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운영 매니저 크리스 락이어(Chris Lockyear)
9월 24일 오후, 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발루치스탄(Balochistan)주 아와란(Awaran) 지역의 대규모 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지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부상자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터였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단 하나, 국경없는의사회가 그 현장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쟁은 물론 이러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야기된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닌가. 중립적 인도주의 의료단체로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닌가. 그러나 두 건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지 거의 4주가 지난 현재, 공정한 인도주의 개입의 필요성이 너무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해당지역에서 단 한 명의 환자도 치료하지 못했다.
물론, 물류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파키스탄 정부가 국경없는의사회보다 훨씬 뛰어나다. 우리에게는 파키스탄 군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헬리콥터로 이동시킬 역량도 없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입장이 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당장 생존에 필요한 외상 환자 치료, 영양 지원, 예방적 차원의 일차 진료, 식수, 위생, 피난처 공급과 같은 지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는 이러한 지원을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발루치스탄 지역에서 일한 오랜 경험으로 우리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사항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발루치스탄 주 내의 정치적 관계나 역사, 또는 그 결과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정부 또는 정치적 집단과도 결탁하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고자 할 뿐이다.
파키스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떠한 단체 또는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 오직 개인 후원자들에게서만 기금을 받는다. 원조 자체가 끊임없이 조작의 대상이 되는 나라에서 이러한 선택은 필수적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다만 사람들의 니즈에 따라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아와란 지역에서도 이처럼 공정한 의료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제1차 지진 발생 직후, 우리는 우탈(Uthal) 지역에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을 대기시켜 필요시 언제라도 현장에 들어가 의료 및 인도주의적 니즈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또한 물류 전문가, 코디네이터, 식수 및 위생 엔지니어는 물론 현장 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지진 발생 이후 여러 날 동안 파키스탄 재난관리청 헬리콥터와 파키스탄 보건부 차량에 대한 공격이 있었던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지역에서의 활동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콩고민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다른 모든 불안한 지역에 활동을 개시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수준의 안전 보장은 필수적이다. 아와란에서도 역시 그러한 안전보장만 확보된다면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지역에 들어갈 채비를 갖췄던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이 지역에 들어갈지 여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닌 제3자가 우리를 대신해 결정을 내렸다. 파키스탄의 경우, 정부의 승인 여부는 ‘이상없음’을 확인하는 증서(NOC) 발급 여부에 따라 명확하게 확인된다. 발루치스탄 주에서 기존에 운영하던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우리 역시 이러한 시스템 내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2013년 10월 1일 공식 지원 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주 정부 및 중앙 정부 차원에서 여러 당국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와란 지역에 대한 NOC 허가는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우리의 승인 요청이 명확하게 거부됨으로써 우리의 모든 노력은 벽에 부딪쳤다.
나는 파키스탄 당국이 우리의 지원을 이렇게 서둘러 거부해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2005년의 카슈미르(Kashmir) 지진 때라든가 2008년 지아라트(Ziarat) 지진 이후, 그리고 가장 크게는 2010년 홍수 피해 등 발루치스탄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수 차례의 홍수 피해 발생시 우리가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파키스탄 당국이 발 벗고 나서줬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와란은 왜 안 된다는 걸까?
며칠 전에 들은 현장의 인도주의적 상황은 재앙에 가까웠다. 팔다리가 부러진 사람들, 파괴된 우물들,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라고는 대추와 설탕 물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들… 이런 상황이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관계자들에게서 상반되는 답변들이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미심쩍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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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니즈를 최우선으로 두는 단체로서 니즈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보다 나쁜 상황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아와란과 케흐(Kech) 지역에 제1차 지진이 발생한 이래 거의 4주째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고통이 어떠할 지는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재앙이 지나고 나면 대개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해서 여성과 아이들이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기 쉽다. 임시 거처에 생활하기 때문에 폐렴이나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에 훨씬 취약해지고 깨끗한 식수와 위생시설의 부족으로 설사병 위험이 높아진다. 제대로 부상 치료를 하지 못해서 초래되는 감염 위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지원이 거부당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냥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지금 현재, 지진과 치안 불안으로 파괴된 공동체,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의료지원과 구호 지원의 엄청난 간극 등의 절망적인 보고들이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탈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대기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니즈가 존재하는 한 언제라도 현장에서 직접 의료지원을 제공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현장 접근을 위해 모든 당사자들과 협상과 대화를 할 의사가 있다.
현장 접근을 기다리는 동안, 국경없는의사회는 발루치스탄 지역 및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에서 공정한 인도주의적 의료 지원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 본 기고문은 10월 21일 파키스탄 일간지 Dawn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dawn.com/news/1050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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