환자
환기를 위해 살짝 열려 있는 텐트 틈 사이로 보이는 시리아 출신 아동 난민들. 2024년 6월. ©Carmen Yahchouchi for MSF
와엘은 헤르멜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몇 년째 환자로 지내면서 그가 앓는 만성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필수 의약품을 받아왔는데, 최근 보안 조치들로 인해 구명 치료를 받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4월부터 레바논은 미등록 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속 및 보안 조치를 강화해 왔다. 그 결과, 시리아 출신 환자들은 두려움과 이동 제한 때문에 바알베크 헤르멜(Baalback-Hermel)주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의료서비스를 받는 데 점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지역에 머무는 많은 난민들에게 의료지원을 받는 것은 두려운 결정이 되었다. 가령 와엘은 헤르멜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로 가기 위해서 검문소를 지나가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예약이 있을 때마다 항상 불안합니다. 보안 검문소가 두려워요. 5월 20일에 예약 진료가 있었는데 보안 검문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서 진료소에 가지 않기로 했죠. 이런 두려운 감정은 혈당을 올리는데, 혈당을 낮출 방법이 없을까 봐 걱정돼요.”_와엘
이런 보안 검문이 실시되는 동안 체류 기간이 만료된 시리아 출신 사람들은 종종 검문소에서 체포되어 시리아로 강제 송환되는데, 대부분은 레바논에 있는 가족과 연락할 기회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
만성 질환을 앓는 다른 환자들은 약을 구하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배급에 의존하거나 약을 아예 포기했다. 헤르멜에서 몇 마일 떨어진 카아 지역에 머무는 아메르(Amer, 36세)도 고혈압을 앓고 있는데, 4월에는 복용하던 약이 완전히 떨어졌다.
약이 다 떨어졌는데 약을 받으러 가기 위한 방법도 용기도 없어요. 당국에 쫓기는 악몽을 꿔요. 저는 감히 검문소를 지나가다 영원히 가족과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쓸 수 없어요.”_아메르
아메르가 빈 약통을 들고 있다. 2024년 6월. ©Carmen Yahchouchi for MSF
아르살에 머무는 60세 남성 탈랄(Talal)은 낡은 텐트 바닥에 앉아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했다.
저는 고혈압을 앓고 있습니다.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두 달 전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혈압은 주기적으로 정상 범위 이상으로 치솟죠.”_탈랄
탈랄이 아르살의 산간 지대를 거쳐 약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낡은 오토바이 덕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이마저 압수당했다. 최근 미등록 차량에 대한 전국적인 단속으로 인해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경제 위기 이후 유일한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오토바이를 잃었다.
오토바이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어요. 가족을 위해 음식을 사러 가거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구하러 갈 때 오토바이나 툭툭(tuk-tuk, 삼륜 오토바이 카트)을 빌려야 해요. 이게 자동차보다 저렴하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비싸죠.”_탈랄
국경없는의사회는 2010년부터 레바논 북동부 바알베크 헤르멜 지역에서 활동해 왔다. 10년 넘게 난민과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소아과 치료, 성·생식 보건 서비스, 비전염성 질병 치료, 예방 가능한 질병 관련 예방접종, 정신건강 지원 등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아르살과 헤르멜에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협력 병원을 통해 2차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역사회에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진료가 무산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레바논 북동부 카아 소재 비공식 텐트촌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아동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년 6월. ©Carmen Yahchouchi for MSF
아메르가 머무는 피란처에서 두 텐트 떨어진 곳에는 움 오마르(Umm Omar)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한 달 전쯤에 집에서 출산했다. 예기치 않게 양수가 터졌던 그날 밤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군 검문소를 건너는 것에 대한 지역사회의 두려움 때문에 텐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흙바닥 위에서 마취도 없이 진통을 겪어야 했던 사실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녀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제가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아무도 저를 진료소에 데려갈 수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조산사로 일했던 어머니를 둔, 같은 난민 신세인 사람을 불러왔어요. 감사하게도 그분이 기억을 되살려서 분만을 도와줬어요. 하지만 아직도 아이의 출생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캠프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있어요."_움 오마르
움 오마르가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2024년 6월. ©Carmen Yahchouchi for MSF
난민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종종 레바논으로 향하는 위험한 여정에 대해 말한다. 등에 옷가지만 지고 절망에서 도망쳐 나와 레바논의 구릉들에서 생존에 대한 희망을 찾았다는 것이다.
