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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현장 속에서

2023.06.29

이름: 이효민

포지션: 마취과의 (Doctor Anaesthetist)

파견 국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활동 지역: 방기(Bangui)

활동 기간: 2023년 4월 – 2023년 5월 


1. 현재까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가장 빈번하게 다녀오신 한국인 활동가시죠. 가자지구,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남수단 등에서도 활동하셨고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조금 남다른 감상이 있으시겠죠?

2021년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활동을 다녀온 후에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효민 활동가의 이야기는 다음 링크들에서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1)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년만에 다시 찾은 밤바리에서의 활동   2)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그때 선생님이 살린 아기입니다."  3) "슈바이처보다 그냥 의사"  4)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인터뷰 )

2015년 보상고아를 필두로 방기, 밤바리 등지에서 일해봤으니까 이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만 총 여섯 번 활동을 다녀온 셈인데요. 그러다보니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조금씩 눈에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갔을 때 수도 방기의 국제공항도 해가 지면 비행기가 이착륙을 못하는 정도였던 것, 출입국 심사대에 아무런 전자장비가 없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2018년 무렵부터는 공항에서 직원들이 노트북을 쓰는 것 같았죠. 우선 공항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인프라 측면의 변화를 실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번 가니까 나라 자체에 나름 익숙해져서 부담을 별로 안 느끼게 됐고요. 

2015년 이효민 활동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첫 파견 당시 수도 방기와 활동지 사이 이동을 위해 이용한 비행기 ⓒ국경없는의사회/이효민

2. 이번에 다녀오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지역과 프로젝트 내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해당 지역의 심각한 의료보건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번에 제가 다녀온 방기의 병원은 국경없는의사회가 100% 관리 운영을 전담하는 곳이었어요. 제가 일했던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예를 들면 외과와 응급실만 담당하고 나머지는 해당 국가 보건부에서 운영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병원들보다 이 병원이 위생관리도 철저하고, 전반적으로 운영관리가 더 잘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환자나 수술 건수로 치면 다른 곳보다 일이 많은 편이었는데도 효율적으로 잘 돌아가고요. 

산과나 소아과를 운영하지 않고 일반 수술은 다 하는 곳이라, 주로 외상 환자나 배를 열어 수술해야 하는 꼬인 탈장 혹은 복막염 환자가 많았습니다. 외상환자의 경우에는 다치고나서 바로 실려오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깊은 상처를 입고도 방치되어 있다가 오는 분들이 매우 많았고, 그것도 아니면 전통적 치료 요법을 시도하다가 상처부위 감염이나 괴사 상태로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2-3일에 한번씩 수술실에서 수면 마취하에 죽은 조직을 긁어내거나 닦아내고 드레싱하고나서 상처가 충분히 깨끗해지면 피부 이식을 해서 덮어주고 해야하죠. 

아무래도 도로가 잘 닦이지 않은 지역에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고 신호등도 거의 없어 교통사고 환자가 많습니다. 택시나 오토바이 사고로 정형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주로 10-40대 남성들이 많았지만, 70살 넘은 여성 환자가 교통사고로 왔는데 천식에 부정맥이 있다거나하는 식이었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기대 수명이 53세입니다(*출처: WHO). 사회적으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래도 사고를 당하는 환자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문제가 생겨도 방치하기가 쉽게 되는거죠. 민간요법에 의존하게 되면 환자 상황이 훨씬 악화되는 경향도 있고요. 

2015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동료와 함께한 이효민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이효민

3.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습니까?

뱀에 물려서 손가락 2개를 절단하고, 팔에도 화상이 있어서 굽히지도 못해 장기 입원중이던 13세 환자가 특히 기억납니다. 제가 도착하기 이전에 수술은 끝나고 제가 있는 동안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단계였는데요. 방기 출신이 아니고 그곳에서 교통편으로 2-3시간 이상 걸리는 북쪽 시골 출신이었는데, 시골에서 뱀에 물리고 화상을 입고는 수도의 병원으로 와서 수술을 한 것이죠. 65개 병상이 있는 병원에서 유일한 청소년 환자였어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또 집중치료실에 있던 환자 중에 제가 가기 전부터 입원해 있었고 개복 수술도 한 차례 한 60세 환자가 있었는데요. 원래 탈장으로 시작했을텐데, 한국같이 의료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는 굉장히 간단하게 수술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곳에선 탈장이 있어도 병원에 접근하기가 어려우니까 장이 꼬이고 썩고 나서야 천공이 되어 실려온 것입니다. 수술하기 전부터 전신 상태가 이미 상당히 악화되어 신장이나 간 기능도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도착한 이후로도 배를 두 번이나 더 열어 재수술을 했는데,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가 위험을 무릅썼던 그 2번의 수술 이후로는 계속 경과가 좋아 제가 떠날 때쯤엔 전신 상태가 꽤 괜찮아졌어요. 일어나서 걸어다니기도 하고 일반 음식도 먹을 정도로요. 그곳 기대 수명 기준으로는 꽤 연령이 높은 환자였던 셈인데, 보람 있는 일이었죠. 

