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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매일 밤낮으로 두려움에 떨다

2012.01.25

자이냅(Zaynab)은 심각한 영양 실조에 걸린 아들 이브라힘 (Ibrahim)을 치료하기 위해 힐로웨인(Hiloweyn) 센터를 방문했다. thiopia 2011 © Michael Tsegaye

자이냅의3살 된 아들 이브라힘은 영양실조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에 돌로(Dolo) 진료 센터의 집중치료식센터(ITFC)에 입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심각한 경우에 아동을 입원시켜 상태를 면밀히 모니터 한다. 집중치료식센터입원 시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 한 명의 가족이 함께 머물러야 하는데 대부분이 경우 엄마가 함께한다.

“우리는 게도(Gedo,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국경) 지역에서 왔어요. 지난 10년 동안 전쟁과 가뭄으로 에티오피아로 자주 피난와야 했어요. 이번 피난이 4번째인가 5번째가 되요. “

소말리아에서 자이냅과 남편은 농부로 옥수수, 토마토, 콩과 담배를 재배했었다 소말리아에 지난해 심각한 가뭄이 찾아와 시장에서 농산물을 팔아 현금화 하는 게 어려워 졌다. 게도 지역은 지속적으로 무력 분쟁에 휘말렸다. 처음엔 지역 무장세력이 그 다음 2006-7년에는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를 침공했고 현재는 유엔이 지원하는 “과도 연합 정부”와 무장 세력간 분쟁 중이다.

“남편은 남겨진 시어머니 때문에 소말리아로 돌아 갔어요. 다시 돌로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3살 된 아들 이브라힘은 아파서 계속 말라갔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는 모자가 진료 센터에 찾아왔을 때 아이의 영양실조는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몸은 수척했고 부종으로 아이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아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17일 후 회복되는 속도가 놀라웠습니다. 다시 생기를 찾고 빠르게 회복됐어요. 우리가 웃으면 따라 웃기도 했고요. 아이의 신경 시스템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였죠.”

며칠 내로 자이냅과이브라힘은퇴원 해 치료식 프로그램을 처방 받을 예정이다. 이브라힘은 매일 진료소를 방문할 치료를 받고 가족들에게도 식량 배급이 실시될 예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돌로 진료소 건물을 1997년 완공했으며 지역 의료 시설의 운영에 관여해왔다. 올해 초 무력 분쟁으로 소말리아 난민이 다시 에티오피아로 몰려오면서 의료 시설이 부족하게 됐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추가적인 의료 병동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과 난민을 위한 수술 병동을 설치했다.

가뭄을 농사를 망치고 소말리아에서 에티오피아로 걸어서 피난 온 후 힐로웨인(Hiloweyn) 집중치료식센터(ITFC)에서 치료를 받은 30세 여성

나는 이 곳에 2번째로 찾아왔습니다. 나는 아이가 아파서 1달 동안 병원에 머물러야 했어요. 몇 주가 지난 후에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주 후 아이가 다시 아팠어요. 설사와 가슴 통증과 열에 시달렸고 진료소에서 준 영양실조 치료식 (Plumpy nut)을 삼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뭐가 잘못됐나 몰랐어요. 아이는 소말리아에서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아프게 됐어요. 제 생각에는 애한테 우유를 못 줘서 그러는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은 내 아이처럼 아프진 않아요.

나는 돌로에 남편과 7명의 아이와 함께 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소말리아 친척에 맡겼어요. 몇몇은 아직 소말리아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관목지대에 살았는데 많은 가축이 가뭄으로 죽었어요. 이제 남은 건 염소와 망아지 몇 마리 예요. 힘든 상황입니다.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살 수 없고 농사는 망했고 땅은 너무 건조해요. 우리는 오포루 (Oforu)란 마을에서부터 3일 동안 걸어왔어요. 피난길은 나쁘지 않았으나 돌로 아도 (Dolo Ado) 임시 난민 센터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우리는 여기에 4개월이 넘도록 있었어요. 소말리아에는 무력사태가 계속 되고 있고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너무 위험해요. 이곳은 평화롭고 애들도 굶어 죽지 않아요.

39일 동안 걸어서 피난해 힐로웨인 집중치료식센터(ITFC)에 아픈 아이 입원 시킨 22세 여성

나는 이 곳 병원이 몇 번째 예요. 오늘 다시 찾아온 이유는 아이가 다시 아팠기 때문이에요. 머리가 끓는 듯이 열이 올랐고 먹지도 못했어요. 남편은 소말리아에서 농부예요. 생활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남편이 죽고 모든 가축이 죽고 난 후,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와 아이를 데리고 에티오피아로 왔어요. 이 아이는 나의 유일한 아이예요. 아이가 아픈 건 환경 때문이에요. 소말리아는 지금 추워요. 이 곳은 덥고 건조해요. 우리는 바드히리 (Baardheere)에서부터 돌로까지 39일이나 걸어왔어요. 먼 거리였고 식량이 부족해서 힘들었어요. 여기 힐로웨인(Hiloweyn) 상황은 좋아요. 여기엔 식량도 있고 강가에서 땔감도 구할 수 있어요. 강가 인근은 위험해요. 여자들이 강간을 당해요. 저는 강간을 당한 여자를 알아요. 강가에 갈 때는 뭉쳐서 남자랑 같이 가요. 하지만 남자가 시간이 없을 때가 있어요. 나는 재혼을 했지만 남편이 떠나 있을 때가 있어요. 남편이 떠날 때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말해줘요. 지난번 여기 병원에 머물렀을 때 엄마가 아파서 병원을 떠나야만 했어요. 의사가 계속 머물라고 했지만 병원에 더는 오래 머물 수 없었어요. 아이가 여기서 더 아프게 됐어요. 나는 남편과 함께 소말리아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계속 여기 남을 거예요.

소말라아에서 아픈 딸을 데리고 피난한 45세 여성

내 어린 딸은 소말리아에서 아팠어요. 에티오피아에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도 계속 아프네요. 이 곳 병원에 딸과 함께 4주를 보냈어요. 병원을 퇴원하고 몇 주 뒤에 딸이 또 아팠어요. 아이들에게 줄 식량이 충분치 않아서 제일 어린 아이가 제일 조금 먹게 됐죠. 병원은 좋았지만 집에는 돌봐야 할 다른 아이들도 있어요. 다른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에 함께 있지 않는 한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죠. 국경없는의사회가 준 비스킷이 좋았어요. 애들이 특히 좋아했어요. 비스킷을 받지 못했을 때 애들은 침울해 했어요. 유엔난민기구(UNHCR)가 식량, 기름, 쌀, 밀가루와 설탕을 줬어요. 지금 우리는 몇 주 동안 설탕을 배급 받지 못하고 우유도 없어요. 애들은 차가 필요해요. 소말리아에서는 식수가 안전하지 않아서 차를 마셔야 되요. 

나는 딘수(Djinsoor)에서 왔어요. 여기 힐로웨인보다 상황이 안좋았어요. 여기에서는 식량만이 문제였지만 디진소에서는 식량뿐만 아니라 안전도 문제였어요.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살 수 없어요. 매일 밤낮을 공포에 떨었어요. 진절머리가 났어요. 여기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왔어요. 엄마와 친지들도 우리가 도착한 이후에 힐로웨인으로 왔어요. 소말리아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해요. 저는 소말리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악몽도 꿉니다. 무장한 남자들이 집으로 쳐들어 와서 가축을 훔쳐가고 남편을 거의 죽을 만큼 때렸어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힐로웨인에 우리의 미래가 있어요. 이제 상황이 나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