난민들은 처음에는 수용 지역사회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레바논 경제 붕괴 속에서 피난처에서의 상황이 어려워졌다.
우리가 아르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지역 당국이 도움을 줬습니다. 우리가 앉거나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줬죠. 그리고 학교에 등록해 줘서 저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지역사회가 우리를 환대했고 이방인처럼 느끼지 않게 해줬어요.”_마야(Maya) / 시리아보다 레바논에서 더 오래 거주한 시리아 출신 난민
마야가 자신이 머무는 텐트에서 기르던 비둘기를 놓아주는 모습. 2024년 6월. ©Carmen Yahchouchi for MSF
하지만 레바논이 5년째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레바논에 머무는 시리아 난민들은 현재 더욱 견디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이동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난민들은 안전과 건강 중 하나를 택하는 불가능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심지어 정신건강은 현재 난민들의 우선순위에서 이보다 더 멀어져 있다.
움 카탑은 2023년 말 아들이 추방된 이후에 계속해서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다.
우리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어요. 보안 검문이랑 아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도 잘 수 없어요. 이런 보안 검문이 있을 때면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아이들의 심장이 요동치죠. ‘그들이 온다!’라고 말하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그때 저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이들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죠.”_움 카탑
시리아 난민들이 몇 년째 실향 생활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부 난민들은 더 많은 심리적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위기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난민들은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어요. 성인과 아동을 모두 포함해 정신건강 치료를 받는 국경없는의사회 환자들 사이에서 끔찍한 사건들을 겪은 것과 관련된 행동 변화들이 발견되었어요. 이들의 일상이 영향을 받았고 변해버렸어요.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외출도 덜 하고, 마음이 편안한 순간들도 줄고, 가족들은 흩어지고, 사람들은 이전처럼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지쳤어요. 불안함, 우울함, 울적함을 느낍니다. 청년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는, 돌아갈 수도 없지만 앞으로도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들은 영원히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갇혀 있는데, 이는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_아마니 알 마샤크바(Amani Al Mashaqba) / 국경없는의사회 바알베크 헤르멜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하거나 큰 소음이 들릴 때면 보안 검문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_움 카탑
움 카탑은 그녀가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에 대해 무심코 설명한다. 이는 아르살과 헤르멜에 머무는 다른 난민들의 증언과 유사하다.
난민들이 겪는 신체적 및 정신적 피해는 매우 크다.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안전하게 사는 것, 보안 검문 인력이 우리에게 접근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이곳에서 우리가 겪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_시리아 출신 난민
이렇듯 만연한 두려움은 단순히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난민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정말이지, 만약 시리아에 있는 내 집이 안전하다면 이곳에는 단 한 순간도 머물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시리아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이제 우리는 죽기를 원하고 있어요. 여기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자비로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죠.”_움 카탑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전쟁은 광범위한 파괴 및 폭력을 초래했고,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레바논 및 튀르키예, 요르단, 이라크 등 이웃 국가로 피란했다. 계속되는 불안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시리아는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되었고, 많은 피란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려움과 이동 제한으로 인해 시리아 난민들은 레바논 북동부에서 의료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약한 지역사회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은 두려움 또는 위협으로 인해 저해 받아서는 안 된다. 환자들이 안전과 의료지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제 유일한 바람은 안전이에요.” 안정적인 삶에 대한 깊은 열망이 담긴 이 간청은 오늘날 레바논에서 많은 난민들이 겪는 경험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