방기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총상 치료 후 물리치료중인 환자 ⓒAdrienne Surprenant/MSF 

4. 하루 일과는 어떤 식으로 보내셨나요? 

제가 생활하던 국경없는의사회 숙소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병원 부지였고 병원 안에 사무실과 병원이 같이 있었어요. 오전 7시 30분이면 병원에 도착해서 3명의 외과의사들, 현지 병원 책임자 및 감염 담당자, 간밤 당직 의사들과 책임 간호사들, 심리상담 및 물리치료 담당자 등 모두가 모여서 지난 24시간 어떤 상황이 전개됐는지 내용 공유를 합니다. 가장 최근 환자 검사 결과들을 공유하고, '이 환자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치료 방향 토의도 하고요. 집중치료실 회진을 돌고, 점심식사는 수술 스케줄이나 상황에 따르지만 주로 1-2시 사이에 합니다. 저녁에도 수술이 끝날 때까지 근무가 계속되니까 가장 빨리 퇴근하면 오후 4시지만 새벽 3시까지 근무하는 때도 있고요. 

사실상 주 7일, 하루 24시간 근무 체제입니다. 하루 10-15건 수술이 있고, 중간중간 응급 수술도 생깁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회진을 평일보다 조금 늦게 해서 오전 8시 반쯤 근무를 시작하긴 했습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치안이 이제 비교적 괜찮아졌다지만 여전히 국가적으로 통금 시간이 있습니다. 밤 12시-5시 사이인데요. 그 사이에 밖에 나와있으면 보통은 경찰이 단속하지만, 숙소와 병원 사이 거리가 짧아 급한 경우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여권 사본과 비자, 국경없는의사회 카드는 늘 소지하고 다녔어요.

대부분 활동 지역에서 외과의와 마취과의는 1명씩 당직을 서게 되기 때문에 근무 강도가 세기 때문인지 활동 기간이 그렇게 길진 않습니다. 현지 인력 마취 간호사들도 오후 5시면 교대를 하고요. 수술방은 2개인데 저녁 5시 이후로는 마취 간호사도 1명 뿐이라 제가 한 방을 책임지고 일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원래 집중치료실은 1차 책임이 마취과의에게 있습니다. 집중치료실 환자 퇴원여부도 마취과의가 결정하는 사항이고요. 

방기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앞, 2021년. ⓒAdrienne Surprenant/MSF 

5.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현장에서 어떤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하셨나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의료체계는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외부 의료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국가 의료체계가 지역 의료 서비스 공급을 거의 못하다시피하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크죠.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의료진에 양질의 교육 기회도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이번에 근무한 방기 소재 병원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전체에서 모범으로 삼고 있는 병원입니다. 규모나 운영관리 측면에서 손꼽히는 병원이죠. 그곳에 근무하는 마취 간호사들만해도 국경없는의사회 지원과 교육을 받았고 다시 현지 의료인력 양성에 큰 역할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지 간호진 중에서 선발해 1년 혹은 1년 반의 기간 동안 필요한 재정을 비롯해 훈련과정을 지원한 6명이 대체적으로 업무 효율이 무척 좋았고, 그런 분들이 다시 현지 관련 직원들을 관리감독하게 되는 거죠.  

2019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병원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 찍은 수술장 팀 사진으로 왼쪽부터 현지인 수술장 간호사, 이효민 활동가, 아이티인 수술장 간호사, 필리핀인 외과의  ⓒ국경없는의사회/이효민 

6. 활동가님의 향후 계획을 알려주세요.

저는 보통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파견을 나가고, 한국에서 여름과 겨울에 일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기회 없어서 나가지 못했는데 올해 가을에는 기회가 있으면 다시 나가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일하고 싶습니다. 

7. 그러고보니 최근 국경없는의사회 (고액) 후원자도 되셨어요. 동료 활동가이자 후원자로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나 후원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활동가를 희망하는 분들께는 불어를 공부해 두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전에 영어만 했을 때는 파견지가 나이지리아, 가자, 남수단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불어를 배우고 나니까 활동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하기 전에는 국제구호 활동이라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이 일을 한번 시작하고 나니 똑같은 일을 했을 때도 한국에서보다 직업인으로서의 효능감이랄까 보람이 훨씬 크다는 것을 느끼고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후원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덕분에 탄 상(*이효민 활동가는 2022년 12월 의료 소외계층을 위해 인술을 펼쳐온 의료인에게 수여되는 상인 ‘제 2회 김우중 의료인상’ 수상)이니만큼 그 상금을 받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자들의 후원 덕분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2022년 12월 제 2회 김우중 의료인상 시상식에서 이효민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