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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시리아 : 심리 치료 - 언어가 더 이상 장벽이 아닌 순간

2013.11.15

1화, 장애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 보고오기
2화,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보고오기
3화, 입을 꽁꽁 닫아버린 소녀 보고오기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샬롯은 아랍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역이 환자들과의 상담을 도와주었다. 단 한 번만 빼고 샬롯은 어린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로 이야기했다.

S는 겨우 5개월 된 여아입니다. 이 아이의 가족은 마을에 여러 차례 폭격이 가해진 후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웃마을에 막 도착했을 때 폭탄이 차에 떨어졌습니다. 차에 있던 아기의 엄마, 아빠, 그리고 11명의 형제자매들 중 3명이 즉사했습니다. S의 한쪽 다리에 난 상처는 너무 심해, 허벅지에서부터 다리를 절단을 해야 했습니다. S의 가족 중 19살이 된 언니 한 명이 현재 S를 돌보고 있습니다. 언니 또한 로켓 공격으로 발에 부상을 입었고, 8개월된 자신의 아기와 S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목격한 연대감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예를 들어, S의 언니가 너무 지쳐 S에게 젖을 먹이지 못하면 같은 병동에 있던 다른 여성이 S에게 젖을 먹였습니다. 이 아기는 순식간에 병원의 마스코트가 되었답니다!

저는 S에게 진정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병원의 한 의료진이 제가 S를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아기는 아마도 절단된 다리에서 느껴지는 환상통 때문인지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고 했습니다.

요르단 자타리 캠프로 피난한 시리아 아동 ©Panagis Chrysovergis

처음 S를 보았을 때 저는 아기를 품에 안고 신체적 접촉을 형성하면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프랑스어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아기는 매우 주의깊게 귀를 기울였고 마치 제 영혼의 소리를 듣고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나도 충만하고 너무나도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여성들 역시 제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외국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S가 그러했듯 그들은 그 의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아기를 팔에 더 단단히 안고 아기의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저는 아기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겪은 그 끔찍한 일들을 말로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기에게 정말 운이 없었다고, 정말 슬픈 경험을 했다고, 이제 다시는 엄마, 아빠를 보지 못하게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극도로 겁이 났었겠노라고,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고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고 화염을 봤었을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또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제부터 정말 용기를 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아기는 제 억양을 이해했고 자신이 지지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를 이해한다고, 아마 지금도 죽을 만큼 겁이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노라고 이야기할 때 아기는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기가 저에게 답을 했습니다. 정말 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뭔가를 말했습니다. 그건 분명 아기와 저 사이의 대화, 의사소통이었습니다. 저는 아기에게 다시 이야기를 했고 아기는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대화가 몇 분 동안 지속되었고 주위의 여성들은 모두 놀라워하면서 우리를 지켜봤습니다.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안심이 되었는지 아기는 잠이 들었습니다. 한 5분 정도 평온하게 자더니 다시 불안해했습니다. 갑자기 아기가 정말로 몸을 움찔하더니 얼굴에 무서워하는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폭발을 표출하고 있었던 걸까요? 잠에서 깨어난 아기는 다시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저를 쳐다보더니 기쁜 듯 꺄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S를 보러 갔습니다. 아기를 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S는 병원의 꽃이었고 항상 누군가의 팔에 안겨있었습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한 부상자(그리고 강인한 전사였습니다)가 팔에 S를 안고 아랍어로 아주 사랑스런 말, “너는 이 병원의 작은 보물이란다”라는 말을 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기에게 곰인형을 주었고 아기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병원에는 장난감이 없어서 아이들이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아파하고, 울고, 엄마를 필요로 합니다. 의사나 간호사를 보면 이제 또 아프겠구나, 생각합니다. 치료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겁을 냅니다. S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더니 이어서 곰인형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곰인형의 커다란 귀를 움켜잡고 꼭 끌어안았는데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 다음 아기들이 으레 그렇듯 곰인형을 입에 물고는 궁금해하는 듯한, 매혹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치 “이게 뭔가요? 장난감? 이거 제 건가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했습니다. S는 한 15분 정도 곰인형을 가지고 놀았는데 어떤 것에든 5분에서 10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에게는 굉장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S는 마침내 퇴원했고 언니와 다른 친척들과 함께 삽니다. 10명 정도가 살 수 있는 집이었는데 아기가 퇴원할 때 그 집에는 이미 20에서 30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S는 붕대를 갈거나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끔 병원에 다시 들렀습니다. 제가 떠난 이후로는 현지 심리학자가 그녀를 돌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아기는 어떻게 될까요? 걷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아기의 가족이 의족을 사줄 수 있는 형편이 될까요? 아기가 성장하면 그때마다 사이즈를 바꿔줘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