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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결핵 치료를 타개할 새로운 치료요법을 찾아

2018.08.02

글 | 하신혜 국경없는의사회 대외협력 보좌관

서울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24시간을 꼬박 넘게 두 대륙을 건너 도착한 곳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이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펼쳐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활동 지원을 위해 한 달간 파견근무를 하였다. 

케이프타운.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해 과거 대항해 시대의 희망봉으로 이름을 날린 이곳은 “아프리카 속의 지중해 유럽”으로도 알려져 수많은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곳이다. 유명한 관광지이자 탁상지 지형인 테이블 마운틴에서 바라보는 케이프 타운은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상낙원 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펼쳐 보인다. 

탁상 모양을 닮았다 하여 “테이블 마운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산은 등산객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산 중 하나이자, 케이프타운의 아이콘과 같은 지형이다. © 하신혜/MSF

하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케이프 타운 공항에서 관광지와 반대 방향으로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 칼리차(Khayelitsha) 지역에서는 지상낙원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안타까운 삶의 현장이 있다. 대략 5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칼리차 지역의 약 75%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동부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넘어온 사람들인 것으로 집계된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이들이 임시거처를 지으면서 끝없는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50만 명의 인구 중 2/3 가량이 임시거처에 거주하면서 열악한 배수 및 위생시설로 전염성 질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 전체 지역 인구 5명 중 한 명 꼴로 HIV/AIDS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구 10만명 당 1600명 가량이 해마다 결핵에 감염되고, 이중 약물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약제내성결핵 환자도 인구 10만명 당 80명 꼴로 발생해 이 지역은 심각한 결핵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결핵은 전세계 인구 10대 사망원인 중 하나로, 약 18초에 한 명 꼴로 결핵으로 사망한다. 남아공의 경우 결핵이 전국 최대 사망 원인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보다 두려운 것은 결핵균이 점차적으로 약물에 내성을 가져 더 이상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반 결핵의 경우 80% 이상의 치료 성공률을 나타내는 반면 두 가지 이상의 약물에 내성을 가지는 다재내성결핵(MDR-TB)의 경우 치료 성공률이 50%대로 급격하게 떨어지며, 일명 “슈퍼결핵”으로도 알려진 광범위내성결핵(XDR-TB)에 감염되었을 때의 치료 성공률은 20% 수준까지 낮아진다. 남아공에서는 한 해 내성을 가진 결핵에 감염되는 신규 환자가 해마다 약 2만 명에 달하고 있다. 

각종 위생시설이 열악한 칼리차 지역은 남아공 내에서도 가장 높은 결핵 유병률을 기록한다. © Sydelle Willow Smith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 칼리차 지역에서 1999년부터 계속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최근에는 내성결핵 환자들에게 반세기 만에 처음 개발된 결핵 신약을 이용한 치료법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5월부터는 경구용 다재내성결핵 치료요법을 개발하기 위해 3단계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경구용 다재내성결핵 치료요법의 도입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현재 다재내성결핵 환자들이 받는 주사제를 포함한 치료요법의 효능은 50%에 불과한 반면, 이러한 치료의 부작용은 극심하다. 주사제 투입을 위해 환자는 주5회 병원을 내원해야 하는데, 교통시설의 미비 및 직업 상의 이유로 환자의 잦은 내원이 수월하지 않은 현실이다. 내원에 성공한 환자들에게 투입되는 주사제의 독성은 매우 높아 주사제 투입과정 자체만으로도 매우 큰 신체적 고통을 일으키지만 약물의 부작용으로 신부전과 회복 불가능한 청력 상실이 따르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부작용을 겪은 환자는 성공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이후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가 불가능한 것이다. 

다재내성결핵 환자에게 투여되는 독성이 강한 주사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들. 주사제 없이 부작용을 최소화한 안정적인 경구용 치료요법을 개발하는 것이 국경없는의사회의 목표이다. © 하신혜/MSF

이러한 이유로 국경없는의사회는 남아공에서 주사제 대신 신약을 이용한 치료요법을 즉각적으로 사용할 것을 촉구해왔다. 임상시험이 마무리되는 2021년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미 신약을 사용했을 때 환자들의 임상 결과가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호전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촉구활동의 일환으로 파견기간 동안 신약을 이용한 치료요법의 신속한 도입을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치료 프로그램에서 확인된 신약의 안정성을 알리고 보건부의 정책적 변화를 요청하는 활동에 참여하였다. 

베다퀼린을 비롯한 신약들을 이용한 치료로 기적 같이 살아난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칼리차 지역에 거주하던 이 환자는 2013년 어느 날 퇴근길에 각혈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이 환자는 난생 처음으로 결핵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재내성결핵에 감염되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격리되어 치료를 받던 중 그는 더 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가장 어려운 결핵의 형태인 광범위내성결핵에 걸린 것이다. 이후 그에게는 4년 간 주사제를 포함한 각종 약물이 투여되기 시작하였다. 주5회의 주사제를 비롯하여 하루 20여 알의 약으로 시작된 투약은 이후 하루 35알까지 증가하였다. 하지만 그 어느 약물도 그에게 듣지 않았을 때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베다퀼린을 포함한 신약을 투약 받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기적 같이 결핵으로부터 완치되었다. 하지만 오랜 치료와 각종 부작용으로 그는 폐의 절반을 잃었다. 현재 이 환자는 지역사회에 결핵이 치료 가능한 질환임을 알리며 다른 환자들에게 용기를 줌과 동시에 신약의 보다 폭넓은 사용을 촉구하는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고통스러운 결핵 치료를 이겨낸 이들이 지역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하신혜/MSF

필자의 귀국 직후인 2018년 6월, 남아공 보건부는 다제내성 및 광범위약제내성결핵 환자들에게 신약 베다퀼린을 치료 초기부터 공급할 것을 약속하였다. (관련글: 남아프리카공화국: 결핵 치료의 새로운 혁명 — 주사제 사라져)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진취적 행보로 인해 이제는 남아공의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경감시켜줄 수 있는 치료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핵 환자의 고통은 단순히 질병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로부터의 격리, 전염성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 등 환자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삶 전반에서 나타난다. 오래 전 풍랑 속에서 고통 받던 항해사들이 케이프타운 희망봉에 도달하여 삶을 되찾았던 것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료의 고통을 감내하는 환자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약들과 치료요법을 만나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